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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지예 변지혜 Feb 29. 2024

모르는 사람에게 건네받은 휴지

복잡한 지하철에서 위로받다.

"....."(쓰읍 콧물을 마셨다)


퇴근 후 약속 장소로 향하기 위해 퇴근 지옥철을 탑승했다. 밖은 아직 사람이 많아 후끈 거리는 열기 속에서 훌쩍거렸다. 남자친구와 통화하는 중에 나온 콧물. 눈물이었다.


".... 나 오늘도 틀렸어. 잘 나가다가 1개 틀려버렸어... 그래서 혼났어..."

전화기 너머로는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자... 괜찮아...라는 목소리를 토닥거릴 때마다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맺혀버렸다. 왜 나는 회사에서 100점을 맞을 수 없는지. 완벽하게 해내서 회사 부서의 평화를 지켜내다가도, 내가 한 개를 틀리면 분위기는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는 그런 상황이 연출되는 것일까... 그렇게 퇴근 지옥철에서 오늘도 나를 자책하는 지옥길로 몰아버렸다.  



더워서 옷가지와 가방을 지하철 선반에 두었다. 한쪽 이어폰은 귀에 끼고, 한쪽 손에는 이어폰 한쪽과 책을 들고 있었다. 이어폰으로 하면 전화 목소리를 크게 해야 해서,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전화받다가 이어폰 한쪽을 손에서 놓쳐버렸다. 아무리 바닥을 찾아봐도 흰 콩만 한 이어폰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환승역에 도착해, 문이 열려 사람들이 혼잡하게 지나갈 때쯤.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일어서 혼잡스러운 사람들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콩알만 한 이어폰을 집었다.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지하철의 손잡이를 잡으며, 조용히 통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계속 흐르는 눈물... 주위 사람 몰래 울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주의 사람들은 주변상황에 관심이 없으니 울어도 부끄럽지 않은 느낌들 기도 했다.


'툭툭'

내가 서있던 바로 앞왼쪽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께서 아무 말씀 없이 휴지를 건네주셨다. 


"아이코...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건네받은 휴지. 휴지를 받는 순간 수도꼭지가 틀어진 듯 계속해서 콧물과 눈물을 훔쳤다. 


"여기로 와요." 

아주머니께서 일어서더구먼 저를 끌어당기며 여기 앉아라고 손짓하며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아이고 아니에요 손사래 쳤지만 앉아서 편히 울고 가라는 듯이 자리를 양보해 준 그녀. 처음 뵙는 분이지만, 너무나도 친절해서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는 5 정거장을 비좁은 지하철 속에서 서있다가 역을 내리기 전에 휴지를 한 움큼 더 쥐어주시고는 사라져 버리셨다. 


그때 그 순간. 나의 감정에. 슬픔에 너무 갇혀있었던 걸까. 그녀에게 휴지에 대한 보답 하나 해드리지 못했다. 

속으로는 너무나도 감사하면서도, 뭔가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만들어주신 지하철 의자 공간. 한 엉덩이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인데, 왜 그리 크게만 느껴지는지...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의 슬픔에 잠겨있을 것인가. 감사한 마음에 빠져있을 것인가. 


이 감정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브런치를 켜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나라면? 지하철 타고 가다가 옆에 모르는 사람이 울고 있다면, 휴지를 건네주는 용기가 있을까? 


예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예전 과거의 나는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은 흰 휴지를 통해 사랑. 이러한 배려, 감사, 존중에 대한 느낌을 몸소 받고 나니, 타인이 그렇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건네줄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에게 듣는 위로 한마디 보다, 때로는 하나의 행동이 더 마음에 와닿는 하루였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지만. 

그녀에게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말을 매일 가슴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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