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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그릇 Sep 17. 2021

엄마의 꽃밭

 운전대를 잡고 있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계속해서, 타닥타닥.

나는 마음이 초조하다.

엄마 집으로 가는 길, 빨간불 신호대기 중.


아 진짜,

꼭 내가 가야 돼?

나 진짜 바쁘단 말이야!


엄마가 세 번째 전화를 했을 때는

목소리가 좀 과하게 다정했다.

그건 옆에 누가 있다는 뜻,

외숙모 아니면 이모겠지.


‘딸, 집에 갈 거지이?

수도 옆에 있는 꽃밭이랑 화분들은 호스로 뿌리면 되구우~

뒤뜰에 있는 블루베리 나무랑

방울토마토 화분에는

한 양동이씩 듬뿍듬뿍 줘야 해잉. 알지?

호호호홍

엄마? 엄마는 잘 있지~~~’


내가 묻지도 않은 대답을 혼자 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그래, 나는 친정 나들이 간 엄마를 대신해

화분에 물 주러 엄마 집으로 간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는 화분들이 넘쳐났다.

화분뿐만 아니라 노지에도 계절별로 형형색색의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났다.

결혼을 하고 나서 베란다에 놓아둔 화분들이

고향이 그리운 듯 시들해지면 엄마 집 앞마당에

슬그머니 가져다 놓았었다.

그러면 화초들은 거짓말처럼 건강해져 있었다.

정말 신기하고 대단한 엄마의 달란트 인건 인정.

하지만 이건 아니지,

나도 할 일이 쌓였단 말이야!


엄마 집에 도착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앞마당에 화분이 가득하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까…

하나하나 차례대로 물을 주기 시작한다.

텅 비어있는 엄마 집에 혼자 들어와 꽃물을 주고

있자니 분주했던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이제 뒤뜰로 가볼까.


양동이 가득 물을 담아 펭귄처럼 뒤뚱뒤뚱 걸어

뒤뜰에 가보니 내 키만 한

블루베리며 방울토마토 나무들이

우쭐우쭐 자라 있었고,

화분 옆에도 들쑥날쑥 여러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어떤 화분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꽃들이

함께 심겨 있기도 했다.

제 멋대로 자라난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우리 어무니, 참 대단하시네.

잠깐 서서 꽃구경을 하고 있는데

지잉-- 지잉--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꺼내보니 이 꽃들의 엄마, 우리 엄마다.


딸, 잘 줬니?

아이고 꽃이 이쁘다궁?

애는 뭐 그런 소릴 호호호홍


혼자 저만치 달려 나가는 엄마표 대화의 기술.


엄마, 근데 못 보던 꽃들이 많이 생겼네.

뒤뜰에 말이야, 다 어디서 났대?


아 그거?

나도 잘 모르겠다.

돌아서면 새 꽃이 막 자란다.

아마 어디서 소문 듣고 찾아오는가 벼~~

호호호홍


엄마의 웃음소리는 아득히 멀어지고

엄마의 마지막 말만 내 옆에 멈춰 선다.


나는 잠깐 상상을 한다.

햇살마저 고요하다.


씨앗들이 영글 무렵

그 작고 까만 생명체들도

앞으로 살길들을 고민한다.

엄마품을 떠나 좋은 땅에 안착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다.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던 착한 바람 아저씨가

어떤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려준다.


얘들아,

조 아래 붉은 지붕 집에 혼자 사시는 아주머니가

계시는데, 일단 그 집 담장만 넘어서 들어가면

너흰 안전할 거야.

그 집은 앞마당에도 뒤뜰에도 꽃이 가득해,

모두 건강하단다.

아주머니가 며칠 집을 비우실 때는

대신 와서 물을 주는 딸도 있어.

운전은 괴팍하게 해도 꼼꼼히 물을 잘 주더라.



햇살은 여전히 고요하다.

바람이 나를 조심스레 흔든다.

나는 웃으며 다시 일어선다.


얘들아, 언니 왔다.

물먹자.

걱정 말고 천천히들 마셔.


어느 여름,

엄마의 꽃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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