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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다미로 Nov 28. 2021

진짜 마음을 찾아서

교실 에세이 #2. 아쉬워요

"아씨, 애들이랑 축구했는데 졌어요. 기분 안 좋아요."

"어제 게임을 조금밖에 못해서 짜증 났어요."

"더 먹고 싶은데 못 먹어서 짜증 나요."


기분 안 좋아요

 나는 아이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 항상 '그래서 기분이 어땠어?'라고 물어본다. 주로 아이들의 대답은 정해져 있는데, 만족스러운 경험을 했을 때는 주로 '기분이 좋았다'라고 말하고 가끔 '즐거웠다', '재미있었다'라고 말한다. 불만족스러운 경험에는 열 번 중에 아홉 번은 '기분이 안 좋다', '짜증 난다'라고 말하고, 정말 화가 많이 났거나 답답한 일을 겪었을 때 '열 받는다', '화난다' 등의 말로 감정을 표현한다. 아이들이 '기분이 안 좋았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기분이 안 좋았어?"라고 되물으며 구체적인 감정을 찾아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데 다양한 감정표현을 사용해보지 않은 아이들은 '그냥 안 좋았다'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의 감정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감정을 물어본다.


태우(가명)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씩씩거리며 교실로 들어왔다.

"태우야, 잘 놀고 왔어? 축구했나 보네."

"네. 근데 기분 안 좋아요."

"어떻게 기분이 안 좋아?"

"몰라요. 기분 안 좋아요."

"화가 나?"

"아니요."

"그럼, 슬퍼?"

"아닌데요. 하나도 안 슬퍼요."

"답답해?"

"어... 조금요."

"아쉬워?"

"음... 네. 아쉬워요. 축구하는데 1대 1로 비기고 있었거든요. 우리 팀이 더 잘해서 우리가 이길 수 있었는데, 마지막에 아깝게 골을 먹어서 졌어요. 그런데 마지막 골 있잖아요. 골 들어가기 전에 지호 손에 공이 닿은 것 같았거든요? 그거 핸들링이잖아요. 핸들링이면 노 골인데."

"그랬구나. 잘했는데 아깝게 져서 아쉬웠구나."

"네. 아쉬웠어요."


 '안 좋은 기분' 속에 있는 진짜 마음을 찾아 말로 표현하면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축구에서 져서 기분이 안 좋았던 태우도 '아쉬워요'라는 진짜 마음을 찾아냈고, 듣지 못할 뻔했던 숨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면서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만약 태우를 기분이 '안 좋은' 채로 두었다면 태우는 '안 좋은 기분' 속에서 어떤 감정을 선택하고 행동했을까. 핸들링을 한 지호에게 화가 나서 말다툼을 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골대를 지키지 못한 골키퍼를 답답해하며 원망하는 눈빛을 쏘았을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아쉬울 일이 많다

 감정 수업을 하고 난 뒤로 아이들이 자주 쓰는 감정표현 중 하나가 '아쉬워요'라는 말이다. 아이들은 만들기를 계속하고 싶은데 시간이 적어 아쉽고, 간식을 하나 더 먹고 싶은데 먹지 못해서 아쉽고, 선생님이 출장을 안 가서(?) 아쉬웠다. 특히 코로나 상황이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요즘 아쉬운 일이 더 많아졌다. 집을 떠나 잠자는 맛인 수학여행은 당일치기로 줄어들었고, 체험학습은 줄줄이 취소되거나 미뤄졌다.


"선생님, 만들기 조금만 더해요."

"약속한 시간 다 됐어. 이제 정리하자."

"아~ 아쉽다..."


"선생님, 왜 현장체험학습 못 가요?"

"이번에 우리 지역에 확진자 수가 갑자기 많아져서 현장체험학습 가기에는 조금 위험한 상황이야."

"체험학습 가고 싶은데... 아쉽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이 '아쉽다'라고 말한 후에 심하게 떼를 쓰거나 고집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아쉽다고 말할 때는 '내 마음은 하고 싶지만 내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순간'이었다. 만들기는 더 하고 싶지만 선생님과 약속한 시간이 있으니 그만둬야 하고, 체험학습은 가고 싶지만 어깨너머로 보고 들은 코로나 확진자 이야기가 마음이 쓰이는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만들기를 하자고 조르거나, 현장학습을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아이들 마음속에 있던 아쉬움이 '아쉬워요'라는 말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기 때문은 아닐까.


 작년 봄, 한 TV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짜증 난다'라는 말을 금지시켰다고 했다. 이유는 '짜증 난다'는 표현에 너무나 많은 감정이 뭉뚱그려져 있어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면 감정을 정확히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들도 자기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표현할 줄 알았으면 한다. 기분 안 좋다, 짜증 난다고 말하기보다 답답할 때는 답답하다고, 억울할 때는 억울하다고, 아쉬울 때는 아쉽다고 말하는 건강한 어린이가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아쉽다'의 사전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아쉽다

1) 필요할 때 없거나 모자라서 안타깝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2) 미련이 남아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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