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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Feb 29. 2024

초빼이의 노포 일기 [인천 남동구 만수동 강원정육식당]

돼지고기를 굽는 81억 1천만 가지의 방법

'푸줏간'의 원래 뜻은 '고기를 파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 '잡은 고기를 요리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포주(庖廚)'라는 단어에 마구간이나 방앗간 등에서 볼 수 있는 장소를 나타내는 '간'이라는 접미사가 붙어 만들어진 단어.* 오히려 고기를 잡는 곳은 ‘찬포(饌庖) 또는 현방(懸房)’이라고 불렸는데 '찬포'는 쇠고기를 파는 가게라는 뜻이었으며, '현방'은 조선 후기에 왕실, 귀족, 관아, 군문에 고기를 공급하던 가게를 뜻했다.**


어느 순간 이 푸줏간이라는 단어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정육점이나 식육점들이다. 아마도 도축업에 대한 좋지 않은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푸줏간이라는 말의 사용이 줄어든 듯하다. 초빼이도 초등학교 시절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정육점에서 '고기를 끊어왔던' 기억이 있으니 70년대 이전부터 정육점이라는 단어가 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당시 정육점은 고기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고기를 팔았다. 게다가 포장도 좋지 않아 신문지나 (한 면은 부드럽고 반대편은 거친)갱지(그 품질과 색깔 때문에 '똥종이'라 불렀던)에 고기를 돌돌 말아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정육점이나 식육점에 음식을 내는 기능이 생기면서 정육식당과 식육식당이 탄생하였다. 안타깝게도 정육식당의 '원조'를 찾는 것은 그 기록이 명확하지 않아 어렵다. 

정육식당은 양질의 육류를 좋은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받고자 하는 식당 경영주의 이해와 지속적으로 납품이 가능한 수급처를 확보하고자 하는 정육점주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며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 덤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일석삼조의 효과. 나쁘지 않은 이종 업종 간의 결합이다. 역사적으로는 '푸줏간'의 원형에 더 근접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으니 나름 또 역사저인 의미도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겨울의 끝자락을 잡고 보내지 않으려는 듯 세찬 겨울비가 극성이던 날이었다. 4시쯤 걸려온 '비 오는데 술이나 한 잔 할까?'라는 형님의 전화에 바리바리 배낭을 챙겼다. 

아침부터 내린 비에 하루종일 한숨만 쉬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던지라 속이 '허'했다. 비가 오는 날은 모든 게 '허'하다. 마음도 '허'해지고 속도 '허'해진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이 '허'함이 사람을 더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만든다. 온 세상이 잔뜩 습기를 머금고 제 몸을 부풀리지만, 되려 그렇기에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이 '허'함을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초빼이들에겐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보다 힘든 것이 '오늘은 어느 집에서 술 한잔을 마실까?' 하는 고민일 게다. 이 '허'한 날,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다음날까지 영향을 미치기에 뜬금없이 신중해졌다. 인천 백운역의 중국 '요릿집' 하나와 인천 지하철 1호선 간석 오거리역 인근의 고깃집 노포 하나, 그리고 만수동의 정육식당 하나를 리스트에 올리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나와 백운역의 '산동포자'는 저녁 6시에 영업을 시작하니 가장 먼저 제외. 간석 오거리의 생갈비집은 검색해 보니 3월 1일까지 내부공사를 진행해서 자연스레 탈락. 결국 가장 마지막에 리스트에 올렸던 정육식당으로 최종 낙점하게 되었다. 세찬 비를 뚫고 만수동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동네의 이름이 참 구수하다. '만수'라니. 

서울시향 시절 같은 층을 쓰던 서울시 뮤지컬단 단장님이 '만수야~'라는 유행어를 만드셨던 연기자 최주봉 선생님이셨는데, 만수동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항상 그분이 떠오르기도 한다. 인천에 장수하던 분들이 많이 살아 '장수동, 연수동, 만수동'과 같은 '목숨 수(壽)'자가 붙은 지역명이 많다는 유래는 그리 귀에 감기지 않는다. 만수동은 최주봉 선생이시다.


원래 이 집은 미리 예약을 하고 찾아야 고생을 하지 않는다. 

워낙 좋은 고기를 좋은 가격에 내주셔서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끊이지 않기 때문. 예약도 없이 무턱대고 찾았다가는 꽤 긴 기다림을 할 수도 있다. 다행히 초빼이가 찾은 날은 하루종일 비가 쏟아지는 날이기도 했고, 오후 5시경에 방문하여 예약 없이도 빈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다. 잔뜩 구겨진 기분이 살짝 펴지는 느낌.


만수동 성당 건너편 뒷골목에 자리 잡은 이날의 목적지는 '강원정육식당'. 

이곳은 고깃집과 정육점을 같이 운영하는 곳이라 일단 가격이 굉장히 저렴하다. 가격만 저렴하게 받고 질이 떨어지는 등급의 고기를 내는 다른 집들과는 달리 고기도 굉장히 좋은 편이다. 요즘 유명하다는 비싼 고깃집의 그것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 게다가 손님들이 고기를 주문할 때마다 바로바로 고기를 썰어 주시기 때문에 굉장히 선도도 좋다.  

이 집에서 대부분의 손님들이 찾는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돼지모둠'이다. 물론 가성비 좋은 '(소) 등심이나 차돌'을 찾는 손님들도 꽤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돼지고기는 '진리'이지 않던가? '돼지모둠' 메뉴는 보통 세 부위의 고기를 섞어서 제공한다. 생고기로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의 핵심 부위만 선별한 것. 보통 오겹살과 항정살 그리고 특수부위로 제공되는데 초빼이가 찾았던 날엔 '오겹살, 항정살, 껍질이 붙은 항정살'을 내주셨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취향이나 기호가 변하듯 선호하는 돼지고기 부위도 달라지는데, 최근엔 항정살과 가브리살, 그리고 갈매기살이 고급 부위로 취급받는다고 한다. 그중 항정살은 돼지 한 마리에서 2~300g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부분. 지방이 살결을 따라 잘 스며들어 있어 그 단단하고 쫄깃한 식감이 좋다. 연분홍 빛 항정살의 표면에 가늘고 길게 자리를 잡고 있는 지방을 보면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일 수밖에 없다. 껍질이 붙은 항정살은 추측건대 머리 쪽에 붙은 항정살(두항정)을 껍데기를 붙인 상태로 썰어 내는 것 같다. 


돼지고기는 사실 지방을 적정하게 함유하고 있는 부분이 맛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돼지고기가 삼겹살이나 오겹살인 것도 사실 이런 이유 때문. 항정살은 '천겹살'이라는 명칭이 따로 있을 정도로 얇은 지방이 살결 사이에 촘촘히 퍼져 있어 그 독특한 식감과 풍부한 육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초빼이가 항정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 식감 때문이다. 


사장님께서 바로 썰어주신 고기가 나왔다. 접시에 담긴 고기색이 참 곱다. 연분홍빛 색상에 마음을 솜처럼 부드러워진다. 생고기가 저런 색상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고 워터 에이징이니 드라이 에이징 같은 '뭔가 근사한 것 같은' 숙성 방식을 사용한 것은 아니고, 저온 냉장고에서 최소 하루 이상 숙성시키면 된다. 


매장 밖의 비는 어느새 그쳤지만, 잘 달궈진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니 이젠 테이블 위에서 빗소리가 들린다. 땅바닥에 부딪치며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빗방울처럼 오겹살과 항정살에서 나온 육즙이 불판 위로 미세하게 튀어 오른다. 잘 숙성된 고기가 불판 위에서 피워 올리는 진한 향을 맡을 때마다 생각나는 술이 하나 있다. 경상북도 칠곡에서 만드는 칠곡 막걸리 생각이 났다. 140년을 넘게 이어 온 칠곡 양조장에서 만들어 내는 '바나나 향'이 나는 그 막걸리 한 잔이 그리워졌다. 잘 숙성된 항정살에 잘 숙성된 바나나 향 막걸리가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 까탈스러운 취향이란. 마시고 있는 소주를 앞에 놔두고서 갑자기 막걸리 타령이라니.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다는 게 바로 오늘의 초빼이를 두고 하는 말일테다. 


고기를 구울 땐 절대 주저하면 안 된다. 자신의 감을 믿고 자신의 방식대로 고기를 구워야 한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고기를 굽는 것도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전 세계의 인구가 81억 1천만 명 정도이니 고기를 굽는 방법도 81억 개 이상의 방법이 있는 것이다. 자기의 방식으로 고기를 구워내는 그날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마음에 들게 잘 구운, 고기를 만나는 날이다. 그래서 초빼이는 남들이 구워주는 고기엔 가급적 이런저런 토를 달지 않으려 노력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기를 굽는데 무슨 참견을 할 것인가? 


이런 면에서 보면 고기를 굽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것과 그 궤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기를 구워주면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사람만의 방식을 이해해 주면 된다.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통해 한 사람에 대해 알아나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 남들의 고기 굽는 방식에 참견할 필요가 없다. 맛없게 구우면 맛없는 대로, 맛있게 구우면 맛있는 대로, 독특하게 구우면 독특한 대로 그렇게 한걸음 뒤로 물러서 보고 받아들이면 된다. 


향 좋은 깻잎에 파절이를 깔고 항정살 한 점 올린다. 옛날식 파절임이 꽤 괜찮다. 듬성듬성 잘라둔 매운 고추를 쌈장에 찍어 고기 위에 올려 쌈을 쌌다. 한 입 가득 채운 쌈에 '허'한 마음이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주 한 잔. 마음속 빈 공간이 채워지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진다. 칠곡 막걸리가 있었다면 '허'함을 채우는 시간이 좀 더 빨라졌겠지만, 뭐 어떤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 상황에 몸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디 이제껏 세상 모든 일이 내 마음과 같이 흐른 적이 있었던가?  


어금니 사이로 설겅설겅 씹히는 항정살의 식감이 제대로 살아난다. 껍질 붙은 항정살은 그 식감에 쫀득한 돼지껍질의 질감까지 더해 더욱 입체적인 맛과 식감을 볼 수 있다. 불판 위로 움직이는 젓가락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마음과 속은 점점 더 단단해진다. 한 번은 오겹살, 한 번은 항정살. 그러면 된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오겹살을 입에 넣으며 굳이 설명하기도 힘든 '마이아르 반응'까지 끄집어낼 필요는 없다. 오롯이 눈앞의 고기에 집중하여 더욱 맛있게 쌈을 싸고, 더 열심히 저작질하고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으면 된다. 오늘 내게 주어진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다. 


어느새 추가 주문한 항정살 1인분 마저 바닥을 비웠다. 작업대에 있던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로 22년째 운영하고 있다는 말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건네는 인사가 자연스레 한 문장으로 이어진다. 다시 이야기는 채소 가격으로 갔다가 요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돼지고기 값까지 흘러간다. "지난 여름 상추 한 박스 가격이 이십만 원을 넘었을 때도 상추 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다며 자랑스러워하시던 말씀에 엄지 손가락 하나 척 올려 드렸다. 


요즘은 이런 가게들이 좋다. 좋은 음식에 한잔 들이켜면서 바쁘게 손을 놀리는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있는 가게들을 찾는 것에 쏠쏠한 재미를 느낀다. 언제든지 편히 찾을 수 있는 조그만 동네의 선술집들이 그리워져 가는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 네이버, 어학사전, "포주(庖廚)", https://dict.naver.com/dict.search?query=%ED%8F%AC%EC%A3%BC%28%E5%BA%96%E5%BB%9A%29&from=tsearch , 2024.02.2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푸줏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wordsLink , 2024.02.21



[메뉴추천]

1. 2명 방문 시 : 돼지모둠 + 소주(또는 칠곡 막걸리)

2. 3명 이상 방문 시 : 돼지모둠 + 추가 오겹살 또는 항정살 + 소주(또는 칠곡 막걸리)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장은 없다. 매장 앞에 2대 정도 주차가 가능하고, 만수 제1성당 앞쪽 도로변에 노상공영주차장이 있다.   

2. 월~토 10:00~22:00 / 매주 일요일 정기휴무

3. 참고 

    - 돼지모둠은 필수. 마눌님이나 엄마, 아빠 카드 또는 법카를 사용할 수 있을 땐 등심과 차돌도 추천한다. 

    - 주중, 주말 가급적 예약을 하고 찾는 것이 편하다. 무작정 찾아갔다가 오랜 시간 웨이팅 할 수도 있다. 

      낮시간은 예약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편이나 저녁 시간에 찾는다면 예약 필수. 

4. 여행 및 관광정보 

    - 인근노포 : 돼지랑찌개랑, 청실홍실만수점, 초심, 태화각, 원조기계우동, 충청도집, 인하찹쌀순대

      본점, 황해순모밀냉면, 부암갈비, 삼화정, 유키돈까스  등 

    - 인근 인천대공원은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는 곳으로 벚꽃명소로 유명하다. 가족 나들이에 좋다. 

    - 소래포구 인근의 소래역사관도 들러볼 만하다. 옛 수인선 관련 역사관으로 소래포구와 소래염전 관련 

      콘텐츠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 수산물이나 해산물 구입을 원한다면 인천연안부두 종합어시장을 추천한다. 다양한 수산물과 건어물을 

      취급하는 곳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 멋진 도심 공원을 보고 싶다면 송도센트럴파크를 추천한다. 봄부터 여름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이곳은 또한 야경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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