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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May 30. 2024

초빼이의 노포일기[서울 중구 다동 용금옥]

거지패 '꼭지'가 먹던 음식이 서울 시민들의 보양식이 되다.


벌써 5월이다.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5월은 로마 신화에서 '봄의 여신'을 뜻하는 마이아(Maia)에서 유래되었는데, 영어에서 5월을 가리키는 'May'는 '마이아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Maium'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5월이면 우리는 1년 12달 중 가장 좋은 날씨와 풍요로운 자연을 느낄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마이아'라는 단어가 '어머니나 유모'라는 뜻이라 하니 '풍요로움'이라는 의미에서는 어느 정도 그 의미가 일맥상통하는 점도 있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쓸데없이 미리 걱정하는데 익숙한' 초빼이는 5월 말이면 항상 다가올 6월이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융단처럼 부드럽던 봄의 햇살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며 살갗을 긁어내기 시작하는 여름이 바로 눈앞에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올해의 절반 가까이 지났다는 것을 인지하며 느끼는 상실감에 온몸의 기운이 쏙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다. 새해 첫날,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많은 결심들은 은행 잔고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나머지 실현 가능한 목표들도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 조금씩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허(虛)'하다. 이 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럴 땐 든든한 무언가를 먹으며 위로를 받아야 한다.    


5월에 삼계탕은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 들고, 다른 보양 음식들도 그 느끼함과 무게감에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초빼이가 마산에서 살던 시절 어머니는 항상 요맘때쯤부터 '장어국'을 끓여 주셨던 기억이 난다. 당시 워낙 흔했고 저렴한 재료였기에 어시장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던 식재료였다. 장어와 마늘 고춧가루를 참기름에 볶은 후 쌀뜨물에 된장, 고추장을 풀어 푹 익힌다. 배추 우거지와 다른 채소들을 듬뿍 넣은 후 한소끔 더 끓이다가 방아잎과 파를 넣고 한번 더 끓인 후 제피나 후춧가루를 넣고 먹으면 그런 별미가 또 없다. 밥을 말아도, 국수를 삶아 넣어도 모두 어울렸다. 그 당시 마산에는 추어탕 집보다는 장어탕이나 장어국 집이 훨씬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어지간한 동네 식당에서도 장어국은 기본 메뉴에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마산을 떠나 객지에 살며 가장 그리웠던 음식이나 식재료들이 몇 가지 있는데 방아잎의 향과 맛, 장어탕, 고들빼기, 가죽나물, 콩잎, 미더덕찜 등이 유난히 그립다. 그중에서 가장 빨리 대안을 찾은 것이 추어탕이었다. 추어탕의 맛은 솔직히 말하면 장어국과 거의 유사하다. 미꾸라지와 장어 살의 양에 차이는 있지만 식감도 꽤 유사하고 요리하는 방법도 그리 다르지 않다. 게다가 재료도 추어와 장어라는 차이만 있었을 뿐이니 구분하는 것이 더 이상할 지경. 서울에서의 거주 기간이 조금씩 늘어나며 장어국의 대안으로 찾은 것이 추어탕이었다. 물론 미꾸라지를 통으로 넣는 서울식 '추탕'보다는 익혀낸 뒤 채반에 갈아서 넣는 '전라도식' 추어탕에 더 애정을 느꼈지만.      


미꾸라지는 가을이면 몸에 많은 영양분을 비축한 뒤 긴 겨울잠을 자는 습성을 가진 생물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가을이면 논이나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식구들의 건강을 위해 먹이던 음식이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소를 도살하고 판매하던 반인들의 별식이었다는 '추두부탕(鰍豆腐湯)'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있고*, 청계천 주변 거지들의 조직인 '꼭지'들이 끓여 먹고 팔던 추어탕이 유명했고 서울식 추탕의 유래가 되었는 설도 있다.** 


초빼이가 추어탕을 이야기할 때 항상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미꾸리'와 '미꾸라지'를 구분할 때이다. 사실 초빼이도 나름 도시에서 살아 논이나 밭에서 미꾸라지 보는 것보다 집 근처 전통 시장이나 어시장에 나가면 아지매들이 고무 다라 가득 넣고 팔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정도이다. 물론 그곳에서 파는 녀석들이 미꾸리인지 미꾸라지인지 구분은 더욱 불가능하다. 어른들은 한눈에 미꾸라지인지 미꾸리인지 구별하는 것 같았는데 그 구별법을 배운 적도 없었다. 아무렴 어떠랴. 초빼이가 먹는 추어탕에서는 미꾸라지 얼굴도 볼 수 없는데 굳이 미꾸리인지 미꾸라지인지 구분하는 것도 덧없는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항상 온몸을 녹일듯한 피곤함을 느끼며 서울로 올라오는 길, 시간은 이미 오후 2시가 지났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하기 위해 시청역에 내려 용금옥으로 발길을 돌렸다. 의외로 용금옥은 이번이 첫 방문이다. 이 일대의 밥집과 술집을 그렇게 많이 드나들면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추어탕 집인 용금옥은 한 번도 찾지 못했다. 아마도 추어탕은 보양식이라는 선입견에 음식 자체를 즐기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방문임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용금옥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는 초빼이의 모습에 순간 어색함도 느낀다. 바로 옆집인 부민옥부터 시작하여 초류향, 낙동강, 무교동 북어국집, 남포면옥, 곰국시, 이북만두 등 워낙 좋아하는 집들이 많아 용금옥 앞을 수백 번 지나다녔기 때문이다.


'금이 솟아나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아 용금옥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1대 사장님의 남편인 신석숭 사장님이 지었다는 설도 있고, 시인 변영로 선생이 지었다는 말도 있다. 누가 이름을 지었든 92년의 시간 동안 하나의 간판으로 지금까지 운영해 온 곳이라면 꽤나 많은 금은 캐냈을 듯하다. 또한 용금옥은 노포 그 자체로서 역사성도 중요하지만 남북관계의 물고를 트는 개기가 된 것으로도 유명한 집이다. 1973년 남북회담의 북한 측 대표로 참석했던 박성철 부주석이 "용금옥은 지금도 잘 있습니까?"라는 한마디를 던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회담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첫 남북회담에서 임팩트 있는 '아이스 브레이킹'의 소재로 사용되었던 것인데 북측 대표의 감각이 돋보이기도 한다.       


방으로 들어가 상에 앉으며 추어탕을 주문했다. "어떻게 드릴까요?"라고 묻는 직원분의 물음에 "갈아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소주 한 병도 청했다. 아마도 이 집이 제대로 된 서울식 추탕을 맛보는 첫 집이겠거니 싶다. 서울식 추(어)탕이 남도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가장 차이나는 점은 육수와 끓이는 방식이록 한다. 서울식 추어탕은 양지머리나 곱창을 푹 삶아 낸 국물에 미꾸라지를 써서 냄새가 없는 것과 미꾸라지를 잘게 갈지 않고 통으로 내는 것에서 남도의 추어탕과 구분된다. 초빼이는 '갈아서 달라'라고 했으니 이미 서울식 추탕이 아닐 수도 있으려나?  '미꾸라지 튀김'도 추가했다. 사실 이 집에서의 식사가 첫끼라 굶주린 초빼이의 배를 채우기에 추탕 한 그릇은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옅은 빨간색 국물이 이제까지의 추어탕과 비교해 보았을 때 느낌이 다르다. 게다가 반찬들마저 색상이 멀겋다. 무채도 숙주나물과 마찬가지로 얌전하고도 새침한 모습이다. 오랜만에 만난 전형적인 서울식 찬들의 모습. 그러면서도 그릇엔 다진 매운 청양고추를 가득 담아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도 엿볼 수 있다. 뚝배기 국물이 조금 진정되자 청양고추와 파를 넣었다. 그리고 그 위로 딱 한 젓가락 분량만큼 나온 면을 올렸다. 장어국에 국수를 말아먹던 옛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국수가락이 국물을 집어삼키며 수면 아래로 서서히 모습을 감춘다. 마음속으로 60초만 세다가 흠뻑 추어탕 국물을 머금은 녀석을 집어 입에 넣는다. 


맛은 있으나 무언가 부족한 느낌. 누가 경상도 사람 아니랄까 '향긋한 방아나 산초, 또는 제피가루 중 하나만 있었어도' 하는 아쉬움을 떠 올린다. 마치 로마에서 시칠리아의 법을 따르려 하는 우()를 범한다. 다시 중심을 잡고 서울식 추탕의 길로 돌아온다. 흰쌀밥이 들어간 추어탕 국물은 무게감이 다르다. 조금 더 진중해지고 조금 더 무거워진다. 허기진 사람들의 배를 채우고 지난밤의 음주로 지친 속을 달래줘야 한다. 그래서 더욱 진득해지고 더욱 농후해진다. 


용금옥의 추어탕은 이제껏 먹어 본 추어탕과는 조금 달랐다. 수저로 추어탕을 몇 번 뒤적이면 딸려 올라오는 유부와 두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버섯, 호박과 양파도 보인다. 추어탕에 유부와 두부, 게다가 버섯에 호박이라니. 굉장히 낯선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재료들이 추어탕 국물에 함께 녹아있어 국물은 한결 부드럽다. 갗 시골에서 상경했을 때 느꼈던 서울 사람들의 이미지와 그대로 이어진다. 조금은 투박하고 무뚝뚝하다고도 느낄 수 있는 전라도나 경상도식 추어탕에 비해 도드라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미꾸라지 튀김을 집어 들었다. 추어튀김이라 굳이 말을 줄이지 않고 '미꾸라지 튀김'이라 명명한 것은 본질에 더욱 충실하겠다는 의미라 생각했다. 옛날식 튀김옷을 두껍게 두른 미꾸라지 튀김은 이 집에서는 반드시 먹어야 한다. 두터운 튀김반죽 속에 숨은 포실포실한 미꾸라지 튀김의 입체적인 식감은 먹어봐야만 안다. 굳이 그 이름도 외기 힘든 미꾸라지의 영양성분을 따지지 않더라도 한 입 베어 물면 '어 좋은데?'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당연히 빈 소주잔을 채우고 다시 입에 털어 넣는다. 추탕 한 그릇과 미꾸라지 튀김 한 접시의 합(合)이 굉장히 좋다. 개인적으로도 미꾸라지로 만든 음식 중에서는 튀김에 많은 애정을 주는 편이다. 미꾸라지 살의 푹신한 식감에 튀김옷의 바삭함과 기름의 풍부한 맛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먹을 때마다 입을 즐겁게 한다. 이질적인 서로 다른 식감을 동시에 느끼며 '맛'이라는 복합적 감각의 영역에 '식감'이 더해져 전혀 다른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항상 놀라고 있다. 

  

게눈 감추듯 추어탕과 미꾸라지 튀김을 먹어치웠다. 그야말로 '순삭'했다. 함께 주문한 소주도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늦은 첫 끼에 많이 허기졌던 것도 있었지만 처음으로 서울식 추탕을 경험해 보는 재미가 더욱 컸다.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즐거움은 식도락가라면 피할 수 없는 즐거움과 같은 것이다. 그에 더해 이런 유서 깊고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노포에서의 한 끼 식사로 초빼이의 음식 사전엔 또 한 줄 추가할 것이 생겼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는 말을 통해 여행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한 적 있다. 그의 말을 따라 국내외 각지를 돌며 미식 여행과 취재를 다니는 초빼이도 새로운 음식과 노포를 찾는 것만이 아닌, 음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가지기 위해 꽤나 노력하는 중이다. 

그런데 점점 노안이 심해지고 있다. 


* 예종석, "예종석의 신도문대작-추탕과 추어탕의 차이", 한겨레신문, 2019.10.19, [매거진 esc]

** 이규태, '이규태 코너-추어탕', 조선일보, 1985.10.18, 문화


[메뉴추천]

1. 1~2인 방문 시 : 추탕 + 미꾸라지 튀김 + 소주 

2. 3인 이상 방문 시 : 추탕 + 미꾸라지 튀김 + 안주류(북어구이, 더덕구이, 모듬전 등)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장은 없다.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2. 월~일 11:00~22:00 / 정기휴무 2,4,5번째 일요일  

3. 참고 

    - 정통 서울식 추탕을 경험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주문 시 "통으로 주세요"라고 말하면 된다. 

    - 미꾸라지 튀김은 꼭 드셔 보시길.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인천집, 대원집, 부민옥, 북어국집, 남포면옥, 참숯골, 오륙도, 도리방, 청송옥, 송옥, 현대

      칼국수, 초류향, 이북만두, 낙동강, 을밀대, 도리방 등

    - 2차는 인근 무교동과 다동의 노포들을 추천한다. 서울에서 몇 남지 않은 노포의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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