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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 작가 Aug 07. 2023

그래서 집 고치기는 시작했나요?

  

                 등기가 났다. 복비를 냈다. 집 고칠 업체가 불쑥 생겼다. 이것이 드라마.    

 

배고프면 먹고, 배 아프면 싸고, 졸리면 자야지 굴러가게 만들어진 존재란 걸 오랫동안 망각했다. 배가 불러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밤을 하얗게 밝히며 다음을 꿈꾸고 싶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저지른 불씨 하나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한다.      


공인중개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잔금은 예정된 날에 만나서 처리하기로 했는데, 그런 이야기는 온데간데없고 계약서에 나와 있는 매도인의 계좌번호로 돈을 보내란다. 그리고 매매계약서에는 계좌번호가 없다. 그리고! 법무사에서 전화가 온다고 했지만 연락도 없다.      


몇 시간이 흘렀다. 낯선 번호, 법무사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잔금을 보내야 등기 처리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돈 떼먹은 거 아니잖아요’. 등기비용이 얼마냐고 물으니 잔금을 치러야 알 수 있단다. 공인중개사에게 이전에 계약금 넣었던 계좌로 돈을 부쳐도 되냐고 물으니 그러라고 하면서 복비 100만 원 달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잔금을 치르고 공인중개사에게 문자를 했다. 복비 100만 원을 드릴 수 없다고. 그랬더니 득달같이 전화가 온다. 왜 100만 원 주기로 하고 안주냐는 거다.


그래서 “저보고 매도인 복비까지 내라고 해서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100만 원이라고 하셔서 알아봤더니 16만 원씩 32만 원이더라고요. 그런데 왜 100만 원이라고 했나요?”라고 되려 물었다. 그랬더니 그럼 80만 원으로 깎아 준단다. 그러면서 리모델링 소개 했으니까 돈을 계좌로 당장 달란다. 그래서 “리모델링 소개비가 포함된 거였나요? 저는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요? 올 리모델링해서 2500에 해준다는 말과는 달리 5000이 넘는다고 하던데요?”라고 물으니 그래도 달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그동안의 나는 당하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 집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물었다. 그렇다고 해결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분명 나는 상황의 어긋남을 말할 수 있는 만큼 달라져 있었다.  

집 잔금을 치르고, 부동산 복비를 내고, 법무사 비용을 냈다(수수료가 20만 원이 넘는다). 왜 이야기를 하나도 안 해주고 물어보면 그런 걸 왜 묻냐는 식의 메아리가 쳤다.      


그리고 H로부터 전화가 왔다. “등기 들어갔다면서요?” 란다. 바로 공인중개사가 말했던 리모델링 업체 사장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 자신이 전화해서 알았단다. 그래서 비용이 5000만 원이 넘게 든다고 해서 할 수가 없다고 하자, 3000만 원에 맞춰준단다.   

                             

 내외부 페인트, 바닥 장판, 옥상 방수, 보일러 배관 및 보일러는 제외하기로 했다. 물은 전기 순간온수기를 사용하면 되니까. 보일러는 추후에 전기판을 설치하면 되니까. 바닥은 에폭시로 하고 내외부 페인트와 나무 문살의 오일스테인은 여자 둘(해와 그리고 달이)이 하기로 했다.      





등기부등본에 내 이름이 있다. 실감이 난다. 나의 첫 주택이다.      


H는 공사 시작을 서둘렀다(정말 공사가 아니라, [공사 시작]을 서둘렀다). 계약 시 공사대금의 50%를 달라고 해서 특약사항을 넣어 메일을 보냈다.


특약사항은 다음과 같다.

공사대금 지급 방식: 시공업자는 계약금으로 공사대금의 50%을 선납부하고, 공사의 80% 완료 시 중도금 30%, 공사 완료 후 1~2주 이내에 잔금 20%를 납부할 것을 요구하였다. 시공업자는 이에 따른 표준계약서와 대금 지불 확인증을 발부한다.      

공사 시작일: 2023년 5월 29일~ 공사 종료일: 2023년 6월 14일 수요일. 공사 진행 시 추가 금액을 요구하거나 공사 소요 예상 시일보다 10일 이상 연장하며 공사를 미룰 시에 공사 대금의 2배를 지체보상금으로 3개월 이내에 지급하기로 하며 계약은 파기된다.      

공사면허증 사본(실내건축면허): 공사대금 1500만 원 이상일 경우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제공하기로 한다.      

시공일정표: 시공업자는 철거, 창호, 전기, 오수, 목공 등 견적서에 있는 공사 날짜에 따른 일정표를 공사 시작 전에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추가금액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재변경 시 동질 동가 제품으로 시공해야 하고 이 사실을 미리 소비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시공업자가 소비자에게 공사대금 이외 비용을 청구하거나 요구할 시에 공사를 취하할 수 있다.      

시공업자는 시공 전에 소비자와 충분한 협의 후에 진행한다. 시공업자는 계약 시에 견적서 세부 내역을 전달하지 않아 소비자가 재차 요청하였으나 협의하며 진행하자며 전달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견적서에서 소비자가 제하거나 조정하고자 하는 것을 협의하기로 하였다.      

하자보수기간: 실내건축표준계약서에 따라 무상수리기간은 실내건축공사 1년/창호 2년으로 한다.     
 

메일을 읽은 H는 다른 말을 한다. 시공할 때마다 조금씩 돈을 달란다. (H는 3달이 지나도 시공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철거비용부터 달라고 했다. 드디어 공사 시작이다. 철거를 하니, 벽체에 금이 세로로 굵게 가 있다. 이래도 구조보강을 안 해도 된다고 하는 건가. 50년 동안 온전히 버티는 게 가능했겠는가. 그렇다. 천고가 낮아 천장에 댄 석고보드를 제거해 달라고 했는데 안된다고 하더니, 다음에 갔을 때는 천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상량문에는 1984년이 아닌 1970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14년을 더 먹은 집이 해맑게 웃고 있는데 싫지 않았다. 속아도 더 이상 얄미워하고 미워할 수 없는 현실이다. H는 내 말에 안된다고 하는데 다음에 만날 때는 내 생각을 많이 반영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만큼 처음 설명과 많이 바뀌기도 했는데, 지하수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더니, 이내 안될 거 같다며 상수도과에 전화해서 신청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H는 집이 무너지지 않게, 앞으로도 50년은 더 살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하는데, 일단 처음은 겁이 나서 둘러보기도 무서웠다. 이런 집이 온전히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H는 처음에는 공사를 서두르더니, 이내 미루기 시작했다. 계약서 쓰러 내려가서는 앞으로 어떻게 고칠지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듣고 오기를 반복했다. 처음 철거 시에는 여자 둘이 페인트를 직접 한다고 해서 벽지를 최대한 다 뜯어놨다고 해서 고마웠다. 서점 자리의 벽지를 여자 둘이 뜯어놓은 것을 보고 나머지 부분을 처리해 주신 거다. ‘이제 본격적인 집 고치기가 시작되겠군.’이라며 좋아했다.  H는 장점과 단점을 고루 갖춘 사람이었는데, 꼼꼼한데 끈기가 없고, 말로는 허허벌판에 최첨단도시라도 세울 것처럼 이야기를 했지만 미적감각과 견고함이 반비례했다(뭐든 예쁘게 하려고 하는 건 고마운데...).      



그리고 돈을 계속 요구했다. 이미 총 공사대금의 400만 원만 남은 상태였는데, 전기, 통신, 새시 등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나머지 400만 원을 달라고 하니, 더 이상은 웃을 수 없었다. 레미콘도 안 쓰고 돈은 내라고 하는 형국이었고, 기존에 새시를 쓰기로 했던 것도 높이가 맞지 않는다며 추가 비용을 요구했다. 미장도 내외부 미장 전체라고 해놓고는 일부만 하고 벽이 으스러지는 곳을 지적하자 추가로 돈을 더 달라고 했다.

     


주택 공사를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났다(지금도 ing입니다만). 인터넷에서 오래된 집을 멋지게 고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시공업자와 등진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나는 정말이지 내가 살 집을 고친 이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집이 어깨를 펴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움을 준 이들과 해월가에서 보고 싶었다.       


장마가 오기 전에 공사를 마쳐야 한다고 시작을 서두르더니, 결국 장마가 오기 전까지 마무리 못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됐다. 밤부터 아침까지 중부와 남부지역에 많은 비가 예상된다는 안전 안내 문자가 여러 통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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