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오키나와현 오키나와 본섬 및 아에야마 제도 이시가키 섬 일대
지금까지 9주에 거쳐 오키나와의 대표적인 노포와 새롭게 떠 오르고 있는 가게들을 소개하였다.
실은 더 많은 곳을 취재하고 조사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노포들을 고르다 보니, 9개 정도의 노포를 소개할 수 있었다.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오키나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음식을 소개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우선순위에서 제하기도 했다. '초빼이의 노포일기 - 일본 오키나와' 편의 마지막은 그동안 소개하지 못한 노포 중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은 곳을 모아 소개하며 초빼이의 노포일기-오키나와 편의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나하야는 1914년 창업한, 2025년 기준으로 111년이 된 노포다(나하야 웹사이트 기준). 오키나와 전체를 보아도 이 집만큼 오래된 노포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오래된 가게다. 오키나와 본섬의 북쪽 나키진에 자리 잡은 이곳은 어지간히 큰 마음을 먹지 않고는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고속도로를 나와 오키나와의 지방도를 두세 번 갈아타고 찾아간 곳은 나키진의 시골 마을.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90도를 넘는 각도로 좌회전을 해야 하기에(그것도 다리 밑으로) 자칫 한 눈을 팔다 지나치게 되면 긴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돌아와야 한다. 큰 좌회전을 한 후 접어든 작은 골목길. 처음 나하야의 간판을 보면 이 집이 도대체 뭐 하는 집일까 하는 궁금함이 생긴다. 물론 초빼이처럼 사전 리서치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100% 지나칠 곳이다.
나하시의 호텔에서 출발하여 북쪽 나키진 쿠니가미에 있는 나하야(なーはー屋)까지의 거리는 무려 70km 이상. 소개한 대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키나와 소바를 팔아온 집이다. 오키나와 소바를 전통방식대로 내기에 이 집의 소바는 그 향과 풍미가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오키나와 소바만을 파는 곳은 아니다. 오므라이스도 내고 다른 음식들도 낸다. 나하야가 위치한 마을에 와 보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마치 우리 시골에 가면 “**식당”이라는 이름을 달고 백반을 내고, 삼겹살과 갈비도 팔고, 짜장면과 짬뽕도 내는 그런 식당과 유사하다. 마을에 식당은 오직 이 집 하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곳도 오직 이 집뿐이다. 다른 식당을 찾고자 한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외딴 시골의 삶에서, 밥 한 끼 끼니를 때우고자 굳이 차를 몰고 다른 지역까지 가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가게문을 닫혔나?" 밖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안에서 들린 인기척에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연로하신(외양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어르신 한 분이 스탠드 좌석에 앉아 맥주 한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손님이자 가게의 직원이자 나하야 사장님의 친구분이다. 맥주를 들던 손을 잠시 멈추고 주방에 계신 사장님께 손님이 왔다고 큰 소리로 알려주신다. 그제야 사장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하야의 사장님이신 다마키 가오루(玉城薫) 상이다.
사장님 얼굴 역시 세월의 흔적이 진득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시더니 메뉴판을 내주신다. 그리곤 쏟아지는 질문공세. “어떻게 여기에 왔냐?”에서부터 시작한 사장님의 질문은 내 짧은 일본어를 듣더니 급작스럽게 영어로 바뀌었다. 그것도 일본인들 특유의 영어가 아닌, 아주 유창한 발음으로 질문을 해댄다. “어디에서 왔냐?, 여기에 왜 왔냐? 어떻게 알고 이곳까지 찾아왔냐” 일본어와 영어 단어가 혼합된 답변을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하게 사장님의 속사포 같은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오키나와 소바 중 꽤 인기 있는 메뉴인 삽겹소바를 주문했다. 그리고 다른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오므라이스가 좋다고 권하신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사장님의 등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시야로 작지만 거친 손 하나가 쑥 눈앞으로 들어왔다. 내 나이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빈 물 잔 하나를 놓는다. 맥주 한 병을 놓고 씨름하시던 그 친구분의 역할이었다.
예전(사전 조사 시)에는 매장 전체를 식당으로 운영했던 것 같았는데, 이젠 매장의 절반을 뚝 잘라 한쪽은 가라오케 시설을 들여놓고 만화책도 채워 놓으셨다. 가끔 찾는 단체손님들이 재밌게 즐기라고 구조를 바꾸셨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으로도 쓰인다. 오키나와의 시골도 우리네 시골과 다르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도시나 본토로 떠나고 시골 마을을 지키고 있는 것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 뿐. 이곳도 그야말로 '노인과 바다'인 셈. 동네 사람들이 낮일(농사와 어업)을 마치고 저녁 시간에 이곳에 모여 가라오케도 즐기고 술도 한잔씩 하신다고 했다. 천장에 매달린 TV에서는 일본 드라마의 대사들이 배경음악처럼 가게 전체를 채우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본 배우들의 대사와 함께 이곳의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식당의 의자와 테이블은 이미 다 사라졌고, 마치 옛날식 다방의 테이블과 오래된 소파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 위에서 오키나와 소바를 받아 들었다.
흥얼흥얼 노래를 중얼거리는 사장님이 주방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맛있어지는 음식 냄새가 홀 공간으로 슬며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강렬한 유혹을 도저히 참을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저항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어져 버렸다. 훈연향이 짙게 벤 오키나와 소바의 향에 마을의 빗장을 열었고, 단숨에 스르륵 허물어졌다. 고작 음식 냄새 하나에 함락당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답해드렸다.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큰 눈을 번쩍이더니 내게 다가와 그제야 환영의 포옹을 선사한다. 내 등을 감싸 안고 어깨까지 토닥여 주신다. 멀리서 온 객이 처음으로 받는 환대다. 이곳을 오는 동안 쌓인 피로와 짜증은 어느새 녹아 버렸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온 손님과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하셨다. 그 손님의 책에 자신의 가게가 나왔다고 자랑하셨다. 아마도 '레트로-오키나와'라는 책을 쓴 남원상 작가의 이야기인 듯했다. "나도 그 책을 읽었고, 그래서 이곳에 꼭 와보고 싶었다"라고 하니 너무나 기뻐하며 다시 한번 더 껴안아 주신다. 요즘은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어 얼마 전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다고 자랑하신다. 나이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의 패기다. "이젠 노안 때문에 책도 못 읽겠어"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던, 안일한 초빼이의 마음에 일침을 놓았다. "My English Name is Anton"이라며 자신의 영어 이름을 알려주신다. 증조할아버지가 처음 '마루야 음식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장소를 옮기며 '대중식당 다마키'로 이름을 바꿨다가 1980년 경 어머니의 뒤를 이어 다마키 가오루 씨가 4대째 사장이 되며 지금의 이름인 '나하야'로 바뀌었다.
오키나와의 가정식과 오키나와 소바, 일본 본토의 음식 등 굉장히 많은 음식을 만들고 낸다. 초빼이가 주문했던 '오키나와 소바와 오므라이스'가 좋았고, '야키소바 소스'라 적힌 '나폴리탄 스파게티'도 좋다. 추라우미 수족관이나 나가하마 해변, 코우리 브리지 등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짬을 내어 한번 들려보는 것을 권한다.
[추가 팁]
1. 매장명 : 나하야(なーはー屋)
2. 주소 : 278 Nakasone, Nakijin, Kunigami District, Okinawa
3. 영업시간 :
- 기존(25년 2월 기준) : 월~토 10:30~15:00, 18:30~21:30 / 일요일 휴무
- 현재(25년 7월 기준) : 주말인 금토일에만 영업 중. 금토일 17:00~21:00
4. 주차장 : 매장 앞 넓은 공터에 주차 가능
5. 참고
- 예산 : 1인당 700~1,000엔
- 현금 계산
- 연락처 : +81-980-56-2343
6. 이용 시 팁
- 요즘 사장님의 사정으로 영업시간이 많이 줄어든 듯하다. 사전 전화 후 통화할 것.
https://maps.app.goo.gl/7ajJryBXDhtCGhzPA
오키나와 나하시의 중심에는 쿠스쿠라 불리는 오키나와의 오래된 성이 하나 있다. 오키나와를 찾는 많은 이들이 찾는 곳 중 한 곳인 슈리성(首里城)이다. 우리나라 서울의 한양도성과 경복궁 같은 곳이라고 할까? 나하시의 모노레일 슈리역에서 내려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 슈리성을 오르기 전 횡단보도를 건너 작은 골목으로 발길을 돌리면 새롭게 지어진 현대식 건물 사이로 오키나와 아담한 가옥 한 채가 눈에 띈다. 나하시내에서 유명한 오키나와 소바집 슈리소바(首里そば)다.
슈리소바의 첫인상은 주택가의 골목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무척이나 고즈넉하고 차분한 느낌이다. 웨이팅 줄에 서 있는 사람들도 그리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 줄 중간에는 몇몇의 중국인 여행객들이 끼어 있기도 했다. 초빼이도 대기줄 끄트머리에 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2월의 중순이었지만 한낮의 온도는 25도 정도까지 오르는, 우리나라의 늦봄과 초여름의 사이 정도의 날씨다. 햇빛이 뜨거워질수록 뱃속의 거지들은 더 큰 소리로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한 팀, 한 팀 가게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앞으로 몇 걸음씩 내디뎠다. 점심시간의 웨이팅이라 순환이 빠른 편이었을까? 20여분의 기다림 후 가게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게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현관문 입구에도 작은 의자와 기다리는 인원들이 있을 줄이야.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그제야 직원분이 인원수를 확인한다. 오키나와에서 초빼이는 항상 '히토리(一人です)'이다.
슈리소바의 음식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일반 가정집을 개조하여 식당으로 사용하는 이 집의 분위기처럼, 음식이 담백하고 덤덤하다. 집에서 먹는 음식들이 다 그렇다. 음식의 기능적인 면이 더 부각된다. 맛과 영양에 치중을 하니 외적인 화려함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어머니들의 손이 마법을 부리는, 그런 음식이다. 오키나와의 수도였던 나하의 왕궁이 있는 동네의 가정집이니 어쩌면 고관이나 궁에서 일하던 이들의 집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격식을 갖췄다. 그런 집의 음식이니 담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잔소바나 나하야와 같은 소바집의 음식과는 결이 달랐다. 그런 면에서 보면 슈리소바의 음식들은 초빼이가 처음으로 서울의 음식을 접했을 때 느꼈던 그 느낌과 유사하다고 할까?
뜨겁게 달궈진 속은 시원한 맥주를 원했다. 오리온 맥주와 오키나와 소바와 쥬시를 청했다.
전형적인 오키나와 소바는 삼겹살과 갈비, 그리고 어묵이 기본 토핑으로 올라간다. 그 아래에는 무명실처럼 굵은 하얀색 소바가 자리 잡고 있다. 오키나와 소바 특유의 불내(잿물을 태운 냄새)가 가쓰오부시 향이 더해져 오키나와 소바 특유의 향을 피워 올린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이 항상 내뱉는 "좋지 아니한가, 좋지 아니한가(이이자나이카, いいじゃないか)"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질그릇에 담긴, 오키나와 소바는 그 어느 집보다 정갈하였고, 쥬시는 양갓집 규수처럼 단정했다. 심지어 오키나와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도 빠트리지 않았던 코레구스(コーレーグース)는 오키나와 전통 유리공예 병에 담겨있어 더욱 농후해 보였다. 도시의 음식이자 수도의 음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절제되고 차분히 가라앉은 침잠된 멋이 음식에서 보였다. 이 멋들어진 음식을 너무나 저렴한 모습으로 먹기 시작했다. 입장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인내력은 이미 바닥이 나 있었다. 시원한 오리온 병맥주로 조금이나 달래 보려 했지만 도저히 다스릴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모든 그릇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곳은 슈리소바(首里そば)였다.
[추가 팁]
1. 매장명 : 슈리소바(首里そば)
2. 주소 : 1 Chome-7 Shuriakatacho, Naha, Okinawa
3. 영업시간 : 월~수, 금~토 11:30~14:00 / 목요일, 일요일 정기휴무
4. 주차장 : 매장 앞 주차장 구비. 최대 6대 정도까지 가능
5. 참고
- 예산 : 1인당 700~1,000엔
- 현금 계산
- 연락처 : +81 98-884-0556
6. 이용 시 팁
- 영업시간이 짧아 웨이팅이 항상 있다. 영업시간 전 방문하여 줄을 서는 것이 좋다.
- 추천 메뉴 : 소바와 쥬시류, 오키나와 팥빙수(젠자이, ぜんざい) 등
https://maps.app.goo.gl/51RiDfHMZVkquZWd9
키시모토 식당은 오키나와 북쪽 모토부정에 있는 노포 오키나와 소바집이다. 사실 이곳은 한국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많은 사람이 찾는 곳 중 하나. 1905년에 개업했으니 올해로 딱 120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오키나와의 식당 중 가장 오래된 곳이 아닐까 싶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듯 오키나와 전통 소바면을 만드는 방법은 꽤 세분화하여 기록되어 있는데, 소바를 반죽할 때 쓰는 물은 잿물을 사용한다. 오키나와의 오래된 소바집들은 이 방법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는데, 이 집도 그중의 하나이다. 오키나와 소바 특유의 불내(잿물의 향)는 가쓰오부시에서도 낼 수 있지만 전통 방식으로 만든 소바면에도 찾을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집에서 내는 쥬시(ジューシー)때문. 초빼이가 먹었던 오키나와 음식점의 쥬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바로 이 식당이었다. 오키나와는 토양의 특성상 벼농사가 어려운 지역이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오키나와는 쌀을 수입해 왔다. 인근의 태국이나 필리핀에서 주로 쌀을 들여왔는데 그럼에도 예전에는 쌀이 귀했던 것. 그런 이유로 밥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양을 불려 냈는데 이것이 쥬시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 음식을 일상식으로만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키나와의 전통 명절에는 집안의 수호신에게 쥬시를 바치기도 하였고, 동지에는 반드시 '토란'을 넣고 쥬시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고 한다.
키시모토 식당은 오키나와 북쪽 바닷가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키시모토 식당의 건물은 지붕이 꽤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 바닷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듯, 바닷가 마을의 집은 항상 지붕이 낮다. 거센 바닷바람에 순응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궁리이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었지만 한참을 대기줄에 서서 기다리다 입장했다. 일본의 TV에도 자주 나왔고 연예인 같은 유명인들도 자주 찾아 워낙 유명한 곳이기에 일본인이나 다른 나라의 관광객들이 꼭 한 번씩은 찾는 곳이라 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인지들이 익숙하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의 흔적이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의 그것처럼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그런 사인들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 집을 찾기 전 이미 두 곳의 식당을 들렀기에 여성과 아이들이 먹는 작은 사이즈의 소바와 쥬시를 주문했다. 이 집에서는 메뉴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소바 M과 S사이즈를 고를 수 있었고 곁들일 밥은 쥬시나 백미밥을 고르면 되었다. 키시모토 식당의 쥬시는 워낙 유명하여 운이 나쁘면 재료 소진으로 먹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잠시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테이블은 모두 손님들로 차 있어서 좌식 좌석으로 안내받았다. 다다미가 깔린 바닥에 앉아 작은 상이 초빼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의 오래된 식당을 찾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감 깊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상을 놓고 영업하는 곳을 찾기 힘들다. 사실 바닥에 앉아 식사하는 것 자체가 요즘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기도 하다. 양반다리로 앉는 자체가 소화를 힘들게 하고 음식을 먹는데 불편함도 주기 때문. 게다가 입식 문화에 이미 몸이 익어 주저앉는 자세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다.
이곳도 자신들이 살던 집을 개조하여 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영업이 끝난 후 문을 걸어 닫고, 가족처럼 보이는 종업원들이 그 자리에 누워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기도 수월할 것 같아 보였다. 시간의 흔적이 바닥과 벽에 그대로 내려앉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소바는 평범했다. 흔한 관광지 식당의 음식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미 유명한 오키나와 소바 식당 여러 곳을 찾은 터라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쥬시는 달랐다.
한 수저를 입에 넣자마자 입안에서 축제가 벌어졌다. 1월 말에서 2월 초 사이에 열린다는 오키나와의 벚꽃 축제가 초빼이의 입안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듯했다. 다양한 채소와 재료들의 맛이 입안에서 톡톡 터져 나왔다. 그 재료들의 맛에 기분 좋은 향이 더해졌다. 그리고 그 모든 향과 맛을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조차 쉽게 알기 어려운 소스가 아우르며 달래주었다.
흔하디 흔한 재료인 당근과 표고버섯, 다시마, 어묵과 돼지고기가 이런 맛을 만들어낼 줄 몰랐다. 정말 달콤하고 감칠맛이 넘치는 한 그릇의 밥이었다. 이런 밥이라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밥을 매일 먹을 수 있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이미 배가 불렀던 상태였지만 정성스레 젓가락을 놀리며 탐닉했다. 순식간에 식욕이 이성을 지배했다. 밥알 한 톨, 당근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싶었다. 음식을 받고 한참 후 정신을 차렸다. 이미 옆 테이블은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내 앞의 그릇은 모두 깔끔히 비워져 있었다.
맛있는 쥬시(ジューシー)를 맛보고 싶다면, 키시모토 식당은 꼭 한번 들리시길 권한다.
[추가 팁]
1. 매장명 : 키시모토 식당(元祖木灰沖縄そばきしもと食堂)
2. 주소 : 5 Toguchi, 本部町 Motobu, Kunigami District, Okinawa
3. 영업시간 : 목~화 11:00~17:00 / 수요일 정기휴무
4. 주차장 : 별도의 주차장 없음. 모토부 정영시장 앞과 옆의 무료 주차장 이용.
5. 참고
- 예산 : 1인당 800~1,500엔
- 현금 계산
- 연락처 : +81 980-47-2887
6. 이용 시 팁
- 현지에서도 쥬시가 맛있기로 유명한 곳. 점심시간 이후에는 재료 소진으로 쥬시를 못 먹을 수도 있다.
오전 중 오픈런을 권한다.
- 주차장은 모두 무료이다.
- 추라우미 수족관이 인근에 있어 그곳을 방문할 때 들리면 동선을 짜는데 편하다.
https://maps.app.goo.gl/RirpcggxBhoWxXJr9
오키나와 본섬에서 아에야마 제도의 이시가키시(石垣市)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로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가는 시간과 엇비슷하다. 아에야마 제도는 위치상 오키나와 본섬보다 대만에 더 가까운 곳(타이베이 시와 273km 거리, 오키나와 본섬과는 400km 거)으로 일본이 타국과 국경분쟁으로 다투는 대표적인 지역이기도 하다. 초빼이가 아에야마 제도의 이시가키 섬까지 굳이 하루를 내어 찾았던 이유는 아에야마 제도의 소바에 대한 궁금증과 일본 최남단에 자리 잡은 맥도널드를 방문하고 기록에 남기고 싶었기 때문.
관광객의 입장에서 보면 오키나와 소바는 '그게 그것'인 모두 똑같은 소바로 보이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역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오키나와 본섬의 '오키나와 소바(沖縄そば)'와 아에야마 제도의 '아에야마 소바(八重山そば)', 그리고 미야코 제도의 '미야코 소바(宮古そば)'가 있다. 오키나와 소바는 본섬의 전역에서 찾을 수 있는데, 중간 두께의 납작한 면과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 국물은 돼지뼈를 우린 육수에 가쓰오부시를 우려 맑고 깊은 국물을 낸다. 토핑으로는 삼겹살이나 갈비, 어묵, 생강절임과 파 등을 올리는 것이 특징. 오키나와의 중심이었던 본섬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물산이 풍부했다. 그래서 소바 위에 올릴 수 있는 식재료의 종류가 다른 곳에 비해 더 많았다.
그에 비해 아에야마 소바는 일본의 최남단 아에야마 제도(八重山諸島) 전역에서 맛볼 수 있는데 가늘고 긴 면이 특징이다. 돼지뼈를 우린 국물을 주로 쓰며 감칠맛이 좋다. 돼지고기 고명은 삼겹살이나 돼지고기를 잘게 찢어서 올리고 파와 어묵 등 비교적 간단한 고명이 특징이다. 육수가 담백하니 맛을 내는데 간장을 쓰는 편이며 후추를 부리기도 한다. 미야코 소바는 오키나와 본섬의 소바와 크게 다르진 않지만 오키나와 소바보다는 가늘고 곧은 면을 써서 목 넘김이 좋다. 국물은 가다랑어와 돼지뼈를 혼합하여 내는데 굉장히 담백하다. 다른 지역의 소바와 가장 큰 차이점은 고명을 면 아래에 숨겨 낸다는 것이 특징. 굉장히 정갈하고 절제된 소바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 아침, 이시가키 신공항에 내렸다. 첫 일정으로 이시가키시에 있는 일본 최남단 맥도널드를 찾았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지? 최남단 맥도널드는 이미 5개월 전에 폐점했던 상태. 워낙 시골이고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 아니다 보니 구글과 챗GPT 검색에도 폐점 여부가 반영되지 않았던 것(현재는 반영되어 있다). 맥도널드 간판이 붙어있던 흔적을 보며 어이없어하다 아에야마 소바를 전문으로 하는 노포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날따라 그곳도 휴무. 여행의 묘미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의외의 상황을 즐기는 것이라지만, 이 날은 '조금 심한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시가키 시의 이름 모를 커피집에 들어가 급히 검색을 하니 근처에 꽤 괜찮은 아에야마 소바 전문점이 보였다. 노포는 아니었지만 지역민들에게 꽤 알려진 곳.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곳이 바로 아에야마 소바 전문점 '타이라 쇼텐(平良商店)'이다.
이 집은 매년 열리는 아에야마 소바 경진대회에서 두 번이나 수상을 한 곳이다. 아에야마 제도 전체에 얼마나 많은 소바 전문점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본인들의 특성상 '대회 수상'이 주는 의미는 남다를 것 같았다. 매장 앞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기줄에 서 있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줄의 끝에 섰더니 친절한 일본인들이 가게 안에 들어가 대기 등록을 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문을 열고 들어가 리스트에 이름과 방문객 수를 적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무상(キム さん)'하고 직원이 불러준다. 테이블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타이라 쇼텐은 노포라고 부르기엔 조금 젊은 매장이다. 개업한 지 10여 년(2012년 개업이라 들었다) 정도 되는 이 집은 아에야마 소바의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는 곳이다. 메뉴를 고민하며 요즘 이 집에서 밀고 있는(?) 규소바(牛そば)에 잠시 욕심을 냈지만, 마음을 다잡고 아에야마 소바와 쥬시 오니기리(ジューシー おにぎり)를 주문했다. 일본에서는 소고기 중 고베규(神戸牛)를 최고로 치지만, 최근에는 이시가키 규(石垣牛)도 고급 소의 이미지를 얻으며 홋카이도의 소고기와 함께 '일본 3대 와규'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원래 이시가키의 소고기는 이시가키 섬의 브랜드가 아니라 일본의 타 지역의 브랜드 소고기를 만들기 위한 송아지를 키우던 곳이었다. 이시가키에서 송아지를 키운 후 일본의 각 지역으로 보내 그곳의 브랜드 소로 키우는 시스템. 이시가키의 소가 유명해진 것은 2000년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모인 '오키나와 정상회담' 만찬에 이시가키 섬의 소고기가 사용되면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급히 중심을 잡아야만 했다. 맥도널드와 급작스런 노포의 휴무로 혼미해진 마음을 급하게 추슬렀다. 음식은 주문을 받은 후 바로 만들지만 나오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소문대로 아에야마 소바는 면부터 오키나와 본섬의 소바면과 달랐다. 가늘고 둥근 면이 중국의 면과 비슷하다는 느낌. 아무래도 대만과의 거리가 가깝다 보니 중국 음식의 영향을 조금 더 강하게 받은 듯했다. 아에야마 박물관에서 본 다량의 중국 도자기도 이와 연관 지을 수 있겠다 싶었다.(심지어 조선의 백자 파편도 있었다). 고명으로 나오는 본섬의 삼겹살은 큰 덩어리 하나를 무심하게 올리는데 반해 이곳 소바의 고명은 작은 크기로 잘라져 나왔다. 원래는 찢어서 나오는 것을 요즘 식으로 바꾼 듯했다. 연한 육수는 담백했다. 잘게 썰어 올린 파 고명까지 감안하자면 상하이나 항저우의 어느 식당에서 면요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젊은 식당답게 다양한 시도도 눈에 띄었다. 쥬시 오니기리가 바로 그것. 밥그릇에 담겨 나오던 쥬시가 이 집에서는 주먹밥 형태의 오니기리로 그 외형을 바꿨다. 며칠 전 들렸던 소바 에이분이 떠 올랐다. 기존의 전통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역사를 새로 입혀가는 시도가 너무나 신선했다. 항상 느끼지만 '전통(傳統)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가며 변해간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 발전(發展)이 있다. 한 곳에 고착(固着)되어선 진화는 없다는 생각이 더욱 굳건해진다. '소바 에이분'이 오키나와 소바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곳이라면, '타이라 쇼텐'은 아에야아 소바라는 장르에서 그 역할을 대신 맡은 것처럼 보였다. 최남단 맥도널드의 폐점에서 받았던 실망이 이곳의 소바와 쥬시를 통해 상쇄되었다.
결과적으로 아에야마 제도를 방문한 목적은 모두 실패했지만, 타이라 쇼텐을 발견하며 절반의 성공은 이뤘다. 전통을 계승하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곳을 보면 초빼이도 덩달아 흥분한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음식맛은 어떠냐고? 두 번의 수상 실적이 말해주듯 음식맛은 혹평하지 못할 만큼 마음에 든다. 그리고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소바를 먹을 때 꼭 후추를 뿌려서 먹을 것을 권한다. 오키나와 특유의 향신료인 코레구스를 넣어도 좋지만 거기에 이시가키섬의 특산물인 '삐빠츠'라는 후추를 뿌리면 맛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오직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향신료다.
[추가 팁]
1. 매장명 : 타이라 쇼텐(八重山そば 平良商店)
2. 주소 : 506 Tonoshiro, Ishigaki, Okinawa
3. 영업시간 : 월~금 11:30~14:00 / 토, 일요일 정기휴무
4. 주차장 : 별도의 주차장 없음.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2,000엔
- 현금 계산
- 연락처 : +81 980-87-0890
6. 이용 시 팁
- 가급적 유료 주차장을 이용할 것. 도로변 주차는 하지만 오랜 시간 차를 놔두지는 않았음.
- 이시가키 섬을 찾는다면 한번 찾아볼 것. 현지인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 추천 메뉴 : 아에야마 소바, 쥬시 오니기리, 매운 미소소바, 규소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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