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보리밥을 먹던 시절

가족소설 ᆢ팔색 무지개 : 제7장)

ㅡ결국에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당시 디자인의 성지 에스모드 재팬에 유학까지 가게 된다. ㅡㅡㅡ


나경은 오늘도 집안일과 동생들 돌보느라 여간 바쁘지가 않을 것이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귀가를 서두른다. 학교를 벗어나니  하교 길 양켠에는 벌써 누렇게 물들어가는 보리밭이 펼쳐져 있다.    보리밭 사이로  아스라이 나있는 지름길 쪽을 택해  잰 거름으로 집에 왔다. 나경의 빠른 하교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녀의 모친은 이제 밭일 나가기를 서두른다.  매번 그랬듯이 갓난사내아이 동생을 나경의 등에 포대기로 업혀준다.


시장기를 느낀 그녀는 아기를  업은 채 먼저 부엌에 들어간다.    찬장옆 살강에 얹어놓은 보리밥 대바구니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장독대로 올라가 검붉은 빛깔의 묵은 고추장 한 숟가락을 듬북 뜬다. 이제야  보리밥을 맛있게 쓱쓱 비벼 먹는다.  


얼마 후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밖에 놀러 나갔던 동생 나옥이 들어온다. 나경은 동생을 달래어  아기와 방에서 놀아주게 하고 밖으로 나온다.

잠시 후  대문간옆 광에 들어가 싸라기를 됫박으로 조금  퍼낸다. 그리고  마당 가장자리와 그 옆 대나무밭을 온통 헤집고 다니던 닭들,  그동안 노란 병아리에서 중닭으로 훌쩍 자란 닭들을 능숙하게 불러 모은다.  적갈색 수탉, 암탉들은 구구 구구 비둘기 소리 같은  나경의 익숙한 반복소리에  손쉽게 이끌린다.  닭들은 예닐곱 마리가 넘는데 모이는 하루에 싸리기  몇 줌 뿌려주는 것이  전부다.


나경은 아직도 주요 일과가 여전히 남아있다. 가장 심통이 나는  일이기도 하다. 공동 우물가로 물을 긷기 위해 몇 번을 오르내려야만 하는 이다. 부엌문 옆에  비스듬히 걸려있는  물지게를 들춰진다.  물을 반 양동이 씩이라도 여러 번 떠나려 부엌의  깊고 널따란 물 독을 가득 채워야 한다.   그 후에는 아마도 아기빨랫감을 찾아  우물가 빨래터에서 빨래라도 해야만 맘이 편할 것 같았다.


이렇게 오십여 년 전 우리의 어머니, 어릴 적 누이들은 불편하고 팍팍한 시골생활에 파묻혀 숙명같이 살아왔다.

그래도 그 시절 가장 사무치게 힘들었던 보릿고개 시기에 나경이네는 꽁보리에 쌀 몇 톨 남짓 섞인 밥이지만 삼시세끼 끼니는 거르지 않았다.


저 아래 동네발치에 있는 선자네가 서울로 이사를  간 단다. 잊을만하면  이 동네, 저 동네에서 한두 집씩 서울로 도회지로  이사를 간다는 소문이 들린다.   좀 더 나은 일터를 찾아 또는 자녀교육을  위해  마지못해  정든 땅을  등지고 이사를 가던 때다.


선자네도 시골 살림살이에

전답 한 뼘이 없는 집이다.  근근이 대갓집 전답을 빌려 농사짓는  사실상 소작에 의존하는 샘이다.  아마도 그 집 부모들은 소작농사일과 남의 집   품팔이등  매일의 암울한  일상이 더욱 힘겹게 느껴졌으리라.


그 후에  상훌네 누이들은  이른 객지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차라리 그것이 그녀들의 정체된 시골살이의 현실을 탈출하는 돌파구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경과 나옥은  한동안 의류직공으로  일하며  힘겹게 주경야독으로 학업에까지 정진한다. 그녀들은 착실한 심성과 종갓집 근본의 뒷심이 있어서인지 여전히 빗나감이 없었다. 항상 부모를 염두하고 시골의 어린 동생들을  생각했다.


그 후 좀 더 매사에 근성이 강했던 나옥은 복장디자인에 조예가 깊었다.  점점  끈기 있게 그 분야에  열심을 보태어 전문성을 더해 간다. 결국에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디자인의 성지 에스모드 재팬에 유학까지 하게 된다. 그 후 그녀는 귀국하여 좀 더 유능하고 세련된 직업인이 된다. 물론 업계에서 큰 활약을 하면서도 가족들 특히 동생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준다.

제8장

작가의 이전글 시골집 이사 가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