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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쿠폰의 가치는 사실 변하지 않았다

행복은 비교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자기만족에서 오는 것

by 여지행

최근 나는 대학시절 교수님 초청을 받아 취업 준비생 멘토 수업을 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의미 있는 일이었고, 짧은 시간이었기에 어떤 대가도 생각지 않았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했고, 그 자체로 충분했다. 일이 끝난 후, 초청하신 교수님이 수고했다고 커피 폰을 보내주셨다.

아무런 보상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이미 구매해 보내주신 것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다음 날 함께 초청받은 동문이 "너도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냐?"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굳이 몰라도 되고,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다.


하지만 이미 들어버렸고, 구체적인 액수까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와 달랐다. 물론, 나와 그 친구의 상황이 다를 수 있다. 그 친구가 나보다 오랜 시간 강의를 했거나, 멀리서 왔을 수도 있다.

또 교수님과의 친분이 더 깊었을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이미 커피 쿠폰 하나로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그걸로 족했다. 그런데도 사람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다. 애초에 0을 기대했던 나는 20을 받았을 때 충분히 만족했는데, 누군가 50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마치 내가 -30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와서 이미 알게 된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들은 말을 다시 되돌릴 순 없었다.


사람의 마음은 욕심꾸러기처럼 간사하다.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 떠오른다. 학원에서 시험을 잘 본 학생에게 선생님이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 주셨다. 도장 10개를 모으면 떡볶이를 사주셨다. 초반에는 내가 늘 앞 순위였지만 몇 주 후 새로 두 명의 학생이 등록했고, 나는 그들에게 밀려 도장을 1개씩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도장을 받을 기회가 있었고, 1개씩이라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처럼 3개씩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마땅했다. 결국, 나보다 더 많이 받는 이들이 있다는 이유로 이 게임 자체를 하지 말자고 투정을 부렸다.


심리학자 월터 론스(Walter Runciman)는 이러한 심리를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이라고 했다. 절대적으로 보면 나는 손해 본 것이 없고, 오히려 얻은 것이 있음에도, 다른 사람이 더 많이 얻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상대적으로 손해 본 것처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알게 되어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이미 지난 몰랐어도 될 일을 알게 돼서 괴로울 때,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를 떠올린다. 원효대사는 유학길에 오르던 중 잠을 자기 위해 동굴에 들어갔다. 너무 목이 마르던 중 옆에 있는 바가지에 있는 물을 발견하고는 너무 기뻤다. 그 물을 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잠들었지만, 아침에 깨어보니 그것이 해골 속에 고여 있던 썩은 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구역질이 났다. 결국,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내가 처음 받았을 때 만족했던 커피 쿠폰은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이 받은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가치가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건 실체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절대적 가치가 아닌 상대적 가치로 흔들렸을 뿐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을 갖기보다, 내가 받은 것의 본래 가치를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국, 행복은 비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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