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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r 21. 2022

남편의 발작 버튼

갈 수 없는 이유 3

결혼하면 사소한 것에서부터 불만이 시작될 때가 있다. 대체 왜 저럴까 아무리 머리 싸매고 고민해봐도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 않을 때. 사실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이해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이해해 봤자다. 어차피 쟤는 계속 저럴 거고 옆에서 내가 백날 이야기해봐야 귓등으로도 안 듣는 사람이니. 느릿느릿 그의 방식을 보고 있자니 내 속만 터진다.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돈은 돈대로 얼마를 쓰고도, 생색은 생색대로 그렇게 내고서도 간단한 일처리 하나를 제대로 못하니...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범위 밖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습관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이유는 내가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더 효율적인 방법 더 빠른 방법 더 나은 방법을 나는 알고 있고 제일 좋은 방법으로 하는 것이 내게는 당연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남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방법이 가장 익숙하고 편안하니 그 방법을 고수하는 것일 뿐. 그런 그의 선택과 행동들이 나에게는 너무너무 답답하게 느껴진다. 결과가 어찌 됐든 그는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건데도 말이다.




발작 버튼이라는 말이 있다. 건드리면 살해당하는 역린. 누군가의 약점, 아킬레스건, 콤플렉스, 흑역사, 민감한 주제.


발작 버튼이 많은 사람들을 예민하다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절대 나 스스로를 낮추거나 내 잘못이라고 몰아가게 두어선 안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민한 기질이 절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민하다는 것은 능력이다. 최신 유행의 선두주자, 다양한 자극과 새로운 것의 필요성에 반응하여 새로운 기술을 창조해내는 개발자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감수성,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적, 미술적, 행위적 예술가들 등 예민한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다채로울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러한 기질을 활용한다면 나의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 터치폰과 아날로그 전화기를 비교해보자. 스마트폰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수많은 어플과 기능은 여전히 개발되고 있으며 더 가볍고 더 튼튼하고 더 편리하고 더 빠른 성능을 위해 발전 중이다. 그리고 카메라 화질이나 음질 음성인식 자동완성 예약 설정 등 다양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 용량도 더 필요하고 배터리도 더 많이 쓴다. 기능은 그대로지만 휴대성이 좋은 작은 사이즈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전 테크놀로지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나은 더 효과적인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화기 본연의 기능을 놓고 본다면 옛날 옛적에 쓰던 번호 하나하나 돌려서 쓰는 다이얼 전화기 나 버튼을 꾹꾹 눌러서 입력하는 전화선 꼬불꼬불한 일반 전화기로도 통화는 할 수 있다는 점.




누군가는 손끝만 스쳐도 반응하는 스마트폰이라 순간의 터치로 실수로 전화가 걸리거나 앱이 열리기도 한다. 누군가는 손으로 꾹 오래 눌러야 버튼이 입력되는 사람이 있고 버튼이 눌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어느 행동에 상처를 받는다면 내 발작 버튼이 눌린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더 이상 상처를 받기 싫다면 내가 왜 이 부분에서 상처를 받는지 깊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당연히 이 사람이 누군가가 내 버튼을 누르니까 나에게 상처를 주니까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분명 누군가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별일 아니라는 듯 쿨하게 넘길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기분이 상하거나 또는 기분이 좋아지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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