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정희가 죽었다는구나."
귀를 통해 들어온 문장이 등골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쭈뼛 섰고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할아버지가 정희라는 이름으로 부를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할아버지의 딸 서정희.
서유리의 엄마 서정희 씨.
나를 입양했던 사람이었다. 나를 버린 사람이었다. 함께 살았던 시간은 3년이 전부였다. <13p.>
2년 뒤면 없던 일이 될 터였다. 까만 상자에 담아 낭떠러지 아래로 내던져 버릴 사연이었다. … 징글징글한 과거를 싹둑 끊어 내고 오롯이 나 혼자서 살고 싶었다. <32p.>
대학만 가면 과거를 싹둑 끊어 내고 이 집을 떠나려던 유리였지만 엄마 서정희 씨의 죽음과 연우의 등장으로 유리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유리에게 하나둘씩 지워지는 짐은 점점 유리를 가라앉게 만들고, 마침내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진실을 마주하기에 이른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묻어두었던 진실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유리의 발걸음을 따라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 유리가 진 짐의 무게가 내게도 느껴지는 듯하다. 점점 '유리의 고통이 이해된다.'는 느낌이 들 때쯤 고향숙 선생님의 말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은 각각 다른 것 같더라. 감당해 낼 여건도 다르고. 설령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거야. … 살아온 길이 저마다 다르니까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나는 그 사정을 알 수가 없잖니. <207p.>
선생님의 말대로 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어렴풋이 '힘들었겠구나'하고 가늠할 뿐 그가 겪는 고통의 강도를 알 수는 없다.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고, 살아온 길이 다르고,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방식도 다르기에 함부로 '너의 고통을 이해한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훌훌>을 읽던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기억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난여름, 오랜만에 만난 모임 자리에서 친구에게 '과거의 상처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해 교사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해보지 않은 색다른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친구의 답변은 의외였다.
"그냥 가만히 놔둬라. 뭘 해주려고 하지 마라. 지금 그 아이한테 필요한 건 뭘 더 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옆에 있어주는기다. 니 눈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혼자서 이겨내고 있는기다."
"그러면 내는 그냥 가만히 있나?"
"어. 옆에 그냥 있으면 된다. 근데 너무 멀리 떨어지지는 말고, '아, 내 옆에 선생님이 있구나. 어디 가지 않았구나.' 이 정도를 느낄 수 있는 거리, 그리고 언제든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면 선생님이 잡아 줄 수 있는 그 정도 거리에서 있으면 된다."
"그러고 나서는?"
"계속 옆에 서 있으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 수도 있다. 그러면 그때 잡아주면 된다. 근데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다고 해서 니가 잡아끌면 안 되고 아이가 가자는 데로 딱 잡고 따라다녀주면 된다."
지난여름의 기억이 내내 맴돌았던 이유는 소설 곳곳에서 친구가 말했던 '가만히 있어 주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일상을 함께하는 것, 궁금한 것을 먼저 묻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가만히 들어주는 것, 그리고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알아채고 다음을 기약하며 생긋 웃어주는 것이 '가만히 있어 주기'의 모습이었다. 유리의 친구들이 그랬고, 고향숙 선생님이 그랬다. 어쩌면 할아버지도 나름의 방식으로 유리의 곁에 '가만히 있어 준 것'은 아닐까.
누군가 내 사정을 알아주고 걱정해 주었으면 했다. 이왕 말 꺼낸 거 다 털어놓고 싶었다. 그러면 마음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197p.>
나는 눈을 감았다. 이따금 속도를 냈다 줄였다 하는 차의 리듬도 좋았다. 흔들리는 요람 속에 있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선생님이 우리 집 사정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아 주어서 고마웠다. <204p.>
주저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린 선생님은 싱긋 웃으며 나중에 마음 내킬 때 얘기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8p.>
작가는 <훌훌>을 쓰며 느낀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친절하게 내미는 손, 당겨 주고 토닥이는 손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촉촉하고 따스한 손이 백 마디의 말, 천 개의 눈빛이 되어 퍼져 나가기를 바랐다." 작가의 바람대로 <훌훌>이 멀리 퍼져 나갔으면 한다. 진정한 공감과 위로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돌아보면서 '가만히 있어 주고' 때로는 '손 내밀어 주는'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퇴근길에 문득 자우림의 <going home>이 떠올랐다. 노랫말을 곱씹으며 유리 곁에 있던 친구들과 선생님, 할아버지가 딱 이런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유리의 일에 진심으로 고민하고 걱정하는 마음, 모습은 다르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마음, 진심으로 유리가 짐을 벗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평소에도 즐겨 듣고 좋아하던 노래였지만 소설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 노랫말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져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이제 짐을 벗고 행복해지길
나는 간절하게 소원해 본다.
-Going Home - 자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