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수 없는 이유 1
우리 남편은 대체 어쩌다가 나의 신뢰와 애정과 기대를 한 몸에 받다가 결혼하자마자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을까. 분명 내가 뿅 반했던 남편의 모습이 있었고 연애도 시작했고 약혼도 결혼도 한 건데. 내가 반한 그 남자는 어디 갔지?
문제는 내가 이 사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채로 우리가 결혼하면 이 사람이 이렇게 변하겠지 더 나아지겠지 하는 헛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자 내 눈에 거슬리는 단점만을 보고 그를 재활용도 안될 쉬레기 취급한 것이었다. 그렇게 원해서 어렵게 결혼했는데...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우리가 연애할 때 나는 당시 남친이었던 그분이 아플 때 죽을 끓여주거나 곁을 지키며 상태를 살피거나 하는 방법으로 간호를 해주고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내가 아플 때 그분은 비타민을 주거나 내가 사다 달라고 하는 약을 사주거나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것이 끝이었다. 말로는 네가 정말 걱정돼 얼른 나았으면 좋겠어 푹 쉬어 그래 놓고는 저녁에 지역축제에 가서 놀면서 이렇게 재밌는 일이 있었다면서 사진을 보내다니?! 당연하게도 다음 날 너는 내가 아프다는데 신경도 안 쓰냐고 여자 친구가 아파 누워있는데 간호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축제를 가고 싶냐고 이딴 사진은 대체 왜 보내냐고 대판 싸웠다
나는 왜 그랬을까. 우리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누가 아프면 그렇게 해줬으므로 당연한 것. 그러면 남편도 마찬가지로 시부모님이 그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해줬으므로 그가 아는 한 그것이 최선이었던 것.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나를 간호해주고 진심으로 걱정을 표현했고 자신이 축제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것을 나와 공유해주고 싶었고 나도 사진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것이었다.
아 남편은 그런 지극정성의 간호를 받아본 적이 없구나. 남편의 부모님은 아들이 아파서 누워있어도 부모님의 일과를 우선시하고 부모님의 인생을 사시는 분이셨나보다. 그래서 그는 그런 정성 어린 돌봄을 주고받는 그 따스한 마음을 모르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아파서 혼자 끙끙 앓았을 어린날의 남편이 조금 짠하다.
상대가 한 말을 단어 그대로 듣고 그 의도를 그가 설명한 대로 인정한다면 싸울 일도 없겠지만 사실 마음이 그렇게 되질 않는다. 그러나 또 다르게 본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고 그것이 틀렸다고 닦달해봤자 내가 얻는 게 뭐가 있을까.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나는 이미 아팠고 그 사람은 이미 다 놀고 왔고. 내가 다음에 아팠을 때 이 사람이 엉거 주춤으로 나를 간호해준다고 해봤자 지난번에 축제 가서 놀고 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때 내가 화를 내고 난리 쳐서 이 사람은 지금 어쩔 수 없이 나를 간호한다는 꼬인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고.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일까? 그런다고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하면 내가 다음에 또 아플 때 이 사람이 나가 논다고 하면 내가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그래 나가 놀아라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아픈데?
나는 결국 나의 감정 기복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에 나만의 환상과 기대를 가지고 상대의 진정성을 평가하고 내 기준에서 너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바가지를 긁은 것이다. 내가 원하는 애정표현은 ㄱ ㄴ ㄷ 이였는데, 남편이 알고 있고 해 줄 수 있는 표현은 A B C 였던 것. 나는 ㄱ ㄴ ㄷ 의 존재조차 모르는 남편에게 그것들만 강요하고 남편이 열심히 보여줬던 A B C 의 존재를 인정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