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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May 09. 2024

근거 있는 미신?

영화 파묘의 약한 스포가 있습니다

  천만을 돌파한 지 이미 한참 지났음에도, 나는 최근에야 영화 파묘를 보았다. 어린이날 연휴에 마땅히 할 게 없어서 볼만한 영화를 찾으려 했는데, 마침 인기 순위에 파묘가 올라와있어서 바로 구매하고 시청해 보았다. 영화자체는 잘 만든 영화고 영화의 내용이나 그에 대한 감상, 그리고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후반부 전개 등, 얘기할 거리가 많기는 했지만, 나는 그보다는 좀 다른 얘기를 해보려 한다.


  영화에서 최민식 배우는 지관인 김상덕이라는 인물을 연기했다. 여기서 지관이랑 흔히들 풍수사라고 얘기하는 사람으로, 풍수지리에 따라 무덤이나 건물의 자리를 봐주는 사람을 뜻한다. 영화에서 김상덕은 꽤나 베테랑 지관으로, 어지간한 기업의 회장도 굽신거릴 정도로 꽤 좋은 실력을 갖췄다. 그리고 영화에서도 당연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 중 한 명으로 나온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풍수지리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겨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었다.


진짜 흙을 드신건 아니고 콩가루라고 합니다.


  풍수지리는 삼국시대즈음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온 토속신앙에 가깝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전부터 있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기록이 남아있는 게 아마 그즈음부터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풍수지리를 그저 미신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학적인 견해로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흔히 풍수 지리라 하면 배산임수가 명당이라는 말을 떠올리는데, 예로부터 물이 앞에 있으면 물을 길어오기도 편하거니와 외적의 침입을 막기에도 용이하고, 뒤에 산이 있으면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고 건축재료이자 땔감인 나무를 구하기 쉬워서 배산임수가 명당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가설이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저런 것들은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 허무맹랑한 미신처럼 보일지라도 가끔은 그 안에 나름의 이유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풍수지리에서 배산임수가 명당이 된 데에는 저런 이유와 더불어 인간의 생존 본능도 한몫했으리라 본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생존을 위해 어떤 현상에서든지 패턴을 찾으려 한다. 패턴을 찾아야 이를 컨트롤할 수 있고, 그래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먼 과거에 인류가 생존하기에 녹록지 않았을 그 무렵에도 당연히 인간들은 삶에 도움이 되는 패턴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배산임수에 위치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 먹고살기에도 나름 나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적들의 침입을 잘 견뎌내었다는 패턴을 발견해 내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이유들은 잊혔지만 배산임수가 명당이라는 것만은 풍수지리라는 토속 신앙 속에 녹아들어 계속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다. 심지어 어디에 살든 생존에 큰 무리가 없어진 현대까지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배산임수


  물론 미신이라는 게 풍수지리의 배산임수처럼 꼭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4층이 죽을 사(死)와 같은 발음이라 불길하다던가, 시험 때 미역국을 먹으면 안 된다던가 하는 미신들처럼 순전히 기분에 따른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긴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 당시의 문화, 사회, 가치 등이 녹아 있어서 배산임수처럼 나름의 이유가 있는 미신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종교에서는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취급하고 먹지 말 것을 얘기하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 그 당시 시대상과 지리적인 위치, 그리고 위생을 생각해 보자면 돼지를 먹었을 경우 기생충에 감염된다던가 위생 관리가 되지 않아 복통을 겪게 된다던가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돼지는 잡식성으로, 돼지를 대량으로 기르게 되면 생태계를 파괴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에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해야 했지만, 그랬다가는 사람들이 반발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종교의 힘을 빌어 돼지고기는 부정한 동물이니 먹지 말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반발하지 않도록 한 것이라는 가설도 있다.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또 다른 예로는 문지방을 밟지 말라는 미신도 있다. 단편적으로 보면 얼토당토않은 미신이고 현대에서는 문지방이 사라져 가는 추세라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옛날 집들은 지금처럼 건축이 잘 발달한 상태에서 지어진 집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지방과 문의 틈새가 그리 썩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에도 그 틈으로 인해 추위를 막는 게 녹록지 않았는데, 만약 자꾸 문지방에 올라서면 문지방이 닳고, 그 때문에 그 틈이 더 커질 것이기에 생긴 미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집안에서 우산을 펴면 안 된다는 미신도 우산을 펼 때 물이 사방에 튀어 기물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얘기가 있고, 임신 중에 장례식장에 가면 안 된다는 것은 장례식장의 시체와 거기 모인 여러 지역의 사람들에게서 병이 옮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생겼다는 얘기도 있다.

  이처럼 예로부터 내려온 미신들 중에는 생각보다 삶의 지혜가 녹아있는 것들이 은근히 있다. 지금은 그런 미신들을 지켜야 하는 이유로 복이 달아난다던가 원래 그래왔었다는 식으로 말하긴 하지만 말이다.

  

근거 없는게 더 많아 보이긴 하네…?


  하지만 반대로 현대에는 그런 삶의 지혜가 더 이상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아까 말한 문지방 위에 올라서지 말라는 미신이 대표적인 예시가 되겠다. 그렇기에 현대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서는 미신을 마냥 받아들이기보다는 이에 대해 고찰하여 유지할 것은 유지하고 바꿀 것은 바꾸고 버릴 것은 버리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미신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긴 하다. 살아가다 보면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가끔 미신처럼 어떤 일에 대해 이유가 설명되지 않은 경우를 자주 만나볼 수 있다. 왜 사제 군화를 신으면 안 되는지, 왜 부고 게시는 한자로 써야 하는지 물어보면 다들 "원래 그래."라고들 대답하곤 한다. 이는 미신이 아니다 뿐이지 사실상 미신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제군화는 가벼운 대신 약하기 때문에 발을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고, 부고 게시는 한자로 써야 예의바르다는 예전의 인식 때문에 그렇게 이어져 내려온 것인데 점점 그 이유에 대한 고찰을 하지 않고 전달하다 보니 미신과 같은 형상이 된 셈이다.


  이처럼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비판적 사고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이는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받아들이기 전에 '왜' 그런 것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도 생각을 해보아야 이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얘기이다. 그리고 그런 사고를 가졌을 때 비로소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 원래, 그냥 그런 것은 없다.



연느님 왈, 그냥 하는건 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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