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여러 곳의 부품으로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신주쿠에서만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신주쿠에서만큼 환영받은 것도 물론 아니다.
스무 살 때 Y의 소개로 가게 된 고깃집은 으리으리한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당시 시급 사천 원을 받았고, 고기를 구워주면 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르바이트가 아닌 직업으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우리들의 시급을 알고, 내쫓아버렸다. 그때의 내 반응은? 잘 됐다 싶었다. 일하기 싫었는데.
그리고 다음에 일했던 C호프는 얼굴에 '불 화'자를 얹고 있는 부부사장의 인상이 두드러진 곳이었다. 웃음도, 가는 눈만큼 싸했다. 그곳의 나는 시급으로 계산됐다. 내가 있음으로 인해 벌어들이는 효과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화를 내기 일쑤였다. 손님이 없는 것에 대한 개선보다는 계속해서 화가 난 얼굴로 있기에 바빴고, 물건을 너무 아껴 손님들이 왔다가 질식해서 나갈 것만 같았다. 결국 손님이 너무 없어서, 잘렸다.
자기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깎아 내리지 마라. 그런 태도는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꽁꽁 옭아매게 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지금까지 살면서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을 항상 존귀한 인간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라는 것이다. 니체.
그리고 또 어딘가는 K대학 근처 호프집이었는데, 사장이 성적인 발언을 자주 하는 사람이었다. 다행인지 나는 무수히 많은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후보에 오를 때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결국 그곳은 이런저런 불법으로 갑작스럽게 문을 닫아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도 신주쿠가 현실에서 없어지기까지 나는 다시 신주쿠로 흘러갔다. 신주쿠가 아직 있다면, 나는 지금도 그곳의 어딘가에서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