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은 예상치 않은 곳으로 흘러간다. 그날도 직장을 벗어나 신주쿠 인간으로 회귀했다. 사장이 없는 신주쿠, 통화 속 초조한 목소리. 나는 순진한 구석이 있다. 장사를 마무리하고, 번 돈을 돈 통에 넣어두고 친구 집에 숙박비를 내고 잠을 자러 갔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을 무엇이었을까? 왜 그토록 신주쿠 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사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을 보기 힘든 사람이 됐고, 이제는 알 수 없는 사람이 됐다. 그 사이에 여전히 신주쿠 부품으로 남고자 했던 내가 있었다.
사장은 주방 앞 쪽에 종이가방을 걸어두고 거기에 돈을 담아 놓았다. 잔돈은 천 원짜리 지폐 스무 장과 만 원짜리 지폐 4장, 합해서 육만 원. 그날도 어김없이 번 돈을 돈통에 넣어두고 가게 문을 닫았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바닥 물걸레질을 하고 의자 정리 후 닫고, 철문을 내렸다.
사장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주말에 다시 가게에 갔다. 가게는 마음을 떠난 들판으로 남아 있었다. 물건은 내일이라도 다시 장사를 할 것 같이 그대로였는데, 쥐들은 이곳이 끝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이 천장에서 찍찍찍 소리를 쉬지 않고 내고 있었다.
상황을 알 길이 없어 얼마의 시간을 서 있었다. 앞 가게 사장이 들어왔다. 도박 빚을 지고 도망을 갔단다. 사장과 친분이 있는 그들은 적게는 나처럼 몇 십 만 원, 많게는 몇 백까지도 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모두들 신고는 하지 않았다. 그동안 사장에게 받은 것이 그것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오 년간 받은 것을 돈 사십만 원으로 갈음할 수 있을까. 삼촌처럼 챙겨주었던 그 고마움에 연민을 가졌다. 그 뒤로 여전히 사장과의 연락은 되고 있지 않다. 그 사이 내 번호도 바뀌었다. 시간차를 두고서야 상황이 파악될 때가 자주 있다. 나는 그런 류이다. 남들은 다 아는 것을 나만 모른 채 꽤 오랜 시간을 지낸다. 잘못된 방향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가야 했던 삼촌은 지금 어디에 이르렀을까.
보통 일하던 곳과 마지막을 고할 때는 사장이 해고를 하거나 직원이 그만둔다고 하거나, 장사가 되지 않아 가게 문을 닫아야 하거나 아니면 사장이 바뀌고 점원도 바뀌거나 그러한 종류의 것으로 관계 정리가 된다. 그럴 때는 짧든 길든 헤어짐에 시간이 주어진다.
하루아침에 오 년간 함께 흘러왔던 공간이 사라졌다. 이것은 공간이요, 공간이 아닌. 건물은 있으나, 소리 없이 사라진 그와 함께 자취를 감춘 내 것의 공간. 사장이 사라지고 다시 가게에 갔을 때 봤던 폐허의 현장은 나를 다시 그곳으로 불러들이지 않는 모습이 됐다. 신주쿠는 그렇게 사라지고 여러 간판을 달고 여러 형태로 태어나는 듯했지만, 그 변형된 곳에 더 이상 발을 들이지 않았다.
내가 신주쿠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때가 사장이 가게를 맡은 지 삼 년 정도 됐을 때였고, 그 뒤로 오 년 정도 함께 했으니, 가게는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하지 못한 내 나이 스물다섯에 막을 내렸다. 그때 함께 혹은 내가 가르쳤던 아르바이트생들은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고, 가게의 물건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서른여섯 살이 됐고, 다른 세계의 부품이 되었으나, 어느 때, 가끔씩 나는 그곳의 일상으로 빠져들곤 한다. 아마도 그곳에서는 내가 조금은 생동감 있는 부품,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달려가 떠오르는 영감에 몸부림치기도 했던 미숙했지만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서 일까. 지금의 나에게 그곳은 여전히 작은 위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