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없는 이유 2
내가 느꼈던 남편과 나의 또 다른 차이는 우리의 체력 차이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이 체력이 거의 바닥인 수준으로 보내고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편이다. 그러므로 카페인의 도움과 남아있는 온갖 체력을 끌어모아 딱 해야 할 일들만 빨리빨리 한다. 그래서 그의 온 세상 시간과 여유를 다 가진 듯한 느릿느릿한 행동들을 너무너무너무 답답해했다. 대체 왜 길을 미리 확인 안 하고 저렇게 헤매는 거지? 대체 왜 계획을 허술하게 세워서 시간을 허송으로 보내고 있지? 이렇게 딱 딱 하면 바로 될 텐데! 앉으면 삼천리 서면 구천리가 보이는데! 왜 강아지가 자기 꼬리 쫓는 것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예를 들어 어느 장소로 이동할 때 우리는 차가 없으므로 나는 최단거리 최단시간을 미리 알아보고 버스 시간까지 맞춰서 버스를 타고 간다. 가서 그 행사나 업무에 초집중하고 집에 올 때는 녹초가 되어 다시 버스나 택시를 타고 온다. 일단 나에게 중요한 것은 집에 빨리 가서 충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택시비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것.
남편은 한 시간 거리 정도는 걸어가면서 길가에 식물들이나 장식, 특이한 건물들을 감상할 정도로 여유가 있고 사무실에 가서도 일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고 할 정도로 체력이 받쳐주는 것. 올 때도 체력이 된다면 걸어오거나 조금 피곤하다 생각되면 버스를 타는 것.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무언가가에 쫓기는 것처럼 조급하고 불안해 보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 주변을 둘러보며 잠깐의 여유를 가졌으면 기분에 환기를 가졌으면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 되는 상황은 나는 너무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야 조급한 마음이 진정될 것 같은데 남편은 아직 에너지가 넘쳐서 밖에서 더 놀고 싶어 하는 것. 이왕 밖으로 나온 거 이 태양 이 날씨 이 공기를 조금 더 즐길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수도 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기가 어렵고 우리 둘 다 불만족인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인지하고 둘만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너는 그걸 왜 몰라줘 가 아니라 나는 지금 이런 상황이고 이런 해결을 원해 라고 알리기.
예를 들어 남편이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서 나를 데리고 여행을 간다면? 나는 한 시간만 걸어도 체력이 바닥나서 힘든데 남편은 아직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 다섯여섯 시간을 걸어 다니고 싶은 경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능력치를 알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중간중간 카페나 디저트를 먹는 시간을 넣고 하루에 현실적으로 몇 km나 걸을 수 있을지, 몇 군데 정도 관광할 수 있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나는 너무 힘들어서 못 나간다면 남편이 가고 싶은데 나는 별로인 곳은 남편 혼자라도 갈 수 있도록 계획에 포함하여야 할 것.
그리고 나면 내가 아무리 답답해했던 그의 느릿느릿 천하태평한 행동도 결국엔 장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카페트에 음식을 쏟는 대형 실수를 쳤을 때 그릇을 떨어뜨려 깨버렸을 때 등등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경우 침착하게 해결해주고 나의 안전을 신경 써주는 것 역시 남편인 것. 그리고 그의 그런 장점은 충분히 배울만 하며 그에게 당신의 그런 점은 정말 존경한다고 그런 너의 모습은 빛이 난다고 내가 반했던 너의 모습이라고 표현해 준다면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