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돌리기 3,4,5

by 윤경

3

소음은 새벽을 천천히 감싼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실은 기차가 움직이고, 차가운 공기와 매연을 탄 채로 세연의 귀로 뛰어 들어간다. 세연은 이어폰으로 귀의 길을 통제한다. 이전에 틀었던 플레이리스트를 그대로 돌리고, 보도블록 사이를 짓이기며 빠르게 도시로 뛰어든다. 횡단보도 앞에 서면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교복을 입은 학생, 정장을 입은 회사원,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 세연은 횡단보도 위 흰건반만으로 눈을 피한다. 신호가 울리면 몸이 알아서 달리기 시작한다.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나 시멘트 바닥을 밟으면 곡이 바뀌고 교문에 도착한다.

학교에 온 세연은 꿈에서 넘어진 곳, 푸른 인조 잔디를 향해 간다. 집에서부터 멈추지 않고 달려 입 안에서 진한 쇠맛이 난다. 심장은 랜덤으로 재생된 최신곡보다 빠르게 뛰어 귓가를 멍하게 한다. 운동장에 다다랐을 때, 이어폰으로 막아둔 길 사이로 갑자기 셔터 소리 하나가 비집고 들어간다. 불쾌한 소리의 침입에 이어폰을 뽑으면, 멀리서 선수팀이 구령에 맞춰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하나, 하나, 하나. 땅이 흔들리는 기분에 세연은 양 무릎을 부여잡고 허리를 숙인다. 숨을 들이마시는 방법을 적어두지 않아서 까먹었다. 천천히 기억을 떠올려보려다 주저앉는다. 선수팀의 구호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하나, 하나, 하나.



4

하나, 공, 육. 맞는데. 이 집이 맞다. 우편함에 담긴 봉투 표면엔 수신인 한민혜 석자가 박혀있다. 민혜는 감싸 안았던 박스를 집 앞에 내려놓는다. 저릿한 팔을 한 번 돌리고 푸른 대문을 두드린다. 한민혜 여사님, 수건 두고 갑니다. 대답이 없는 문 틈 사이로 바라본 집은 작은 마당이 있다. 마당엔 보라색 꽃이 잡초들 사이에 피어 있었다. 저 꽃 이름이 뭐더라.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썩은 내가 올라온다. 민혜는 인상을 찌푸리고 백팩에서 유성매직을 꺼내 수건 박스에 메모를 남긴다. '생신 축하 드립니다. 당일까지도 연락이 안 되어 메모 남깁니다. 배송비는 따로 송금 부탁드립니다. 국민은행 106-...' 글씨 위로 흰 방울이 떨어진다. 고개를 들면 문고리에 걸려있던 우유 주머니에서 상한 우유가 터져 조금씩 흐르고 있다. 썩은 냄새의 출처를 알게 된 민혜는 신경질을 내며 자리를 떠난다. 흰 우유는 박스를 타고 흘러 시멘트 바닥에 길을 만든다. 박스 위 민혜가 민혜에게 쓴 글이 번지기 시작한다.



5

체육관 외관 계단을 밟을 때면 시연의 온몸에 불안이 번진다. 또 다리가 풀릴 거 같아 벽에 이마를 대고 눈을 눌러 감는다. 다시 다리에 힘을 주고 걷는 방법을 떠올리면, 세연의 머리 위로 흰 수건 하나가 떨어진다. 도운구 육상대회 우승, 시연의 학교 로고가 푸른색 실로 수건에 길을 놓았다.


세연아!


계단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투명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개를 들면 난간 틈 사이로 수희의 흰 얼굴이 보인다. 반가움이 얼굴에 쓰여있다. 수희를 보러 가자, 걷자. 계단을 한 칸씩 발로 눌러본다. [행복수건]이라 쓰인 박스를 겹쳐 들고 있는 수희의 몫을 나눠본다. 행복은 부피보다 가벼웠다. 더 있지? 다 돌리고 나 박스 좀 쓸게. 분명 가벼워졌을 수희는 꼭 더 무거워진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야 괜찮아. 혼자 돌려도 돼.


수희의 목소리가 탁해진다. 계단을 내려간다. 행복이 박스 안에서 흔들린다. 수희를 다시 계단 틈으로 올려다본다. 흰얼굴이 보인다.


나도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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