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아나키즘 ⑲ - 유저의 아나키스트화

자발적 질서 형성의 조건

by 엠알

아나키즘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강제가 없어도, 규칙이 없어도,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게임 속 유저들은 이 믿음을 매 순간 테스트를 받고 있다. 법이 없고, 강제가 없는 공간에서, 유저는 정말 스스로 자율적 질서를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이론적 문제를 넘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매우 현실적인 질문이다.


무엇이 유저를 윤리적으로 만드는가?


자율적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고려하는 공감 능력? 규범 없이도 상대방을 믿을 수 있는 신뢰? 자유를 무기로 삼지 않고,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책임감 있는 태도?


이 세 가지가 없다면 자유는 방임으로, 자율성은 약탈로 변질된다. 게임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유지되는 서버는 서로의 신뢰와 책임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반대로, 규칙 없는 약탈 서버는 빠르게 무법 상태로 붕괴한다.


유저가 아나키스트가 될 수 있는지는 단순히 규칙이 없는 상태에 적응하는 문제가 아니다. 책임을 지고 자유를 실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규칙 없는 공간, 자율적 규범의 실험


자율적 규범은 강제 없이 어떻게 만들어질까?


1. 공동체적 합의 – 소규모 커뮤니티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규범

2. 비공식적 윤리 – 명문화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기대치

3. 역할에 대한 몰입 –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플레이 문화


위 세가지가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이에 더해 아나키즘적 주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1. 자기 절제 – “할 수 있다”는 것과 “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자유는 무한하지만, 자기 절제가 자유를 보호한다.

2. 상호 존중 –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할 때 내 자유도 보장된다.

3. 자발적 협력 – 강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협력하려는 의지.


게임 안에서 유저가 이 세 가지를 실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자율적 세계의 구성원, 디지털 아나키스트가 된다.


실패하는 아나키즘의 원인


자유가 항상 자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무책임한 자유, 개인주의적 쾌락 추구, 상호 신뢰의 붕괴 이런 요소들은 자율적 질서를 붕괴시킨다. 특히 게임과 같은 디지털 세상 속에서는 사기, 약탈, (길드 등)내부 분열이 반복되며 공동체가 붕괴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유는 책임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저를 믿을 수 있을까?


게임은 우리에게 반복해서 묻는다. “규칙이 없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은 간단하지 않다. 일부는 협력하고, 일부는 폭력적이며, 일부는 무관심하게 떠난다.


아나키즘적 질서는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의식적인 노력, 반복적인 합의, 자발적 윤리의 실천을 필요로 한다. 게임 속 실험들은 우리가 단순히 ‘자유를 허용’하는 것으로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


유저의 아나키스트화 가능성은 있는가?


답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책임을 지고 자유를 실천하는 유저는 디지털 아나키스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책임을 포기하고 자유를 욕망의 도구로 삼는 유저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가 된다. 아나키즘은 인간에 대한 긍정적 신뢰에 기반한다. 게임속 세상에서는 그 신뢰를 실험한다.


그 실험에서 우리는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본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자유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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