오늘은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다. 우수는 입춘과 경칩의 사이에 있는 절기로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도 풀린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봄기운이 돌고 싹이 트기 시작한다.
친구가 '春來不似春'이라고 쓴 멋진 서예 작품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매년 이맘쯤이면 이 시구를 자주 접하지만 유독 올해는 웬일인지 예전보다 훨씬 춥게 느껴진다. 아마도 혼탁한 정치 때문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중국 왕소군을 두고 지은 시에 있는 글귀다. 그녀는 절세의 미인이었으나 흉노와 화친정책에 의해 흉노왕에게 시집을 가게 된 불운한 여자였다. 그 여자를 두고 지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에 이 구절이 나온다. '이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오늘 아침, 양재천에 산책을 나섰는데 요란한 모터 소리가 들렸다. 어린이 학습체험장에 논에 모터로 양재천 물을 대고 농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산책로를 걸으며 둑길을 유심히 살펴보니 몸집이 아주 작은 봄까치꽃이 양지바른 언덕에 피었다. 내가 오랫동안 양재천을 관찰해 본 결과, 봄까치꽃이 가장 먼저 피었다. 그다음에는 목련, 개나리, 벚꽃과 제비꽃이 피어난다. 이토록 작은 봄까치꽃도 새봄이 오는 것을 알고 있다. 인생은 불확실하지만 자연의 법칙은 늘 확실하다고 느낀다.
까치 부부가 삭정이를 입에 물고 둥지를 짓고, 청둥오리 부부가 새끼오리와 함께 유유히 양재천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봄이 오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양재천에 서있는 벌거벗은 나목들은 왠지 쓸쓸하게 보였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새삼 상기하면서 앙상한 나목을 쳐다보고 벚꽃과 개나리꽃도 활짝 핀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보니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다.
며칠 전, 광교신도시를 방문했다. 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친구가 한국에서 4~5년쯤 살아볼 계획으로 올해 초 귀국했다. 그래서 광교에 사는 한 친구가 이 친구를 초대할 겸 동창 몇을 함께 초대한 것이다. 우리는 대학교를 입학한 지가 반세기가 흘러 어느덧 고희의 언덕을 넘고 있다.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살다 온 친구가 고국으로 돌아온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이렇게 선진국으로 발전하였고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라 바다와 산을 찾아 좋은 경치를 감상하고 고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정말로 좋습니다.'
현재 친구가 거주하는 곳이 여의도로, 옛적, 그 넓고 삭막했던 옛 아스팔트 광장이 아름다운 공원으로 변신하여 요즘 그곳을 산책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고도 했다.
2월 초에는 기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 카페에서 눈 내린 경치를 감상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고 자랑을 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덤덤한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계층 간 분열이 심각한 한국 사회가 안타깝게 여겨지고 내로남불식의 정치가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대로변 사거리에 붙어있는 정치인들의 혼탁한 플래카드를 쳐다보면 '내 탓'은 하지 않고 '네 탓'만 하는 여러 정치인의 행태가 아주 실망스럽다. 우리 선배들이 피땀으로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 마저 든다. 정치 문제는 모두가 협치로 풀어야 할 터인데,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이 사회에서 내일의 주역인 젊은 세대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ᆢ.
나는 오늘 양재천에서 봄까치꽃이 핀 것을 발견하고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꽃이 피면 알 것이다!"라는 힌디어의 격언이 있다. 진정한 인내는 앞을 내다볼 줄 알고 살아가는 것이다. 소나기를 보고 무지개가 뜬다는 것을 알고 어둠을 보고 밝은 해가 곧 떠오른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년 봄에는 길거리에 정치적인 현수막이 보이지 않고 춘래불사춘(春來春似春)이 아니라 춘래사춘(春來似春)이 느껴지는 희망찬 새봄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