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아나키즘 [完] - 우리가 꿈꾼 아나키즘.

게임과 아나키즘을 마무리하며 시리즈의 끝에서, 다시 처음으로

by 엠알

자유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우리는 이 시리즈를 통해 아나키즘이라는 사상이 디지털 게임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실험되며, 좌절되거나 가능성을 남기는지를 추적해왔다. 아나키즘은 단순한 무정부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으로부터 강제되지 않고도 스스로 윤리를 구성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신념이고, 공동체를 억압 없이 유지할 수 있다는 사회적 상상력이다. 법이 없을 때, 권위가 사라질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행동할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이념적 논의가 아니라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반복해서 실험될 수 있었다. 규칙이 느슨하거나, 심지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공간 속에서 유저들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거나 파괴해가는 과정은 우리가 꿈꾸는 아나키즘의 가능성과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게임은 본질적으로 자유의 조건이 마련된 세계다. 현실과 달리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규칙을 어겨도 치명적인 처벌이 따르지 않는다. 이 환경은 자유를 연습하기에 더없이 적합하다. 개발자가 만든 기본 구조를 넘어서 유저 스스로 세계를 설계할 수 있는 마인크래프트, 폭력 없이도 게임을 끝낼 수 있는 언더테일과 같은 사례는 모두 유저의 윤리적 상상력에 의존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 게임들은 단순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를 묻는 방식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자유는 항상 윤리적인가?


그러나 우리는 곧 자유가 언제나 윤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자유가 극단화되면 이기주의와 쾌락주의로 빠져들기 쉽고, 상호 신뢰가 없다면 자유는 누군가를 해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마인크래프트의 무정부 서버인 <2b2t>는 이 점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서버 안에는 운영자의 개입도, 법적 제재도 없었다. 유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기대했던 자유로운 창조의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는 파괴와 피로, 그리고 불신의 축적이었다. 유저들은 서로를 전제하고 행동하지 않았고, 그 결과 아무도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었다. 법 없는 공간이 윤리 없는 공간으로, 윤리 없는 공간이 결국 삶 없는 공간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실패는 단지 기술적 시스템이나 기획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자유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하는가에 대한 깊은 철학적 문제였다. 아나키즘은 통제를 부정하지만, 결코 책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진정한 아나키즘은 자유와 책임, 자율성과 협력,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 위에 놓여 있다. 따라서 무책임한 자유는 아나키즘이 아니라 방임이며, 무제한적 자율성은 곧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게임 속에서 그 한계를 너무나 자주 목격했고, 그래서 아나키즘이라는 사상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남겨진 가능성


자유가 실패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특정 유저가 규칙과 시스템을 파괴하고, 협력을 무력화시키며, 신뢰가 무너진 커뮤니티에서 유저들이 하나둘 떠나는 순간조차도, 우리는 소수의 유저들이 공동체를 지키려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들은 시스템이 주지 않는 책임을 스스로 감당하고, 규칙이 강제되지 않음에도 윤리를 선택하며, 자신과 무관한 타인을 위해 시스템을 보호하거나 협력을 제안했다. 그것은 보상 때문도 아니고, 규율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 자발적인 윤리적 행위는 아나키즘이 단지 이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삶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가능성은 특정한 시스템적 설계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게임 속에서, 다양한 유저의 선택을 통해 나타났다. 언더테일에서는 적을 죽이지 않아도 진행되는 내러티브를 통해 폭력에 대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었고, GTA RP 롤플레이 서버에서는 플레이어가 경찰, 정치인, 시민의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면서 공공의 질서를 만들어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DAO나, 모드 커뮤니티에서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가는 유저들의 활동은 비단 게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디지털 공동체 전반의 새로운 윤리적 질서를 암시하고 있었다. 이 모든 실천은 비록 불완전하고 자주 무너졌지만, 아나키즘적 상상력을 실현하는 구체적 실험으로 작동했다.


게임에서 배운 것을 현실로 옮길 수 있을까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게임 안에서의 자유 실험이 과연 현실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가 게임을 통해 익히고 연습한 아나키즘적 사고방식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현실 안에서도 작동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다. 현실은 게임보다 훨씬 복잡하고, 실패의 비용은 높으며, 책임은 명확하게 물어진다. 게임처럼 언제든 리셋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다. 하지만 현실에는 게임보다 더 절박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지금 공동체의 신뢰가 흔들리는 사회를 살고 있으며, 위계와 권력, 통제와 감시의 시스템이 일상에 스며든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아나키즘적 실험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제적 대안의 하나로 고려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그 전환점을 목격하고 있다. 탈중앙화된 자율조직, 협력적 플랫폼 생태계, 참여 기반 민주주의 실험 등은 모두 기존의 상명하달식 구조를 넘어서는 흐름이다. 여기서 우리는 규율 없이도 질서를 만들 수 있는 역량, 강제 없이도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신뢰, 명령 없이도 윤리를 실천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하다. 이 감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우리는 그것을 게임에서부터 익혀왔다. 게임은 우리가 자유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반복적으로 선택하고, 실패를 통해 반성하고, 다시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훈련장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현실은 게임과 다르다”는 말만으로 이 경험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유저였는가, 우리는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이 시리즈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결국 다시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어떤 유저였는가. 규칙이 없을 때 약탈했는가, 아니면 협력했는가. 시스템이 없을 때 무엇을 기준으로 행동했는가. 우리는 타인의 자유를 지켰는가, 아니면 자신의 욕망만을 앞세웠는가. 이 질문은 단지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동시에 미래에 어떤 시민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준다. 아나키즘은 완성된 정치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대하는 태도이고, 공동체를 꾸리는 방식이며, 타인과 나의 관계를 재설계하는 윤리이다.


게임은 우리가 그 태도를 실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수없이 실패했고, 때때로 성공했으며, 종종 희망을 보았다. 그 모든 순간은 단지 게임 속 선택이 아니라, 현실 속 나를 구성하는 사유의 조각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그 사유를 어떻게 현실로 이끌어낼 것인가이다. 아나키즘은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방식이며, 매 순간 내리는 선택이고,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비전이다. 이 비전을 우리는 게임이라는 작고 안전한 세계 안에서 실험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이 시리즈를 읽고, 그 게임을 해본, 바로 당신에게도 저장되어 있다.




마무리하며...우리가 꿈꾼 아나키즘은 무엇이었나


우리가 꿈꿨던 아나키즘은 무질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세상이 아니라, 강제하지 않아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우리가 실험한 자유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특권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상호적인 조건이었다. 그 자유는 법이 없어도 질서가 가능하다는 믿음 위에 서 있었고, 권위 없이도 공동체가 작동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게임을 통해 그 믿음을 반복해서 시험해왔다.


물론 우리는 이상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상은 언제나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이상이지만, 그 미완의 과정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협력하면서 동시에 불신했고, 윤리를 따르면서 동시에 무시했으며, 공동체를 만들면서 동시에 그것을 파괴했다. 그 모든 모순적인 선택들은 아나키즘이라는 사상이 인간에 대해 무턱대고 낙관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나키즘은 인간이 언제나 선하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이기적이고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단호하고, 고집스럽고, 그래서 더 윤리적인 사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단호함을 게임이라는 공간에서 처음 마주쳤다. 규칙이 없는 세계 속에서 어떤 유저는 파괴를 선택했고, 어떤 유저는 창조를 선택했다. 누군가는 사기를 쳤고, 누군가는 공공재를 만들었다. 그 모든 선택은 정해진 엔딩으로 향하지 않았다. 엔딩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구조와 같다. 현실에도 정답은 없다. 누구도 우리에게 정해진 윤리를 주지 않으며, 법이 있다고 해서 공동체가 작동하지는 않는다. 법이 없다고 해서 공동체가 반드시 무너지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선택과 실천, 반복과 실패, 그리고 성찰과 재구성 위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유저였는가.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어떤 유저가 될 것인가. 더 나아가,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가. 그리고 그 공동체를 위해 나는 어떤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나키즘은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질문하는 방식이고, 살아가는 자세이며, 무엇보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사유다. 우리는 게임 속에서 이 사유를 연습했고, 지금 현실로 돌아와 그것을 다시 반복하려고 한다.


게임과 아나키즘 시리즈는 이제 끝나지만, 그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법이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권위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무엇을 믿고 선택할 것인가. 공동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게임은 끝났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사상은 다시 시작된다. 아나키즘은 결국 세계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을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지금, 당신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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