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미워질 때
우리가 바다수영할 때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몸에 힘을 빼야 한다는 점이다. 밀물 때 파도를 역행해서 헤엄치려 한다면 파도에 밀려서 육지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오히려 지쳐서 익사할 위험이 높아진다. 거센 파도에 밀려났을 때는 파도에 대항하지 말고 비스듬히 파도 옆으로 헤엄치다 보면 어느새 조수의 끝에 도달하게 되고, 그러면 쉽게 해변으로 헤엄쳐 갈 수 있게 된다.
파도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대이다. 내가 파도를 멈추게 할 수도,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파도를 치게 만들 수도 없다. 지구의 자전과 해와 달의 인력, 조수 간만의 차, 자연의 섭리를 나 하나가 어떻게 이기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에 힘을 빼고 최대한 빨리 파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내가 지금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파도와 같은 감정에 내 마음이 울렁이고 있다면, 잠시 힘을 빼고 기다리자. 남편의 숨소리조차 듣기 싫을 때가 있어도 그냥 상황 자체를 아무 감정을 싣지 않은 채로 바라보자. 남편이 무슨 짓을 했던, 남편이 어떤 잘못을 했던, 지금 이 파도가 지나갈 때까지 숨을 참고 몸에 힘을 뺀다고 생각하고 파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자연히 떠오르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지금 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여기서 조금씩 더 나아가는 것.
남편이 의심 가는 상황에서 그를 계속 몰아세우면 더욱 교묘히 더욱 치밀하게 숨길 것. 그 욕구를 억지로 눌러봤자 잔뜩 흔들어 놓은 탄산음료처럼 언젠가는 펑 터지게 되어있다. 그 탄산을 가라앉히려면 한참을 가만히 놔둬야 한다.
남편도 살려면 숨 쉴 틈이 있어야 되는데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다그치고 나무라고 따져대고 닦달하면 그는 당연하게도 나를 더더욱 피할 테니. 그게 얼마나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지 보다는 그냥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듯이 남편도 궁지에 몰리면 사랑하는 아내를 공격하는 것.
상대도 사람이고 상처 주면 상처받는다. 그게 본능이고 누구나 그런다.
상대를 증오하고 원망하고 과거에 그런 선택을 한 나를 후회해봤자 지금의 나만 괴로워질 뿐이다. 그에게 분노를 폭발해내고 내가 얼마나 억울하고 배신감 느끼고 한이 서렸는지 그 날것의 감정을 쏟아붓는다면 그 부정적인 상황을 버티는 것 자체가 그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건 시간뿐이다. 자신이 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 만약 그 시간 동안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내가 아무리 화를 내봤자 어차피 그는 진심으로 반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그가 좋은 사람이라면, 결혼을 유지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와의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화를 내지 않아도 죄책감을 느끼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미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남편이 소름 끼치게 싫어질 때, 나는 그 파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