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효고현 고베시 추오구 긴파이 모리이 혼텐(金盃 森井本店)
2025년 접어들며 일본의 지진 소식이 심상치 않다. 지난 7월 대지진을 예측한 만화로 인해 일본 전국이 긴장에 떨더니 바로 엊그제 이와테현 해상에서 진도 6.7의 지진이 발생하며 다시 관동(간토) 지역의 대지진 설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첫 번째 큰 지진은 1995년 있었던 '고베 대지진'이다. 군 생활의 막바지, 성인이 되고 난 후 들었던 가장 큰 지진 관련 뉴스였기 때문이다.
1995년 1월 효고현 남부에서 발생했던 이 지진은 일본의 도심부를 직격 한 최초의 대지진으로 일본인들은 '한신 대지진'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진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 고베를 강타한 지진은 단 20초간의 진동으로 고베시에서만 4,571명의 사망자를 냈다. 거기에 부상자는 약 1.5만 명에 이르렀고, 피해자는 22만 2천 명, 피해를 입은 가옥 수만 67,421채, 완전히 파괴된 가옥만도 7천여 채에 이르렀다. 도시 전체의 기능이 마비될 정도의 피해를 입었고, 피해자들을 위해 가설된 임시 주택은 무려 2년이 넘게 운영될 정도로 피해복구도 어려운 일이었다.
한편으론 이런 어려움과 고난은 우리에게 사람들이 숨겨왔던 본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전편에서 소개했던 노포 커피집 '호코도 커피(放香堂加琲)'는 고베 시내 전역이 단수가 되자, 영업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건물에 있던 옥상 저수조를 개방해 식수가 필요한 이웃에게 나눠주며 지역 사회의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복구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난 후, 고베시의 시장은 지역민들의 건의로 호코도 커피에 감사패를 수여하기도 했다.
호코도 커피같이 물리적 피해를 입지 않아 지역 사회의 재건을 위해 솔선수범하여 봉사한 곳도 있지만, 지진 피해를 직격으로 맞은 노포들도 있었다.
고베 지하철 신카이치역(新開地駅) 인근에 있는 노포 '그릴 이페이(グリル一平 新開地本店)'는 1952년 창업한 서양음식 전문점이다. 이 집은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영업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고베시 전체가 피해를 입어 모두가 힘든 시절을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집을 사랑했던 단골들은 실의로 인해 폐업을 결정했던 사장을 설득하는 동시에 조립식 건물을 지어 영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긴파이 모리이(金盃 森井本店)도 고베 대지진에 건물이 무너져 내린 피해를 입은 노포다. 100년이 넘는 오래된 역사만큼 많은 사연도 품고 있는 집이다. 어디 100년이 넘는 시간을 운영해 오는 노포가 맞닥뜨린 위기 한 번 없었을까?
가장 먼저 찾아온 위기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위기였다. 전쟁의 막바지였던 1945년 2월에서 3월에 걸쳐 미군이 시행했던 '고베 대공습'이었다. 수백 대의 폭격기가 동원된, 2차례에 걸친 대공습은 고베라는 도시를 초토화시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당시 고베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던 대도시였고, 건물의 대부분(약 90%)이 목조 건물로 이뤄져 미군의 네이팜탄 공격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고 한다. 고베 공습으로 인해 도시는 마비상태에 이르렀고, 당연히 일상의 생활도 불가능했다. 긴파이 모리이도 종전 후 1945년 건물을 새로 지었다.
두 번째 위기는 첫 번째 위기를 극복한 뒤 정확하게 50년 후인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찾아왔다. 당시의 매장은 고베 산노미아역을 지나는 철로 밑 상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철도 선로가 무너져 건물을 덮쳤고, 매장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로 인해 영업을 중단한 것이 8개월 이상.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서는 연약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돈으로 1,500만 엔을 들여 건물을 새로 단장하여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찾아온 위기는 모두가 예상하지 못하게 찾아왔던 역병의 시기였던 '코로나' 시기. 한국과 일본의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고 폐업한 시기였다. 그 시기도 어렵사리 이겨내고 지금까지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사전 리서치를 통해 긴파이 모리이의 역사를 미리 알았으니 이 집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든 아재들을 이런 스토리를 간직한 집을 좋아한다. 위기를 겪고 그것을 이겨내고, 다시 예상하지 못했던 위기가 찾아오면 또다시 그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레 자신의 지난 나날을 투영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기 때문이다. 격정적인 삶이든 평탄한 삶이든 어디 그 인생에 고난과 어려움 한번 없었을까?
긴파이 모리이의 진가는 저녁 시간에 살아난다.
오후 6시가 지나고 모두가 퇴근길에 오를 시간,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뭔가 아쉬운(?)' 이들의 발걸음은 지하철 역 바로 옆, 이 집으로 향한다. 옛날식 미닫이 문을 한 손으로 잡고 "히토리데스(ひとりです)"라며 가게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긴파이 모리이에서의 모험을 시작한다. 이 집은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커플이나 여성 손님들보다 하루의 피곤함을 아직 털어내지 못한, 셔츠 차림의 아저씨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혼자서 또는 둘이서 서류 가방을 다리 밑 짐 놓는 칸에 밀어 넣고 기린 병맥주(반드시 병맥주이어야 한다)를 주문하거나 성격이 급한 이는 바로 니혼슈나 쇼츄를 주문한다.
일본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퇴근 시간 기린 병맥주(빈비루)를 앞에 두고 한 모금 들이킨 뒤 '하아~'라는 감탄사를 내뱉는 사람에게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와 공감의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고생한 '오늘의 나'를 위한, 위로의 맥주 한 잔을 충분히 선물할 자격이 있다는 '모두의 공감'도 함께 얻는다. 일본인들은 모두 공감하는 그런 씬이다. 맥주는 기린 병맥주여만 하고, 한 잔을 들이켠 후 반드시 내면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공기반, 소리반'의 묘한 소리가 반드시 뒤를 이어야 한다. 홀로 즐기는 시간에 타인의 공감과 위로가 무엇이 중요할까만은, 그래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 집을 처음 방문한 날, 이 집의 분위기에 취해 초빼이는 고베에서의 짧은 체류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틀을 연속으로 방문했다.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이 흔치 않은지, 서빙을 담당하시는 직원분이 초빼이를 알아보고 "어제 오신 분이 아니냐"라고 확인까지 해 주신다. 직원분들이 '어제 온 외국인이 오늘도 왔다'며 얼굴 한 번씩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짓고 간다. 이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자신들의 진가를 알아주고 다시 한번 더 찾아주는 사람에게 호의를 보일 수밖에 없다.
밥집이 아닌 이자카야인만큼 술을 끊이지 않게 주문했다. 첫날은 생맥주로 시작해 냉사케와 타루자케를 이어갔고 둘째 날도 병맥주로 시작해 니혼슈 도쿠리 한 병과 얼음을 넣은 쇼츄로 술을 이어갔다. 일본 이자카야에서 빼놓으면 섭섭하다고 할 안주인 오뎅은 기본으로 주문했고, 이 집의 유명한 '기즈시 모리아와세(きずし盛り合わせ)'도 주문했으며, 돼지고기 조림과 포테이토 사라다도 주문했다. 원체 좋아하는 '츠쿠네(つくね)'와 '산마 도로로(トロロ)', '다시마키(계란말이)' 그리고 '도테야키(소힘줄 졸임)'도 함께 곁들였다. 오뎅의 다이콘(大根)도 좋았지만 평소에 잘 먹지 않는 감자(ジャガイモ, 쟈가이모)의 맛은 잊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아저씨가 조금은 혀꼬인 목소리로 "어디서 왔냐?"라고 묻기에 "한국인"이라 했더니 자신은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고 한다. 자신의 가족들도 한국을 너무 좋아해 얼마 전엔 부산으로 가족여행을 갔다 오기도 했단다. 그러면서도 손은 잔을 멈추지 않는다. 점점 그의 혀는 갈 곳을 찾지 못해 꼬여갔지만, 외지에서 온 이방인에게 현지인이 건네는 관심은 언제나 고맙기만 하다. 우리 땅을 벗어나 해외를 찾는다는 것은 물과 공기 그리고 사람들의 인사말마저 모두 낯선 것으로 바뀐다는 의미이다. 익숙했던 것들을 벗어나 내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적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내게 호의를 보이며 관심을 준다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사실 이 집에 대해선 가장 궁금했던 것이 '긴파이(金盃)'라는 상호를 붙이게 된 이유가 궁금했었다. 초빼이가 알기로 '긴파이(金盃)'라는 상호는 술회사(니혼슈 양조장 브랜드)의 명칭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 이리저리 물어보니 이 집의 초대 사장이 처음으로 일했던 직장이 '금배주조(金盃酒造, 당시의 이름은 다나카 상점(本高田商店))였다고 한다. 사환으로 일했던 1대 사장은 자신의 사업을 위해 독립할 때, 자신이 일했던 직장의 이름을 쓰기를 원했고, 그 직장에서는 첫 가게의 간판까지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긴파이 주조의 타루자케(樽酒)는 이 집에서만 마실 수 있다. 타루자케는 축제나 행사에 쓰는 큰 통에 담긴 술로 보통 9리터 정도의 나무통에 담긴 술이라고 한다. 긴파이 모리이에서는 타루자케(樽酒)를 마스(枡) 잔에 따라 준다. 이 술을 마시기 위해 일본 전국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
좋은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이 다시 이어져 이 가게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인연이 만들어 낸 질긴 생명력이 이 집의 옛 간판처럼 이어졌다. 그런 인연이 있었으니 100년의 시간을 충분히 견뎌올 수 있었을 것 같다.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없는 시간에도 긴파이 모리이가 무심히 그 자리를 지키고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 집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긴파이 모리이의 창립 100주년 기념 파티(2018년) 영상이었다. 일본 전국에서 모여든 명사들이 이 집의 100주년을 맞아 직접 찾아와 축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긴파이 모리이는 3대 사장의 뒤를 이을 4대 사장을 귀한 손님들 앞에서 소개하고 인사시키며 새로운 100년을 위한 약속을 했다. 지나온 100주년의 공로는 고객들의 몫으로 돌리고,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책임질 4대째 사장을 고객들에게 인사시키며 역사를 이어간다는 의미까지 부여했으니 조금은 감동적이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올해로 창업 107년이 된 효고현 고베시 주오구에 있는 긴파이 모리이(金盃 森井本店)다.
(참고로 이 매장에 걸린 기린맥주의 옛날 포스터는 복각이나 카피본이 아니라 발매 당시의 원본이라고 한다. 혹자들은 저 포스터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도 있다고 할 정도다.)
*P.S 무려 보름에 걸친 규슈 지역의 취재를 마치고 엊그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떠날 때는 여름도 가을도 아닌 묘한 날씨였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겨울이 멀지 않았음을 느낄 정도로 급하게 계절이 바뀌었네요. 2주를 넘게 글을 쓰지 않았더니 모든 게 엉망입니다. 다시 제 리듬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규슈지역의 5개 도시에서(가고시마, 쿠마모토, 기타큐슈, 나가사키, 후쿠오카) 80여 곳의 식당과 카페를 찾아다녔는데, 규슈가 이렇게 재미있는 곳인지 몰랐습니다.(이번이 첫 규슈지역을 찾은 것이라)
[추가 팁]
1. 매장명 : 긴파이 모리이 본점(金盃 森井本店)
2. 주소 : Piazza2 East, 2 Chome-31-42 Kitanagasadori, Chuo Ward, Kobe, Hyogo
3. 영업시간 : 월~토 17:00~22:00 / 정기휴무 일요일
4. 주차장 : 별도의 주차장은 없다.
5. 참고
- 예산 : 1인당 2,000~3,000엔.
- 연락처 : +81-78-331-5071
6. 이용 시 팁
- 현금, 카드 모두 가능.
- 이 집의 명물인 '기즈시'와 '타루자케(樽酒)'는 꼭 주문해 볼 것. 그리고 오뎅 주문 시 감자는 필수.
우리나라의 감자와 달리 식감과 맛이 엄청나게 뛰어나다. 여성분들이 감자의 진가는 더 잘 알듯.
- 107년(2025년 기준)의 노포 선술집이다. 일본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이젠 모두들 아시겠지만 일본의 이자카야에서는 오토시가 있고 거기에 대한 값을 받는다. 이 집의 오토시는
매일 바뀌는데 한 종류의 안주를 내 준다. 이 오토시의 맛도 범상치 않다.
- 4명 이상의 단체 손님은 2층으로 안내한다.
https://maps.app.goo.gl/TdvHPSp6sSW8qjr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