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바꾸는 밤
회색도시 2의 마지막에서
정은창은 도망치지 않는다.
그는 싸우지 않고,
울부짖지도 않는다.
그저
수술대 위에 누워
자신의 얼굴을 지워달라고 말한다.
얼굴을 바꾼다는 것
얼굴을 바꾼다는 건
새로운 삶을 얻는다는 뜻일까.
아니면
지금까지의 자신을
모두 버리겠다는 고백일까.
정은창에게 그 선택은
도피가 아니라
속죄에 가까웠다.
수술대 위에서 만난 과거
마취가 깊어지며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
그는
가장 피하고 싶었던 얼굴을 본다.
정은서.
달동네에서 함께 살던
그때의 여동생.
“미안해.”
정은창은
그 앞에서 처음으로
아무 변명 없이 말한다.
지켜주겠다고 말하면서
결국 혼자 두고 떠났던 것.
살아남은 자신이
끝내 살아야 했던 것.
그 모든 잘못을
그는 인정한다.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과
정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정은창을
살게 만든다.
용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살아가라는 것처럼.
권현석이 남긴 자리
수술이 끝나고
새로운 얼굴로 깨어난 정은창 앞에는
또 하나의 선택이 남아 있다.
권현석.
경찰이자,
딸을 홀로 키우던 아버지.
정의라는 단어를
끝까지 놓지 않았던 사람.
그는 이미 죽었지만,
그의 빈자리는
너무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어진다는 것
정은창은
권현석의 뜻을 대신하겠다고 결심한다.
거창한 약속이 아니다.
그저
권현석의 딸을
혼자 두지 않겠다는 선택.
지켜주지 못했던 과거 대신,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
복수 이후에 남은 사람
정은창은
영웅도, 악인도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도
끝내 누군가를 선택한 사람이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
회색도시 2의 마지막 문장처럼
이 이야기는 말한다.
모든 복수는 공허하지만,
모든 선택이 공허한 건 아니라고.
얼굴을 바꿔도
과거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 과거를 안고
다른 내일을 고를 수는 있다고.
정은창은
그렇게
끝내 사람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