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간 척화비들
‘시애틀 프리즈 Seattle Freeze’는 외지인들을 배척하는,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실제로는 차가운 사회적 분위기를 지칭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차도녀/차도남들의 도시랄까.
시애틀 프리즈는 단순한 사회적 경향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문화적, 기후적, 역사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한다.
일단 시애틀은 흐리고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야외 활동이 한정적이고 자연스럽게 집에 머무는 시간을 선호하게 된다. 게다가 일조량의 부족으로 계절성 우울증의 위험이 높고 소극적인 인간관계와 고립감을 높이고,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에 더하여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북유럽 이민자들의 정착으로 이들의 문화적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다. 소극적/내향적인 인간관계 지향, 개인주의 성향, 그리고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지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기사 스웨덴게이트라는 말고 있고 경제적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친구집에 놀러 갈 때 '친구비'를 낸다고도 하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는 원인은 ‘얀테의 법칙 Janteloven’ 이다.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는 십계명은 스칸디나비아 문화권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강력하게 통제한다고 한다. 개인의 개성보다는 공동체의 조화를 중시하는 규범이다. 사실상 사회적으로 용인하지 않는 집단주의적 성향.
얀테의 법칙, 사실 우리 모두가 고민해 본 사항들이다. 대부분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비교하고 자제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튀어도 자의식 과잉이라고 평가받으니까. 내가 이곳에서 주류에 속해 있었다면 겸손이라는 명목으로 이 법칙을 아주 열심히 지켰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인 주류 사회에서 아시안은 다르다. 특별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다름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 똑똑하고 낫고 중요하고 잘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다르다는 것. 이 본질적인 다름으로 인해 그사세에서 배척당하는 것. 그들은 ‘정중한 무관심’ 을 표방하지만 나의 존재 자체, 즉 나에게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다면, 특히나 그것이 그들 입장에서 손해라고 느껴진다면, 더 이상 무관심에 그치지 않는다. 평생 특권을 누리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평등이 억압처럼 느껴질 테니까.
내가 처음 ‘시애틀 프리즈 Seattle Freeze’라는 단어를 들은 건 올해 초 부서 이동 직전 즈음이었다. 시애틀 지역에 한인 단톡방에서 한 분이 시애틀 프리즈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직장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면전에서는 친절한 것 같지만 뒷담화 겁나 한다고. 그게 문화라고 ㅋㅋㅋㅋㅋ 하필 딱 그즈음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어서 이게 문화라니 차라리 다행인가 싶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 스칸디나비아 정체성도 얀테의 법칙도 결국 내로남불이 된 것 같다.
배타적인 지역 문화 때문에 타 지역이나 타 문화권 출신은 적응하기 어렵다는 얘기는 들어봤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그거는 그거대로 놀랍다. 심지어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유치하게 행동하는 게 보여서 더 충격이다. 그 나이 먹고 저러고 싶나...? 하지만 이것도 당연하게 연륜이 쌓일 것이라는 나의 편견이겠지? 저러고 싶으시니까 저러시고 계시겠지? 뒷담화로 교묘하게 괴롭히고, 비꼬거나 눈치 주는 거는 일상에, 자기들끼리도 은따시키고 서로 이간질하고 난리...
진짜 사람 미치게 하는 건 그들의 수동공격성 passive aggressive. 진짜 교묘하게 괴롭힌다. 이게 시애틀 문화인가? 갸우뚱스럽기도 하다. 미국 문화? 백인 문화? 미국 북서부 문화??? 이런 사람들이 시애틀 사람? 어쨌든 현지인들이긴 한데...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뭐 지역적 특성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그럴 사람들은 그러겠지만 말이다.
이 몇몇 사람들 때문에 내 마음이 점점 더 좁아져서, 다른 사람들의 나에게 베푸는 친절과 선의를 의심하게 될까 봐 답답하다. 이 웃는 얼굴이 나만의 착각인가? 에휴 모르겠다. 분명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결국 애사심은 조각나고 그냥 휴가나 많이 쓰면서 최소한의 일만 하자는 결론에 다다른다. 조직이 개인을 무력화하는 전형적인 과정.
차라리 개인주의를 해줘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