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아나키즘 ⑰ - 무법지대에서 유저는?

규칙 없는 공간에서 자율성과 책임을 실천하는 유저들

by 엠알

게임 안에는 규칙이 있다.


퀘스트, 미션, 승리 조건, 패널티 시스템. 이 모든 것은 유저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이드’하는 장치다.


하지만, 만약 규칙이 없다면? 만약 개발자도, 운영자도, 강제 규정도 없는 세계에서 유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면?


이 질문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디지털 공간, 특히 오픈월드, 샌드박스 게임, 롤플레잉 커뮤니티 등에서는 실제로 끊임없이 실험되고 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유저의 윤리적 상상력, 아나키즘적 주체성, 자율적 책임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규칙 없는 세계: 유저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까?


규칙이 없는 공간에서 유저는 처음에는 혼란을 느낀다.


- 누구를 공격해도 제재가 없다.

- 사기를 쳐도 벌을 받지 않는다.

- 거짓말, 배신, 약탈 모두 허용된다.


이때 유저는 어떤 행동을 할까?


일부는 즉시 폭력과 이기심으로 돌진한다. ‘규칙이 없으니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유저는 스스로 규범을 설정하고, 다른 유저와 신뢰를 쌓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심이 아니다. 규범과 공동체는 외부 강제 없이도 생성될 수 있다는 아나키즘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무정부 상태와 아나키즘적 윤리의 차이


아나키즘은 흔히 '무정부주의'혼란과 파괴의 이미지로 떠오른다. 그러나 사실 아나키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꽤나 다르다. 아나키즘은 혼돈이 아니라 자율적 질서다. 강제와 권력 없이, 신뢰와 협력을 기반으로 사회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이어서 게임 속 규칙 없는 공간에서 유저들은 두 갈래 길에 선다. 자기 욕망만을 충족시키는 길과(약탈, 사기, 트롤링), 자율적 책임을 실천하는 길(신뢰, 협력, 약속) 놀랍게도 많은 유저는 외부 규칙이 없더라도 스스로 책임을 설정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서로를 배신하는 대신, 거래를 지키고, 신뢰를 구축하고, 약속을 존중한다. 이것은 디지털 공간에서 벌어지는 아나키즘적 윤리의 작은 실천이다.


자율적 윤리의 발현


게임 곳곳에서 이런 자율적 윤리는 실제로 관찰된다. 마인크래프트에서 규칙이 없는 자유 서버에서도 유저들은 자체적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약탈 금지 구역을 설정한다. 이브 온라인(EVE Online)에서는 무정부 상태의 우주 경제 안에서도 동맹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계약을 맺고 신뢰를 기반으로 협력한다.


이들은 모두 강제된 법 없이도 자율성과 책임의 윤리를 실천하려는 유저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유저가 스스로 윤리를 선택할 때


규칙 없는 세계는 유저에게 진짜 자유를 준다. 하지만 그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지 않으면 곧 파괴로 치닫는다. 신뢰 없는 거래는 사기와 파괴로 끝난다. 또한, 책임 없는 자유는 혼돈과 붕괴로 이어진다.


자유와 책임을 함께 실천하는 유저는 단순한 플레이어가 아니다. 그들은 디지털 아나키스트이며, 자율적 세계의 시민이다. 법이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 누군가는 약탈하고, 누군가는 신뢰를 지킨다. 게임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우리는 인간 본성의 양면을 본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강제 없이도 신뢰를 만들고, 규범을 지키고,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놀라운 가능성도 본다. 디지털 공간에서 실험되는 이 작은 윤리는 현실 세계에서도 자율적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희망의 징후다.


유저는 윤리적 존재다.


그 자유와 책임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디지털 아나키즘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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