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바라보는 관점과 확립에 관하여
많은 세월이 지나, 점점 내 가정은 어떻게 꾸려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부터 어떤 좋은 점들을 우리한테 적용시키면서 지혜롭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까지 수많은 고민들이 몰려왔다.
오늘은 성경말씀은 아니지만, 결혼관을 어떻게 가지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한 페이지를 깊게 곱씹으면서 나의 결혼수업 한 페이지를 장식해 보려 한다.
'결혼에 관해 바람직한 관점'을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저마다 자신의 경험이라는 왜곡된 렌즈를 통해 결혼을 보기 때문이다. 부모가 근사하게 결혼 생활을 이어 온 안정적인 집안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결혼이 좀 '수월해 보일' 것이다. 그러다 막상 본인이 결혼해 보니 변치 않는 부부 사이를 엮어 나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크게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어렸을 때든 어른이 되어서든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이나 부몬의 이혼을 경험한 사람은 결혼관이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비관적일 수 있다. 부부 사이에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정말 문제가 생기면 기다렸다는 듯 "거 봐,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포기해 버린다.
<<팀켈러, 결혼의 의미>> 中
솔직하게 연애는 하더라도, 결혼은 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나였다. 오로지 나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부모님의 모습은 썩 좋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직도 기억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시절 아침에 다 같이 엄마, 아빠, 동생, 나 이렇게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엄마와 아빠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갑자기 아빠가 화가 나서 밥그릇을 식탁 위에 던지는 바람에, 김치국물과 반찬들, 식탁 유리마저도 깨져버렸다. 김치 국물은 하얀 천장과 주변의 흰 벽지들을 빨갛게 휘덮고 있었다. 그 이후로 두 분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각자 매일 분노에 찬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으며,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이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 듯해 보였다. 성인이 되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벗어나면 행복할 것 같았기에.
지금은 그때 초등학생 시절 때보다는 대화도 그나마 하고, 관계가 좋아졌지만, 그렇게 워너비의 부부 모습은 아니다. 결혼해 봤자, 대화하면 싸움만 나는. 그래서 평소 대화도 별로 없는, 그런 무미건조한 삶을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별로 흥미롭게 보이지 않았다. 우리 앞에서는 웃으면서 지내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자식 때문에 마지못해 산다는 이유로, 같이 살아도 서로에게 비밀이 한가득 하며, 경제적으로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 된다는 삶. 그런 삶이 정말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나의 왜곡된 렌즈를 통해 결혼을 보았기에. 결혼이란 건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낄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러나 부모는 부모, 나는 나. 나는 독립적인 존재로써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현명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르게 바라보려 한다.
부모에게서 본 결혼 생활과 별개로
도대체 결혼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면,
앞으로 어떤 결혼관을 가질 수 있을까?
과거의 상처와 실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서 어떤 결혼을 꿈꿀 수 있을까?
싸우지 않는 부부는 없겠지만, 싸움 이후의 태도가 다른 부부는 존재한다.
대화가 많지 않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존중하며 침묵 속에서도 안정을 주는 관계는 가능하지 않을까?
때로는 단단한 믿음으로 말하지 않아도 사랑을 느끼는 부부는 존재한다.
‘나는 어떤 결혼을 하고 싶은가?’
‘나는 어떤 배우자가 되고 싶은가?’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