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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Oct 20. 2021

그들은 정말 행복했을까?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그들은 정말 행복했을까? 


어느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는 것, 주어진 상황에 만족할 수 있는 것, 모두 분명 능력이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하루하루 묵묵히 일한 그녀들이 진정 대인, 성인군자, 비폭력 평화주의자이다. 그래서 공주인가? 그들의 결말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이지만 사실 이게 그들이 행복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만약 백설공주라면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나를 가정부처럼 부려먹는 계모와 한 집에서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공주인데 매일 궁전을 쓸고 닦고 청소해야 한다면 그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나를 괴롭히고 싫어하는 새엄마를 데려와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데도 방관하는 아빠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계모는 나를 싫어하다 못해 청부살인까지 감행하고, 내가 공주인데 나의 성을 떠나 도망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살아갈 의지를 찾을 수 있을까? 꽃을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동물들과 이야기하고 밝은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을까? 어딘지도 모르는 숲속에서 탄광촌에서 일하는 난쟁이들과 함께 살 수 있을까? 그들을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 내가 살아있어서 감사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내가 행복할까? 괜찮을 수 있을까? 웃을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신데렐라 라면 일찍이 양친 모두를 여의고 나와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계모와 새언니들과 한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내가 태어나고 평생을 지낸 곳인데 뜬금없이 계모가 내 모든 권리를 박탈해버리면 내가 참을 수 있을까?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으며 온갖 궂은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그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나는... 만약 성에서 열리는 무도회 소식을 듣고 엄마의 낡은 드레스를 입고 갈 용기가 있을까? 휘황찬란한 성 안에서 낡디 낡은 드레스를 입고 자격지심 없이 즐길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급진 드레스에 장신구를 차고 입장하는 곳에서 수수한 드레스에 평범한 신발만을 가지고 성으로 향할 자신이 있을까? 나를 금은보화로 치장하지 않고도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할 수 있을까?


몇 년을 하인 취급을 받으며 매일매일을 고달프게 지내다가 무도회에 가서 바로 왕자와 독대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메너와 에티켓을 여전히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걸레빨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느라 거칠어진 손으로 왕자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힘든 일상에 찌들어 있는데도 내가 맑은 눈빛을 유지할 수 있을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영양도 부족했을 텐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바른 자세로 걸으며 우아한 몸짓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단한 하루일과를 끝마치고도 기본적인 상식이나 문학을 공부할 수 있을까? 내 눈빛, 말투, 자세, 표정 전부 왕자앞에서도 자연스러울 정도로 내 몸에 배어 있을 수 있을까?


그 화려한 무도회를 보며 12시 땡하면 도망쳐나와야 하는 나의 신세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팔자를 한탄하지 않고 그래 정말 재밌는 경험이었어 이정도면 충분해 하면서 담담히 돌아설 수 있을까? 다시 하녀취급 받는 집으로 돌아가서도 불평불만이나 분노를 터트리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정말 도망치고자 하는 의지나 더 나은 삶을 향한 욕구를 잘 다스리며 더 나은 기회가 올 때 까지 차분히 기다릴 수 있을까?


왕자가 신발이 맞는 아가씨를 찾으로 왔을때 하녀같은 처지의 내가 당당하게 그 구두의 주인이라고 나설 수 있을까? 계모와 새언니가 보고 있는 앞에서 나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옷차림과 처지에 굴하지 않고, 나를 공주로 알고 있었던 왕자에게 사실은 나는 천에 고아에 하녀처럼 살고 있었지만 그게 나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왕자가 나를 알아봐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동안의 일들을 과거로 인정하며 계모와 언니들을 용서해 줄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인어공주라면 가족, 친구,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터전과 내 나라를 떠나 사랑을 찾기 위해 그의 나라로 갈 용기가 있을까? 나의 목소리를 희생하면서까지 그를 만나기 위해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장애를 입히면서까지 그 사랑을 찾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치면서 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내가 그를 위해 어떻게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그가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축복하면서 내가 더 성숙해질 수 있을까?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부려서 사랑을 찾으러 갔는데 원했던 결과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래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역시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은 하는 거 아니었어 하면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보았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위안삼을 수 있을까? 그와 보낸 시간이 정말 행복했고 나는 그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







내가 앤이라면 남자아이가 아니라서 파양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을까? 엄마아빠도 모르고 살며 왜 나를 고아로 버렸나고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를 도와줄 일손으로 입양한 분의 집에 얹혀사는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집안일이랑 농장일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밝은 색 옷 하나도 없이 회색 옷만 주구장창 입으면서도 내 마음은 밝게 가질 수 있을까? 내가 없는 모든 것을 가진 옆집 아이에게 자격지심 없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결핍되어있는 상황에서도 나에게 있는 상상력과 긍정적인 마음을 믿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대가 위니 더 푸. 매일 행복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는 곰돌이. 작은 일상에, 친구들에게, 소소한 에피소드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행복할 줄 아는 bear of very little brain 푸는 정말로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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