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경제를 배우게 된 청년의 이야기 - Chapter 8
가전 설치기사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닐 때쯤 중학교 때부터 죽마고우로 지내온 친구가 작은 가구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같이 일을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친구는 오래된 단층 건물 지하에서 혼자서 때로는 직원 하나를 두고 그동안 가구공장을 하고 있었고 친구 형편을 뻔히 아는 상황이라 같이 일을 하자는 제안에 선뜻 수락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해서 오랜만에 회포나 풀 겸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얼마 전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 와서 알아보기도 힘든 그림을 그려가며 이런 가구를 만들어 줄 수 있겠냐고 문의를 했다고 합니다. 소규모 공장을 운영해본 사람을 알겠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오던 제품은 뚝딱뚝딱 금방 만들어서 출하를 할 수 있지만 생전 처음 보는 가구를 만들려고 하면 부품도 따로 알아봐야 하고 귀찮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공정을 모르는 소비자가 상상으로 만들고 싶은 뭔가를 시도하면 그걸 만사 제쳐두고 만들어줄 공장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그 노력에 대한 가격을 계산해서 지불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만들어 주겠다 해도 가격적인 부분에서 협의가 되지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역시나 친구는 거절을 했는데 문의를 했던 그 사람이 얼마나 붙임성이 좋은지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을 더 찾아와서 간식도 사 오고 저녁에 술도 한잔하자고 하더니 동갑이라는 걸 알고는 냉큼 친구 먹자고 들러붙더랍니다. 그러더니 본인이 만들고 싶은 가구를 왜 안 만들어 주는지 이유를 듣고는 본인이 부속에 대해 알아봐야 하는 거래처와 판매까지 해볼 테니 공동으로 개발하고 팔리면 수익을 반반으로 나누자고 했다고 합니다. 혼자서 쓸쓸히 공장을 운영하던 상황에 매일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 재밌긴 한데 살면서 이런 캐릭터를 본 적이 없어서 무슨 꿍꿍이인가 궁금하더랍니다. 그래서 저보고 같이 만나서 얘기를 해보자는 겁니다. 그렇게 3명이 술자리를 가져보니 나쁜 마음으로 접근한 건 아닌 거 같았지만 맨날 당하고만 사는 내가 무슨 사람 보는 눈이 있겠나 싶어 조심스러웠습니다. 확실한 팩트를 하나하나 정리해 보니 그 사람은 아이디어는 넘치는데 이 쪽 일을 해보지 않아서 어디서부터 일을 풀어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고 그런 와중에 오랫동안 가구일을 해온 사람이 동갑내기에 다른 공장에서 하듯이 야박하게 문전박대를 하지 않으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사업을 제안한 거라는 느낌입니다. 아이템을 보여달라고 하니 망설입니다. 사람을 많이 겪어봤는지 아이템만 뺏기게 될까 봐 자세하게 설명하기 싫은 눈치였습니다.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내가 이 공장에서 들어와 일하는 문제는 친구와 둘이서 의 얘기고 아이템을 들고 온 사람의 사업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선택은 공장을 소유한 친구의 몫이기에 그저 얘기를 들어본 느낌만 전달을 했고 저는 직원으로 그 사람은 동업자로 조금 기묘한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일단 일을 같이 해보는 걸로 결론이 나자 아이템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의자였는데 네일샵에서 쓰는 의자라고 합니다. 패디큐어 의자 세트라고 하는데 네일샵을 가본 적이 없으니 그저 생소하기만 합니다. 그 당시 외국에서는 이미 고가의 패디큐어 의자들이 있었지만 네일샵을 창업하는 사람들에겐 엄청 부담스러운 가격이었고 그 퀄리티 또한 가구라기보다 지금의 안마의자 같은 형태였기 때문에 넘볼 수 있는 아이템이 아녔습니다. 대부분이 인테리어를 하면서 목수들이 현장에서 소파처럼 만드는 게 국내 시장에서는 대세였는데 문제가 의자에 이상이 생겨도 쉽게 교체가 안될뿐더러 붙박이로 설치를 하니 위치를 옮길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조악한 형태로 시작했지만 점점 개선되가며 새로운 버전과 3~4가지 형태로 세부 선택사항을 적용하는 등 발전이 있었습니다. 우선 매출로 결과가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기에 저는 친구를 도와 그동안 주력으로 해오던 싱크대, 신발장을 만들고 현장에 설치하는 걸 배우고 있었습니다.
영업을 맡은 친구가 네일샵을 하는 지인들이 있어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의미 있는 결과들을 만들어 내면서 제품의 개선과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샘솟고 있었습니다. 점점 일이 많아지고 경력이 짧아서 제작을 전부 맡아서 하기 어려운 저를 대신해 공장을 책임질 공장장을 영입하고 그렇게 나와 공장장님은 공장에서 제작을 친구 둘은 제작을 제외한 그 외 일들을 맡게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집단이 그렇듯 일이 전혀 없을 때는 의미 있는 결과를 위해 모두가 한 방향을 보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일이 결과를 내기 시작하면 이익의 배분이 시작되고 그 배 분속에서 각자의 불만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참 재밌게도 공장에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는 두 사람과 밖에서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 두 사람의 환경이 딱 생각의 차이를 만들기 좋은 구조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밖에서 항상 붙어 다니는 두 사람도 이름은 동업이지만 한 사람은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한 사람은 아이디어만 가져온 겁니다. 두 사람의 셈이 서로 다른 공식으로 계산되기 시작합니다. 공장에 있는 두 사람도 입장이 다릅니다. 한 사람은 공장장이라는 직책으로 고용된 사람이고 저는 이렇다 할 역할 없이 들어와서 안에서 역할을 찾는 입장입니다. 공장장 입장에서는 사장의 친구가 자기 밑에서 일을 배우니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닙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저에게 이런 말도 합니다. “내가 가진 기술을 자네가 다 배우고 나면 나는 쫓겨날게 불 보듯 뻔한 일 아닌가 솔직한 심정으로 사소한 거 하나도 알려주기 싫다네” 오랜만에 쓴웃음만 나오는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곳이든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사람이 셋만 모여도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는 사람이 생기고 편 가르기를 하며 각자도생과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반자가 되는 일이 허다하지만 그 알량한 가구 팔아서 거액을 버는 것도 아닌데 그에 비해 너무 빨리 진흙탕이 돼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회사에 출근하는 게 껄끄럽고 불편합니다. 딴에는 다들 이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었는지 일이 끝나고 매일 술자리를 만들어서 대화로 풀자고 하는데 술자리에서 만들어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내일 새로운 해가 떠오르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회사 근처 헬스장을 등록해서 일이 끝나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운동을 핑계 삼아 칼퇴근을 시전 했습니다. 나의 행동은 편먹기가 둘둘이 아닌 세 사람과 한 명으로 재편성되는 계기를 가져왔고 스스로 공동의 적이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람 간의 불신과 이런 상황 들을 정말 진저리 나도록 겪어봤기에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나는 친구에게 우리는 지금 실질적인 현실과 지금 머릿속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고 얘기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아주 큰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엄청 성공한 거처럼 생각들을 하는데 진실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고 장부만 검토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니 이제라도 망상이 아니라 현실을 똑바로 보고 둘이서 예전에 하던 싱크대 공장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했지만 새로운 일이 주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친구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는 정말 좋게 얘기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그 내용은 내가 공장에 있는 네 사람 중 가장 능력이 없는 사람임을 얘기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작 일을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았던 상황에 나에게 뭘 바라는 건지 친구의 논리가 어이가 없고 상처였지만 정치판이 돼버린 이 작은 공장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었고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 화가 났습니다.
그날 이후로 예전에 재미 삼아해 봤던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나도 영업을 해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나 그저 최선을 다해 인터넷으로 공부하며 꼭 보여주고 말겠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하루하루 블로그를 만들어 갔습니다. 한 달 정도가 지나고 처음으로 싱크대 관련 문의가 왔습니다. 냉장고가 있던 자리에 TL장을 만들 수 있냐는 문의였습니다. 큰 건은 아니지만 정말이지 날아갈 것처럼 기뻤고 배송과 현장 조립 등 혼자서 해결할 수 없어 공장장님께 의논을 했습니다. 얘기를 듣고 나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지 놀라는 눈치였지만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시공까지 마무리가 되고 수금까지 마무리가 되면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들떠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나를 도운 게 두 명의 사장에게 알려지면 본인에게 불이익이 올 거라 생각을 했는지 공장장이 미리 말을 했던 것입니다.
나도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했던 행동은 분란을 조장하는 배신행위로 바뀌었고 이를 해명하려 노력했지만 무슨 일인지 친구는 전화조차도 받지 않았습니다. 생각처럼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서 공장장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자네가 영업을 할 수 있으면 지금 가장 불안한 사람이 누구겠나? 아이디어와 영업을 무기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아이디어는 이미 오픈되었고 남은 건 영업인데 자네 같으면 지금 어떤 기분일 거 같은가” 그 말을 듣고 도대체 이 사람들의 세상은 어떻게 이렇게나 작은지 말문이 막혔습니다. 회사에 영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생기는 건데 자기 밥그릇을 뺏긴다는 거에 저렇게나 몰입해 있는 게 정말이지 내가 이런 사람들하고 그동안 같이 일을 했다는 게 치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전에 공장장이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누가 이 판을 이렇게 저급하게 만들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직급을 떠나 한참 동생뻘인 우리들을 뒤에서 쥐락펴락 하려고 얄팍한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이 눈앞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가릴 거 없어 대놓고 얘기했습니다. “어쩌다 이 작은 공장이 정치판이 됐는지 이상했는데 공장장님이었군요.”라고 말하자 이 뻔뻔한 인생 선배는 그게 세상 사는 지혜라며 자랑스러워합니다.
공장장이 자기가 아는 후배가 새로 가구공장을 개업했는데 여기서 여러 사람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 거기 가서 영업의 꿈을 펼쳐보라고 얘기를 합니다. 내가 가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불편한 사람을 쳐내는 상황에 새로운 자리를 소개합니다. 싫은 건 싫은 거고 적으로 만들지는 않겠다 이런 논리입니다. 뭔가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입니다. 오히려 저런 처세가 어른인 건가 싶기도 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내 친구였던 놈은 어떻게 꼬셨는지 제 전화도 안 받고 만나지도 못하게 차단당했고 몇 번 시도해 보다가 아무리 중간에서 이간질을 기가 막히게 했어도 그렇게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온 저놈은 뭔 생각인지 야속하고 이런 산골 웅덩이 같은 진흙탕 미련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공장장이 소개해준 그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영업이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