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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Mar 21. 2024

초빼이의 노포일기 [서울 용산구 용문동 용문갈비집]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이미 이 집이 그리워졌다'.

돼지갈비라는 음식은 소갈비의 대용으로 나온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일본 강점기 시절에는 인구대비 소의 사육 개체수가 많아, 소고기 값은 당시 물가 대비 그리 비싸지 않았지만 일제에 의한 수탈이 심화되면서 소의 가격은 점진적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이제는 소고기의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버린 시대가 되어 소고기는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자주 찾기 어려운 음식이 되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소고기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돼지와 닭을 이용한 음식들이었다. 


한때 부의 상징이 되었던 소갈비를 대신하여 돼지갈비나 닭갈비가 조금 더 서민들의 삶에 깊이 파고들었고 최근엔 '대용'이 아닌 '대세'중의 하나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소갈비의 대신이라 돼지갈비나 닭갈비는 굳이 갈비 부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두툼한 목살이나 삼겹이 쓰이기도 했고, 비교적 저렴한 후지(뒷다리살)나 전지(앞다리살)를 슬며시 넣어 돼지갈비라는 이름으로 손님에게 내기도 했다. 다만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달콤 짭짜름'한 양념이 필수조건이었다. 간장 베이스의 양념에 버무린 고기라면 그 부위가 무엇이던 '돼지갈비'로 인정되었던 것. 


그런 와중에도 돼지의 갈비 부위만 파는 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는데 그런 집들은 항상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얼마 전 들렸던 인천 간석동의 부암갈비 같은 곳은 2대를 이어 운영하며 사장님이 직접 갈비를 정형하고 포를 떠 판매하는 집이고, 몇 주 전 찾았던 용산의 갈빗집도 돼지갈비만을 직접 손질하여 판매하는 노포 갈빗집이었다. 


이번에 초빼이의 노포일기가 찾은 집은 용산역과 효창공원 역 사이, 중립지대 같이 두 지역을 잇고 있는 용문동 용문시장 건너편에 자리 잡은 용문갈비집이다. 용문갈비는 초빼이와 비슷한 연배의 고깃집이다. 1973년도에 개업하여 무려 52년 동안 한 자리에서 돼지갈비와 소갈비를 내 온 집. 


이 집은 갈비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이 찾았고, 또 앞으로 찾게 될, 돼지갈비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성지와 같이 추앙받고 있는 집이다. 사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전혀 모르던 분들과 처음 만나 술 한잔 나누기로 한 약속 때문이었다. 초빼이도 이 집은 첫 방문이었지만 많은 분들이 추천해 주셨던 곳이라 꽤 기대감이 컸었다. 



1호선 용산역에서 내려 뒤편으로 나와 길게 이어진 고가 육교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용산전자상가의 낡은 건물들이 유럽의 오래된 성(城)처럼 눈앞을 지나갔고, 그 건물들을 지나 한 번도 걸어보지 않았던 길로 접어들었다. 용산역과 효창공원역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동네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한 터라 용문시장과 그 건너편의 동네길을 부러 걸었다. 높은 빌딩과 근사한 아파트들만 서 있을 것 같던 용산에서, 한 집 건너 한 두 채 씩 보이는 일본식 건물과 오래된 시장의 풍경을 보니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용문 갈비는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조금 늦게 도착할 분들도 계실 것 같아 미리 가게에 들어가 5명 자리를 예약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4시경인데도 이미 세 테이블에서 갈비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장 건너편 낡은 3층 건물의 1~2층을 모두 사용하는 이 집은 건물 정면과 옆면에 걸린 간판이 서로 다르다. 옆면의 흰색 간판이 조금 더 오래된 느낌이 드는데 앞면의 녹색 간판과 그 크기도 달라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간판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이다. 게다가 2층의 타일벽은 6~70년대 건물들의 특징을 잘 드러내며 건물의 나이까지 추측할 수 있게 해 준다.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듬성듬성 떨어진 갈색 타일의 빈자리마저 낯설지 않게 느껴지며 그 자체로 풍경이 되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한 명씩 두 명씩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 뵙는 얼굴에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한다. 예약한 사람 수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만든 원의 중심에선 진한 양념을 겉에 두른 갈비가 연기를 피워 올리며 강렬한 숯불 위에서 구워지고 있었다. 소주잔이 숯불과 환기구(닥트) 사이로 이리저리 넘나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갈비 조각처럼 왔다 갔다 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로 돼지갈빗집이라니. 지금 초빼이와 함께 살아주고 계신 마눌님과의 첫 데이트 장소로 필동면옥을 택했던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용문갈비의 양념은 외형상 굉장히 진한 색이다. 간장을 때려 부은 후 돼지갈비를 일 년은 담궈두고 색을 입힌 듯, 진한 밤색을 띄지만 갈비를 구워 입에 넣으면 예상보다 슴슴한 양념맛에 놀라게 된다. 사실 돼지갈비는 양념맛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양념이 음식의 맛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음식이다. 용문갈비의 갈비 양념은 일부 갈빗집처럼 캐러멜 따위로 단맛과 색을 낸 그런 조악한 양념이 아니다. 그러니 갈비를 실컷 먹고 나서도 부대끼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사장님이 황해도 출신이라는 말을 얼핏 들었던 적이 있다. 어쩌면 이북에서 황해도 음식은 남한의 음식사에서 전라도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했다. 이 집의 갈비도 갈비지만 까나리 액젓을 부어 먹는 백령도 냉면의 기원도 황해도 출신 피난민들이었고, 우리나라의 3대 비빔밥 중의 하나인 해주 비빔밥이나 사리원 냉면도 황해도의 음식이다. 그야말로 삼팔선 이북 지역에선 황해도 음식이 주류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황해도는 전라도와 유사하게 넓은 곡창지대와 바다를 끼고 있다. 북한의 유명한 곡창지대인 연백평야와 재령평야에서는 다양한 쌀과 곡물이 생산되고 서해안에서는 풍부한 해산물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이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해 음식을 만들어 내니,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예부터 유명한 '개성'과 '평양'의 음식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도 이런 영향이 아닐지?


용문갈비에서는 독특하게 돼지갈비를 찍어먹는 장으로 초장(양념장)을 내준다. 하지만 초장에 바로 고기를 찍어먹는 것이 아니라 상차림에 함께 나온 '파절이'를 초장(양념장)에 묻혀 고기와 함께 먹는다.(그렇게 먹으라며 이모님이 알려 주신다) 초장의 시큼함과 매콤함이 갈비 양념의 단맛을 끌어올리는 증폭제 역할을 한다. 심지어 쓰디쓴 소주마저 갈비의 자연스러운 단맛을 끌어올리는데 일조한다. 심하게 달지 않은 적당하다 싶을 정도의 단맛이 슴슴하다 싶을 정도의 간장 맛보다 조금 앞서 나온다. 기가 막힌 비율로 만든 갈비 양념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굉장히 단단한 음식이다.  


갈비에서 잠깐 눈을 돌려 고구마 한 조각을 양념장에 찍어 베어문다. 서걱서걱 거리는 고구마 특유의 식감이 갈비를 씹으며 익숙해진 부드러운 식감을 한 번에 초기화시킨다. 쌈야채와 별도로 고구마나 당근을 내는 상차림은 오래전 8~90년대의 고깃집에서 유행했던 상차림이다. 2024년도에 8~90년대의 고깃집 상차림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마저 초빼이와 같은 노포 기행가에겐 큰 행운이다. 

그중에서 가장 압권은 1인당 한 그릇씩 내주시는 동치미다. 익은 동치미 국물이 돼지갈비 양념 못지않은 기막힌 '물건'이다. 정신없이 갈비와 소주를 들이켜다 술기운이 갑자기 오른다 싶으면 동치미 국물 한 모금만 들이키면 된다. 모든 것이 진정되며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온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선호한다는 숙취 해소제보다 더 강력하고 빠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희귀템이다. 이 동치미 국물을 숙취해소 음료로 포장해서 판매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시에 슬며시 국수 생각이 났다. 삶은 소면 한 덩어리 동치미에 말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잘 다듬은 마늘 한 톨부터 김치와 무생채, 그리고 고구마 한 조각까지 무엇하나 나무랄 데 없었다. 50년을 넘게 '직접' 음식을 만들어 왔기에 가능한 완전무결함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니 뭐니 하는 경영학 서적을 백번 읽는 것보다 이곳의 제대로 된 음식을 맛보고 직접 느껴보면 '오랜 시간을 이어 온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알 수 있는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몇 번을 다시 채웠는지 모를 돼지갈비 그릇이 한 켠으로 물러나고, 몇 병인지도 세기도 힘든 빈 병이 바닥을 마구 구르고 있을 무렵, 되려 테이블 위의 뜨거웠던 이야기들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서서히 마무리가 필요한 시간. 이 집의 마무리는 '터프'하게 김치 몇 조각 올린 냉면과 직접 만든 식혜 한 잔으로 정리가 된다. 어지간한 유명 냉면집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깊은 맛의 냉면 육수에 도무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초빼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동치미 국물을 냉면 육수로 쓰시는 것 같다. 새빨간 김치 조각의 강렬함이 냉면 육수에 잠기며 풀어질 때 만들어내는 이 '미친 케미'란!... 

도대체 이런 조합들은 어떻게 만들어내는 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 집을 나와 2, 3차로 찾았던 집들도 꽤 맛있는 음식을 내는 집들이 었지만, 다음 날 아침까지 초빼이의 가슴속에 남아 있던 것은 돼지갈비와 동치미와 냉면, 그리고 식혜 한 잔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아픈 속을 부여잡으면서도 초빼이는 '이미 용문갈비가 그리워졌다.' 

 

* 안내 : 지난 3월 9일(토) 초빼이의 노포일기 출판을 앞두고 유명 유투버이자 팟캐스트 방송자인 '탁재형 PD'님의 라이브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무려 두 시간을 넘게 대본도 없이 노포 이야기로만 라이브를 진행했습니다. 많이 버벅거렸지만 첫 방송이니 만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아래 링크를 따라 들어가시면 지난 방송을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탁 PD의 여행수다' - '초빼이' 김종현 작가의 음식유산의 보물창고 전국 노포 답사기(1)  

https://youtu.be/qGcqJ1KUjQ8?si=l7u7RhLjmcEiHn6r


'탁 PD의 여행수다' - '초빼이' 김종현 작가의 음식유산의 보물창고 전국 노포 답사기(2)  

https://youtu.be/9whBUml7I60?si=5mewBi2oLda8RArX

[메뉴추천]

1. 2인 이상 방문 시 : 돼지갈비(또는 소갈비) + 후냉면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공간은 없다. 단 용문갈비를 찾는 손님은 매장에 문의하면 주차 안내를 해 주신다. 

2. 매일 11:00~23:00

3. 참고 

    - 퇴근 시간인 6시 이후에는 웨이팅을 해야 한다. 예약도 받는다. 

    - 후식냉면과 식혜는 필수. 정말 맛있는 냉면과 식혜이다. 

    - 예약 및 문의 : 02-712-3900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창성옥, 용문해장국, 봉평메밀 용문시장, 삽다리 순대국, 성희네, 원조숯불통닭바베큐, 

      효창동짜장우동, 소세지하우스, 평양집, 원대구탕, 명화원, 꺼거, 어항로, 대원식당, 솔뫼, 진미식당, 옛집 

    - 효창공원 역 인근에는 이봉창 열사의 역사 울림관이 있다. 

    - 경의선 옛길(숲길)을 걸어 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 용산전자상가는 현재 리뉴얼 중인 건물이 많다. 몇몇 상가는 아직도 영업 중이다. 오디오나 AV기기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추천드린다. 

     - 용문전통시장도 추천한다. 용문시장 인근에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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