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기술학교 뉴스레터 제삶지대 66호 2021. 11. 5. Fri
독자님 산책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해요. 한산에 와서는 더 좋아졌어요.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걷는 것도 좋고, 혼자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도 좋아요. 가을을 맞이하고 산책 빈도 수가 높아져서 간단하게 몇 분부터 몇 시간까지도 걸어보았고, 아침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모든 시간대에 걸어 보기도 했는데요. 어떤 형태의 산책을 하든지, 항상 돌아와서는 ‘걷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어사전에는 산책을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라고 정의해요. 한층 더 근본으로 들어가 보자면, 산책은 한자로 이루어진 말로 散‘흩을 산’ 策‘꾀 책’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잘 보면, 산책을 이루는 단어 하나하나에는 ‘걷는다’는 뜻은 없거든요. 우리가 같은 의미로 쓰는 산보에는 散 흩을 산, 步 걸을 보자가 쓰여서 ‘걷는다’는 의미가 있지만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산책과 산보를 같은 뜻으로 받아들일까요?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산책의 ‘책’은 꾀 책이고, 꾀는 머리를 써서 내는 ‘생각’이죠. 이것들을 ‘산’, 즉 ‘놓아버린다, 흩뿌린다’는 뜻이 합쳐지면, ‘생각을 흩어버리다 / 놓아버리다’라는 말이 되어요. 이게 왜 걷는다는 것과 연관되나 여러 의견이 분분한 듯하고, 아직 ‘지금 산책의 의미는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고 결론 내려진 게 없다고 해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왜 이렇게 됐는지 알 것 같은 느낌도 들기도 해요. 걷는 행위를 해서 얻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설렁 설렁 걷는 행위’라는 굉장히 특별하고 대단한 것이 아닌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소한 개인적인 시간이긴 하지만, 그 시간을 가져서 복잡했던 생각이 풀릴 때가 있잖아요. 다수가 이를 알고 있었고, 그 인식이 결국 산책이라는 단어에도 반영된 것 아닐까요? 저는 이렇게 추측하고 있어요.
죽어도 풀리지 않을 만큼, 단단히 꼬여있던 이어폰 줄이 풀리기 시작하는 데에는 바늘구멍만큼의 틈이 있는 것처럼, 삶의 긴장을 풀기 위한 시작인 그 ‘틈’을 산책이 터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걸으면 생각이 비워진다’는 인식이 산책의 의미와 연관된 것 아닐까 하는데요, 어떠신가요!? 산책을 자주 즐겨 하시는 분들은 제 말에 동의해 주실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약간해봐요.
산책이라는 단어에는, 비장하지 않은 그런 이미지가 있어요. 극단적이고 강렬한 것들에는 없는 이미지이죠. 그런데 살다 보니 비장하지 않은 마음으로 사는 것도, 그 마음을 유지하는 것도 생각보다 많은 기술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의연해지고 싶은데,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그런 마음조차 받아들일 수 없을 때가 있긴 하죠.
한산에도 그런 날이 있을까요? 여러분은 한산을 생각하면 어떤 단어들이 떠오르시나요? 너무나 한적한, 주변 환경부터 사람까지 모든 것들이 여유롭고 느리게만 흘러가는 그런 모습을 떠올리실 거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한산에서도 정말로 치열한 순간들이 분명 있어요. 지역과 문화를 어떻게 하면 세상에 더 나은 모습으로 보여줄지, 우리가 어떻게 연대되어야 할지를 골똘히 생각하며 정성으로 살고 있고, 바쁘다고 느끼는 날들도 있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늘 24시간 그 생각으로 채워 살 수 없듯, 분명 각자에게 휴식이 필요하고 저 또한 휴식을 찾으러 나서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사는 것처럼 삶기술학교 친구들은 각자 잘 해나가고 있어요. 각자 개인적인 취미활동도 하고, 게임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책을 보는 친구들도 있고요. 어느 지역을 가던 빼놓지 않고 산책을 하는 <프로 산책러>들도 있답니다.
독자님은 어떠세요? 님도 바쁘고 알찬 인생을 보내시겠지만, 휴식을 찾아 나서시는지요? 저는 이곳에 와서 비장하지 않게, 즐겁고 가볍고 덤덤하게 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걷고 걸으며 배워가는 중이에요. 가끔 산책을 하다가, 밥 짓는 냄새도 맡고, 옆집 강아지랑도 인사를 하고, 길가에 핀 코스모스도 보면서 위안을 얻듯, 인생에서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끽했으면 좋겠어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님도 이 마음 아시려나요.
독자님, 매일 산책하듯 가볍게만 살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장소가 필요하시면, 한산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놀러 오세요! 막간 홍보를 좀 해보았지만, 독자님에게 산책같이 가뿐하고 소소한 순간들이 있길 바라는 마음이 전달됐길 바랍니다. 이걸로, 오늘 편지를 마무리하려 해요. 맑고 푸른 하늘, 더 짙어진 단풍 아래 한가을을 살고 계신 독자님의 앞으로의 날들이 안온하길 바라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뵐게요!
-삶기술학교 YON
소개하고 싶은 것들
우린 산책할 때 이거 들어요 : 산책할 때 듣기 좋은 플레이리스트
11월 슬텍이네 바이닐샵이 열렸습니다. 오늘 주제는 ‘산책할 때 듣기 좋은 노래’이고요! 멤버들이 곡마다 달아준 코멘트도 소개해 볼게요.
진보아 ’Peach pit – Tommy’s party
지금 같은 계절에 산책하면서 들으면 감성 충만, 가끔 눈물 한 방울 찔끔 날 때가 있다.
토플라 Enemies – Lauv
꿀 목소리와 꿀 발음 꿀 멜로디.. 산책할 때 들으면 천국을 걷는 기분이에요
헤니 산책의 이유 – 태연
한산에서 살면서, 퇴근 후 저녁에 산책을 해요. (제 한산에서의 삶에) 저녁이 주어졌다 여기는 이유는 산책 때문이에요!
번외 편 : 가사로 산책하는 기승전결 플레이리스트 (feat.삶기술학교)
1. 내가 제일 잘나가 - 2NE1
2. pretty girl – 카라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3. 분홍신 – 아이유 “길을 잃었다”
4, 이별택시 – 김연우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5. 앞으로 앞으로
대충 집 밖에 잘 나가서 - 당당하게 걷다가 - 길을 잃어서 - 아저씨한테 물어보고 - 앞쪽으로 걷는 내용 ....
산책 루트 추천해 주는 여행 가이드북 - monocle
영국의 유명한 잡지사죠, monocle(이하 모노클)입니다. 모노클에서는 현재 총 26개 도시의 시티가이드를 냈는데요. 영어로 되어있긴 하지만, 저는 제가 만난 여행서적 중에는 가장 알차고 어느 매체도 견줄 수 없는 수준의 콘텐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숙박부터 즐길 거리 ( 건축물, 공원, 축제, 식당, 디자인, 스포츠센터, 마사지) 등등이 빼곡하게 실려있고 인터뷰집도 실려있고요. 잡지와 가이드북 둘 다의 특성을 맛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해요.
모노클 시티가이드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러닝 루트와 모노클이 선정한 테마별로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지도가 실려있어요. 개인적으로 책을 구매하는 이유 중에, 이 지도를 위해 구매하는 것도 상당 부분이긴 해요 (ㅋㅋ)
지나치게 유행에 편중되어 있지도 않고, 또 모노클이 그동안 잡지사로서 쌓아온 안목이 집약된 곳이라 일단 소개하는 장소들은 믿고 갈만한 곳이기도 해요. 코로나.. 곧 위드 코로나라고 간다고는 하지만 해외여행이 언제 풀릴지 모르니 커지는 여행의 꿈 책으로 잠재우시는 분들께도 추천드려요!
산책할 땐, 역시.. - 백예린 '산책'
지난 10월 즈음에요, 백예린의 앨범이 발매되었죠.
처음부터 끝까지 원래 있던 곡을 편곡해서 부른 곡들로 만든 앨범이에요.
제가 몰랐던 보석 같은 곡들을 알게 된 것도 좋고, 이 곡들을 백예린의 목소리로 들은 것도 좋더라고요.
그중에 산책이라는 곡이 있었고 오늘 뉴스레터 주제로 '산책을' 고르면서 바로 '이번 뉴스레터의 BGM으로 올려야지'라고 결정했어요. 곡 전반부에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가 꼭 새벽에 산책하는 것 같은 맑은 느낌이 늘 기분을 간지럽히는 듯해요.
오늘 산책하실 예정이신가요? 그렇다면 한 번 들어보세요. 맑은 가을 공기와 잘 어울려서 추천드리고 싶어요.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하며 인사드릴까 해요. 이번 주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번 레터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다음 주에 또 소식을 들고 찾아갈게요. 다음 주에 뵈어요!
-사랑을 담아 삶기술학교 yon
편지를 보낸 삶기술학교@한산캠퍼스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