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손해가 누군가의 이익이 되는 세상

몸으로 경제를 배우게 된 청년의 이야기 - Chapter 7

by UC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현실을 부정하는 시간이 하루 이틀 흘러갈수록 쯤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부정적인 늪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성격상 뉴스에서 OO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라는 뉴스를 보면 “아니 자살하는 게 더 무서울 거 같은데 저 용기로 더 열심히 살지 자살을 왜 해 자살을”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이제야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습니다. 내 인생의 미래가 장사, 사업에 있다고 생각하고 지낸 20대가 일장춘몽으로 끝이 나자 이제 뭘 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혔습니다. 어쩌다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세상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고 그동안 난 뭘 하며 살았는가 나 자신이 정말 한없이 작게만 느껴집니다.


심해 깊은 곳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존감이 회복되기도 전에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지옥과 같았습니다. 개인회생을 받았지만 몇 년 동안 갚아야 하는 빚이 남아있었고 30대가 돼서야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려니 요즘 세상에서 제일 흔하다는 대학 졸업장도 없이 직장을 구하기는 세상 무엇보다 어려웠습니다. 여기저기 학력이 필요하지 않은 직장을 며칠씩 전전하며 그래도 내가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언제부터 내게 관심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친구들을 비롯해 부모님까지 왜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지 잔소리를 합니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내가 돈을 빌려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마치 동네 북이 된 마냥 지나는 사람마다 한 번씩 두들기고 갑니다.


직장을 구하는 마음은 누구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이라는 자리에서는 생각하니 두 가지 기준이 생기는데 힘들어도 많은 돈을 주는 일이거나 많은 급여를 받는 일은 아니지만 오래 할 수 있는 일 둘 중에 하나는 만족해야 그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사치라고 손가락질한다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평판을 신경 쓰는 게 그때는 더 사치 같았습니다. 내 인생 오로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세상이고 정신이 나가버릴 거 같아도 나를 지탱해주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정신줄을 부여잡았습니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 S전자 가전 설치 기사 모집 –이라는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습니다. 이름만 봐서는 그럴듯합니다. 그 대기업 간판을 보고 가서 일을 시작하니 2.5톤 화물차로 냉장고, 세탁기 등을 설치하러 다니는 정말 말 그대로 설치기사입니다. 기대도 없었지만 당연히 대기업 직원은 아닙니다. S전자에서 배송, 설치 등을 하청을 주고 하청을 받은 회사는 기사를 모집합니다. 기사를 하러 온 사람은 지입의 형태로 화물차를 구매하여 사업자의 신분으로 하청업체와 계약을 합니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의 내용상 이 개인사업자인 기사는 개인적으로 보조를 구합니다. 네 저는 이 보조로 취업이 된 겁니다. 참고로 보조기사를 채용한 기사는 주기 사라고 불립니다. 둘이 하루 종일 화물차를 타고 다니면서 주어진 일을 하고 다닙니다.


일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설명을 들었을 때는 하는 일이 택배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많이 다릅니다. 첫 번째로 아파트가 아닌 빌라촌으로 담당구역을 배정받으면 100kg에 근접하는 냉장고, 세탁기를 둘이서 들고 계단을 오르는 일이 허다합니다. 처음 상황을 맞닥드렸을 때는 이걸 정말 들고 계단을 오를 수 있는 건가 의심했습니다. 두 번째로 가전제품을 설치하고 나서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매뉴얼을 제품마다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이 회사 설치기사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S전자에서 주는 자격증이 있는데 더 높은 등급의 자격을 취득해야 더 쉽고 설치 단가가 높은 제품을 배정받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설치를 하고 나면 고객에게 만족도 조사를 하는데 그 결과에 따라 불이익을 받을 수도 약간의 보너스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보조기사로 6개월 이상을 근속하고 나면 지입계약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일이 힘들기 때문에 보조기사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 기사들은 보조기사에게 이 일이 얼마나 매리트가 있는지 최선을 다해 설명합니다. 사실 설명보다 저처럼 주 기사들 급여통장을 보고 이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달 7백만 원 이상 정산받는 걸 보면 다들 눈이 돌아갑니다. 물론 그 금액 안에 지불해야 하는 여러 항목들이 숨어있는 진실을 알게 되면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알지만 열심히 하는 만큼 보상이 있는 일이고 자격조건에 비해 상당히 좋은 보상을 가진 직업이라 생각했습니다. 보조기사 기간을 제외하고도 약 2년 정도 주 기사 생활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나보다도 더 바닥을 찍고 온 사람을 수없이 봤고 아침에 옹기종기 야외 흡연장 자판기 앞에 모여 커피타임을 가질 때 우스개 소리로 누가 빚이 얼마라고 얘기하면 순식간에 쇼미더머니 씹어먹는 빚 배틀이 시작됩니다. 여기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진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서로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위안을 얻고 자존감을 회복해 갑니다. 아침에 5시에 일어나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서 차에서 편의점 군것질로 끼니를 때우고 고객을 응대하는 감정노동에 조금이라도 더 벌겠다고 남들이 버리는 일까지 주워서 하다 보면 밤 10시가 넘어야 집에 겨우 들어올 수 있습니다. 개인사업자라는 명목 하에 쉬는 날도 없고 보조기사가 힘들다고 그만둘까 봐 급여도 다른 주 기사들보다 더 많이 줘야 했습니다. 5만 원 더 벌려고 했다가 건물 밖으로 길게 설치된 간판이 적재함에 걸려 150만 원을 까먹는 날도 있었습니다. 배송, 설치 중에 실수로 제품을 파손하면 몇백만 원이 되는 제품을 개인이 보상해야 했는데 보조기사의 실수로 백만 원에 가까운 TV를 깨 먹을 때 눈물을 삼키며 망가진 TV를 12개월 할부로 구매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단점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일만 하며 살아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이 일은 설치하는 제품에 따라 단가가 모두 다릅니다. 설치가 따로 필요 없는 일반적인 진공청소기 같은 제품은 단순 배송이기 때문에 배송단가가 몇 천 원입니다. 이런 일들은 소위 기름값도 안 나오는 일이라서 배정받은 기사들이 대부분 보류를 찍고 내일로 넘깁니다. 그럼 다른 기사에게 그 건수가 배정됩니다. 그럼 또 보류를 찍고 내일로 넘기고 그러다 배송이 너무 안 온다고 클레임이 왔다는 표시가 함께 찍혀서 배정이 내려오면 그때 받은 기사는 더 이상 보류를 하지 못하고 배송을 하게 됩니다. 대리점, 백화점, 온라인에서 구매한 제품이 S전자 기사가 배송한다고 되어있는데 배송이 3일 이상 지연되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이 이런 이유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냉장고는 몇만 원 세탁기는 몇만 원 하물며 같은 냉장고 안에서도 모두 배송단가가 다릅니다. 더 높은 자격을 취득하고 고객 만족도 관리가 잘되면 배송단가가 아주 높은 프리미엄 제품을 배정받습니다. 일은 더 적은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같은 돈을 벌어도 좀 더 적은 시간 일 해도 됩니다. 나도 열심히 하면 그런 제품들을 배정받을 수 있다고 믿고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더 높은 자격을 취득하고 고객만족도를 높게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얼마나 굽신거렸는지 그 비굴한 표정이 일부러 하려고 하지 않아도 내 얼굴에 굳어져 가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내가 배정받는 제품과 내가 담당하는 지역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격과 노력에 의해서 배정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아직도 나는 순진했다고 아니 멍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겪어보고도 아직도 멍청하게 노력으로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겁니다.


나보다 몇 년이나 먼저 이 일을 시작한 선배들이 왜 더 높은 자격을 취득하려고 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왜 보조기사에게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일을 골라가며 하려고 하는지 정말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는 대부분이 취업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나이 많고 스펙 없는 사람들이라서 더 인간적이고 서로를 배려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여기는 저처럼 순진하고 멍청한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른 사람들은 더 편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더 돈이 되는 일을 골라서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안 하면 다른 누군가 해야 하니까 그냥 내가 하자는 사람을 앞에서는 칭찬하고 뒤에 가서 조롱하는...... 나만 아니면 되는 그런 곳입니다. 마음을 터놓는 몇 안 되는 지인에게 술자리 가십거리로 얘기하니 “뭐 세상은 원래 그런 곳 아니냐? 그 조직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만든 문화라서 같은 일이라도 모두 다른 문화일 수 있지만 어느 직군에 어느 직장을 가도 대부분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지”라고 합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일도 있고 따뜻한 일도 있고 별별 일들이 다 있는 곳이라고 어쩌면 언제나 멍청하게 조롱당하는 쪽에 있는 제자신이 싫어서 다른 사람들을 욕하고 세상을 탓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배송 중에 파손된 제품은 배송기사가 보상해야 하는 규정을 밖에서 바라볼 때는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근데 배송 중에 파손된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 하는 주체가 배송기사이고 그게 내가 되는 경우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전자기기 특성상 모든 제품은 박스 포장이 돼있습니다. 포장을 뜯고 설치를 완료했는데 제품이 정상작동을 하지 않으면 그때부터가 문제입니다. 이 제품이 애초에 불량으로 출고가 됐는지 배송 중에 문제가 생긴 건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나마 물류센터에서 출고가 된 새 제품은 보험으로 해결이 가능합니다. 정말 어이가 없는 건 백화점, 대리점에서 진열되어있던 진열상품을 배송해야 할 때입니다. 진열되어 있던 상품이기에 해당 대리점에 가서 그 제품을 재포장해서 배송을 해야 합니다. 대리점에 갔더니 배송을 해야 할 냉장고가 포장이 되어있습니다. “기사님들 시간 없는 거 아니까 저희가 포장해놨어요~” 말 한마디가 그렇게 따뜻했고 고마웠습니다. 제품을 싣고 구매한 분의 집으로 출발합니다. 제품을 설치하고 나니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대리점에 전화했더니 “여기서 작동 확인 전부 다 한 거예요 고장일 리가 없습니다.”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소비자는 반품하겠다고 길길이 화를 냅니다. 어쩔 수 없이 제품을 다시 싣고 대리점으로 왔습니다. 대리점에서 문제가 없는 제품을 보냈으니 배송 중 파손으로 본사에 보고하고 대리점에서는 받아줄 수 없다고 합니다. 진열상품은 보험처리도 되지 않아 100% 사비로 보상을 해야 합니다. 며칠 동안 일도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3백만 원이 넘는 그 냉장고는 고스란히 내가 떠안게 됐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이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었고 난 재수 없게 그 판에 호구로 걸린 놈이란 걸 알았습니다.


목표에 노력이 아닌 처세로 다가가야 하는 걸 알아버리고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부당한 손해를 떠 넘겨받는 일까지 몸소 경험하고 나니 2년을 유지해온 열정이 한순간에 얼음장처럼 식어버림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일하기가 싫었고 그렇게 처음으로 해를 넘겨 일해 봤던 직장을 떠났습니다. 주변에서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혼자서만 힘들어하고 떠나면 그게 부적응자다.” 내가 세상을 사는 방법이 잘못돼있는 건가 고민했습니다.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서 일을 알아보러 다녔고 그동안 2.5톤 화물차를 운전했기에 구직사이트에 있는 화물 배송 지입차도 알아봤습니다. 운행거리가 10만이 넘은 똥차를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인수해야 한다고 보여줄 때는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누군가에게 손해를 넘겨 이익을 보는 일에 익숙해져 있고 너무 뻔뻔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을 속이는 사람보다 남에게 속는 사람을 호구, 멍청이, 부적응자라고 조롱하는 세상에서 잘못된 건 나 자신이었고 세상은 상식적인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 돈을 벌게 놔두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세상은 알아갈수록 더 비정상적이고...... 아니 어쩌면 세상이 정상이고 비정상적인 사람은 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남들을 속여가며 이길 수 없는 부당함에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었습니다. 어릴 때 주입식으로 체득하게 된 가치관과 도덕은 현실을 살아감에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 괴리감에 맨 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 어른의 세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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