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으면서도 늘 다른 속도로 걸었다.
그는 생각이 충분히 정리된 뒤에야 말을 꺼내는 사람이었고, 나는 말을 하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주 엇갈렸다. 나는 답답함을 못 참고 먼저 말을 던졌고, 그는 잠시 멈춰 생각하느라 조용해졌다. 문제는 그 조용함이 ‘생각 중’이 아니라, 종종 당황함이나 신중함에서 비롯된 침묵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당황하면 침묵으로 일관했고, 나는 그 침묵을 거절처럼 번역했다.
그 속도 차이는 말싸움보다도, 이상하게 부엌에서 더 먼저 튀어나왔다.
같이 냉동집밥 일주일치를 만들던 날, 메인 셰프는 늘 남편이었다. 그날은 카레를 만들고 있었는데, 남편이 혼자서만 맛을 보길래 옆에서 “나도 나도, 한 입만!” 하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아직 맛이 별로야”라며 내 말을 뚝 잘라버렸다. 순간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맛을 잘 모른다 해도, 뭐든 다 맛있다고 말하는 사람이라 해도, 내가 원한 건 평가가 아니었다. 완성된 한 그릇이 아니라, 맛이 바뀌어가는 과정에 ‘같이’ 있고 싶었다. 함께 웃고, 함께 고치고, 함께 맞춰가는 그 과정에. 그런데 그 말 한마디에, 방금까지 따뜻하던 부엌의 공기가 툭 꺼져버린 것 같았다. 고작 한 숟갈이면 됐는데.
그 작은 거절이, 내가 참아두었던 감정까지 한꺼번에 건드렸다.
“우리가 같이 만드는 건데 왜 나는 완성된 것만 먹어야 해?”
나는 정말 너무하다고 소리를 꽥꽥 질렀다. 말이 커질수록 남편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는 침묵 쪽으로 기울었다. 한참 뒤에야 겨우 “아직 요리가 완성 안 되어서 그랬지…”라는 말이 나왔다.
그제야 알았다. 그 침묵이 무시가 아니라 당황과 신중함이었음을. 그는 실패한 맛, 미완성의 맛을 누군가에게 내놓는 걸 유난히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좋은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차라리 혼자 책임지고 싶어 하는 사람. 완성되기 전의 자신을 들키는 게 서툰 사람.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걸 볼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의 ‘완성’이라는 속도에 나를 끼워 넣고 싶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서 같이 맛보고, 같이 웃고, 같이 고치고 싶었다.
내가 진짜 원한 건 카레 한 숟갈이 아니라 ‘함께’였다.
눈물이 한가득 흐르고 나서야, 그제야 그는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내밀었다. 카레 한 숟갈을, 나에게 먹여주었다. 너무 늦게 온 한 숟갈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정답’을 찾는 대신, 우리만의 방법을 만들기로 했다.
부부라면 이래야 한다는 틀은 많지만, 우리에겐 그 틀이 자주 독이 되었다. 나는 말을 하며 정리하는 사람이라 감정이 올라오면 말이 먼저 쏟아지고, 그는 당황하거나 신중해지면 침묵으로 숨는다. 이 차이를 없애려 하면 서로를 고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규칙’ 대신 리듬을 만들었다.
때로는 그가, 때로는 내가 기분이 팍 상하면, 서로 번갈아가면서 침묵으로 숨어버린다. 예전에는 그 침묵이 끝이라고 느껴졌는데, 이제는 안다. 그건 끝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 위한 준비 시간이라는 걸.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다른 공간으로 가서, 물을 마시거나, 창문을 열거나, 아무 말 없이 숨을 고르는 시간. 딱 10분 정도. 길지 않게, 너무 멀어지지 않게.
그리고 다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앉는다. 먼저 입을 여는 쪽은 늘 다르다. 어떤 날은 그가, 어떤 날은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 말은 완벽한 설명이 아니라, 다시 같은 편이 되겠다는 신호다.
우리는 그 말 다음에 긴 변론을 붙이기보다, 어색하게 웃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서로를 안아주고, 뽀뽀로 마침표를 찍는다.
말로는 다 못 풀어도, 마음은 풀겠다는 식으로.
사주에서는 우리를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커플’이라고 표현했다. 서로의 다른 성격 때문에, 가끔 부딪치면서 정이 깊어지는, 자극적인 맛이 있는 관계라고. 그 말이 이상하게 현실 같았다. 우리는 늘 평온하지는 않지만, 쉽게 흩어지지도 않는다. 갈등이 생겨도 다시 돌아오는 법을, 아주 느리게라도 배우고 있다.
결혼은 나를 바꿔주는 제도가 아니었다. 대신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 시간이었고, 다듬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말로 풀어야 안심하던 나는 기다림을 배우고, 미완성을 숨기던 그는 조금씩 내어 보이는 법을 배운다.
요즘 부엌에서 그는 가끔 이렇게 묻는다.
“지금은 별로인데… 한 입만 먹어볼래?”
그 한 문장에, 우리가 만든 리듬이 담겨 있다.
속도가 달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같은 리듬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우리만의 리듬으로 다시 만나는 법을 아는 일이다. 결혼은 그렇게 사람의 성품을 서서히 빚어낸다. 완성형이 아니라, 계속 다듬어지는 상태로.
그리고 가끔은—아직 별로인 카레 한 숟갈에서도,
우린 그 한 숟갈로 다시 같은 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