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의미는 거창하지 않았다

"... 서로의 평온과 회복을 지켜주는 쉼터가 되겠습니다."

by 빛나지예 변지혜

신랑이 승진시험의 일부로 5km 마라톤을 뛰고 난 뒤, 감기에 걸렸다. 아니, 정확히는 독감이었다.


콜록콜록 숨이 걸리는 소리를 내는데도 나는 설마 하며 대수롭지 않게 굴었다.

얼굴을 비비고 몸을 맞댔더니, 정확히 3일 만에 나도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나란히 병원을 다니며 2주 넘게 골골댔다.


그러다 찾아온 주말. 거의 다 나아가는 중이었지만 혹시 몰라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오롯이 집 안에서만, 꼼짝하지 않는 주말이었다.


전날 장을 봐둔 재료로 요리를 시작했다. 작년 12월부터 이어온, 우리 둘만의 습관 같은 요리 시간. 그와 함께 요리하는 순간들이 나는 유난히 감사하다. 우리 집 멋진 셰프인 신랑님이 팔을 걷어붙이고, 2월 첫째 주 냉동집밥 밀키트 6가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야채와 메인 재료를 손질했다. 좁은 주방에서 끊임없이 생기는 쓰레기를 치우고, 그릇은 바로바로 설거지해 물기를 닦아 제자리에 넣었다. 역할은 달랐지만 방향은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하나씩 냉장고와 냉동실에 채워 넣었다.


어묵탕, 가자미무조림, 된장찌개, 제육볶음, 콩나물국, 가자미미역국. 그가 열심히 짠 메뉴 6가지를 함께 만들어 완성될수록, 우리는 아픈 주말에도 ‘다음 주의 우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가까워졌다. 냉동 꿀팁은 책에서 찾았다. 콩나물은 그냥 얼리는 게 아니라 5분 정도 데친 뒤 한 김 식혀 냉동하기. 가자미는 어차피 냉동으로 샀으니, 무조림에 들어갈 채소 재료와 소스만 준비해 밀키트 통에 척척 담아두기. 나는 포스트잇으로 라벨링을 하고, 냉동실에 탁탁 넣었다. 그 단순한 동작들이 이상하게도 뿌듯했다. 우리는 아프고 지친 주말에도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을 이런 식으로 얻었다.


저녁에는 우리가 만든 건강한 집밥으로 상을 차렸다. 맛있게 먹다가, 그가 휴대폰을 보다가 말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아내가 3월에 출산 예정이라는 소식을 오늘 카톡으로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여보, 그럼 출산 선물 챙겨야 하는 거 아니야?”


선물 이야기를 이리저리 하다가, 신랑의 입을 통해 그 친구의 결혼 이야기도 듣게 됐다.


“그 친구는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을 하더라.”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결혼의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 결혼은 사랑의 증명일 수도, 안정일 수도, 가족의 시작일 수도 있다. 그 친구의 ‘선명한 이유’를 듣고 나니, 우리는 우리 이유를 더 정확히 묻고 싶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보, 우리는 결혼을 왜 했을까? 결혼을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해?”



잠깐 정적이 흘렀다. 이 질문은 대충 넘기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설거지를 시작했고, 신랑은 접시 물기를 닦았다. 물소리 사이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결혼의 의미’를 꺼냈다.


신랑은 말했다.

“나는 결혼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그 말이 내 안에서 천천히 가라앉았다. 나는 덧붙였다.


“나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관계였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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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살아갈 수는 있지만, 사회를 살아가기엔 혼자 버티기 어려운 날들이 있다. 일이 꼬이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이 있을 때,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등을 내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는 부부가 그런 존재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와는 다르고, 친구와도 다르게, 앞으로의 시간에 ‘영원히 동행’이라는 책임을 함께 적어 넣는 사람. 그래서 결혼은 결국 “옆에 있어주는 기술”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결혼을 준비하며 질문을 모았다. 건강한 결혼이 뭔지, 독립은 어디까지 가능한지, 난소 하나가 없어도 결혼할 수 있는지, 아이를 낳을지 말지, 부모처럼 살지 않으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답은 책 안에만 있지 않았다. 우리 집 안에도 있었다.


빨래를 널다가 서로의 피곤함을 알아채고 말투를 낮추는 순간.

설거지하던 손을 멈추고 “오늘은 내가 할게”라고 말하는 순간.

한 사람이 설거지를 하면 다른 한 사람은 접시를 닦고, 한 사람이 빨래를 널면 다른 한 사람은 빨래를 개는 순간들.

거창한 의미는 그런 일상 속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날 대화의 끝에서 우리는 이렇게 정리했다. 결혼은 완성된 의미를 사 오는 게 아니라, 둘이 함께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결혼이 ‘한 번의 결심’이라면 결혼생활은 ‘매일의 합의’에 더 가깝다고.

누구의 방식이 더 옳은지 겨루기보다, 오늘의 우리가 조금 더 안전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 일이라고.


그 방법은 늘 거창하지 않다. 결국 설거지와 빨래 같은 곳에 숨어 있다.

“내가 할게”라는 한 문장, “지금은 힘들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미안해”로 다시 돌아오는 태도.




그래서 10장 마지막에, 나는 ‘좋은 결혼’을 이렇게 다시 정의해 본다.


좋은 결혼이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이가 아니라 이해가 어긋나는 순간에도 다시 대화로 돌아올 줄 아는 관계다.


각자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경제 공동체, 하나의 작은 조직이 되어 삶을 꾸려가되, 그 운영의 중심에 사랑과 존중을 놓는 관계. 힘들고 괴로운 날에 “네 편”이 되어주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확신 속에서, 설거지와 빨래 같은 일상을 나누며 의미를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


결국 좋은 결혼은 안 싸우는 결혼이 아니라, 싸워도 안전하게 돌아오는 결혼이고, 매일 작게라도 서로를 다시 선택하는 습관들의 총합이다.


내가 바라는 결혼은 결국 하나다. 서로가 서로에게 돌아올 곳이 되어주는 것.



마지막은 내가 사소한 일로 토라져 집안의 분위기가 한기가 되었을 때에,

신랑이 자신의 생각과 반성의 편지 글을 브런치에 남기었던 글을 올려본다.

글을 읽으면서 그도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가 이 글을 쓰고, 우린 서로 부둥켜안으며 미안해를 외치며 펑펑 울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토라져있어도 1일을 넘기지 않는다. 이런 무언의 둘만의 규칙이 지켜져서 다행이다.



그가 적은 글





그가 말한 것처럼 결혼식 날 함께 외친 서약의 말을 곱씹어본다.

오늘을 지탱하는 단단한 다짐이 되길 바라며.


"... 서로의 평온과 회복을 지켜주는 쉼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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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연재 글을 사랑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소소한 글들로 찾아뵙겠습니다.


지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