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아나키즘 ⑳ - 게임 속 아나키즘의 현실화?

디지털 세상속에서의 자유 실험, 그리고 사회적 실천의 가능성

by 엠알

게임은 현실속 세계를 본따 만들었기 때문에 서로 너무나 닮아있다. 그리고 때때로, 현실 속 세상을 앞서간다. 게임 속에서 유저들은 법이 없는 세계를 걷고, 규칙을 거부하며, 자유롭게 질서를 구성한다.


아나키즘적 실험은 이미 디지털 공간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할 차례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 이러한 자유의 실험은, 과연 현실로 확장될 수 있을까?” 단순한 오락을 넘어, 게임 안에서 자율성과 공동체성을 학습한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도 아나키즘적 삶을 실천할 수 있을까?


가능성과 한계


게임 안에서는 죽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실패해도 치명적이지 않다. 커뮤니티는 언제든 떠나거나 새로 만들 수 있다. 이 특성은 게임을 자유 실험의 최적지로 만든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실패는 치명적이고, 공동체 붕괴는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현재 만연해 있고 항상 만연할 여러 갈등들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게임 속 아나키즘은 “노리며 실험할 수 있는” 자유였지만, 현실의 아나키즘은 “삶을 담보로 걸어야 하는” 자유다. 이 차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의 윤리>를 배울 수 있다. 게임 속 아나키즘은 비록 완전하지 않아도 중요한 몇 가지를 가르쳐준다.


1. 자율적 규범은 가능하다(강제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합의할 수 있다).

2. 자유는 협력을 요구한다(개인의 자유는 공동체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3. 책임 없는 자유는 파괴를 부른다(자유는 책임과 함께 존재할 때만 지속된다).


이 교훈들은 디지털 세계를 넘어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현실 세계로의 확장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현실 사회에서 아나키즘을 실천하려면 단순한 자유 의지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1. 신뢰 기반의 네트워크: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관계 맺기

2. 합의 기반 의사결정: 다수결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동의를 이끌어내는 과정

3. 분권화된 시스템: 중앙집중 없이 권한이 분산되는 구조 만들기

4. 자기 절제와 상호 존중: 자유를 무책임하게 휘두르지 않는 윤리


게임은 이 모든 요소를 가벼운 형태로, 때로는 왜곡된 형태로 제공했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다. “자유를 지키려면, 우리는 서로를 지켜야 한다.”


아나키즘적 공동체의 현실적 가능성


현실 세계에서도 아나키즘적 공동체들은 존재했다.


- 스페인 내전 당시 아라곤 지방의 농민 자치

- 19세기 말 파리의 코뮌

- 현대의 치아파스 주(멕시코) 자파티스타 운동


이들은 모두 중앙 권위 없이, 스스로 규범을 만들고, 자율적 협력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유지하려 했다.


물론 이들은 외부 압력, 내부 갈등, 경제적 한계에 부딪혀 많은 경우 짧은 시간 내에 붕괴했다. 하지만 그 실험은 “아나키즘적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율적 공동체는 더 많은 준비와 성찰, 책임을 필요로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남겼다.


디지털 아나키즘 = 새로운 가능성


디지털 세계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다. 물리적 장소에 묶이지 않고, 소규모 공동체가 쉽게 형성되고 연결될 수 있다. 기술적 발전 덕분에 탈중앙 시스템 및 조직(DAO 등)이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하다.


게임을 통해 자율성과 협력, 책임을 학습한 세대는 디지털 공간에서 새로운 형태의 아나키즘적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앞서 말한 탈 중앙화 시스템 블록체인 기반 자율 조직(DAO), 오픈소스 커뮤니티 등등.


이 모든 것은 “규칙 없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 없이도 질서를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게임은 우리에게 연습장을 제공했다. 자유와 책임을 실험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열어줬다. 이제 그 실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다시 쓸 차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통제 없는 혼돈이 아니다. "강제 없는 자유"다. 그 자유는 신뢰 위에 세워야 하고, 책임을 안고 실천해야 하며, 끊임없이 협력과 대화를 통해 유지해야 한다.


게임은 끝났지만, 실험은 계속된다. 디지털 세계에서 배운 것들을 가지고 현실 세계를 다시 설계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유저는 단순한 콘텐츠 소비자가 아니다. 디지털 세계를 다시 설계하는 주체자이다. 권위에 기대지 않고, 타인을 억압하지 않고, 스스로 자유와 질서를 창조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몇몇 게임은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자유는 선물이 아니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우리가 직접 그 자유를 현실로 끌어내야 할 차례다.


게임은 끝났지만, 진짜 플레이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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