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냐 Mar 07. 2024

눈물의 무게

봄의 다짐

전동차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운다, 짧은 통화를 끝내고. 나프탈렌냄새에 섞여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계절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 오래 입지 않은 옷을 장롱에서 꺼내 입고 아침 일찍 어디로 가는 길일까.

손수건도 없이 콧방울애서 뜨거운 것이 떨어진다. 휴지 한 장 건네지 못하고 먼저 전동차에서 내렸다.


어둑한 거실 소파에 앉아 우는 엄마를 본 적이 있다. 여덟 살쯤 되었으려나. 희미하게 들어오는 달빛에 엄마의 옆얼굴이 선명했다. 콧방울에서 반짝하고 후드득 떨어지던 눈물. 소리도 내지 못하고 끅끅 숨을 참아가며 엄마는 울고 있었다. 앞에 선 나를 올려보지도 못하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울었다.

슬그머니 내 방 이불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들어가 괜히 울었던 기억. 이후로도 엄마의 숨죽인 눈물을 가만히 보던 날들이 많았다.


엄마는 지금도 어렵고 슬펐던 기억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어린 날 내가 본 것들을 이어 붙여 겨우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우리 할머니가 사납고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 드센 시누이가 넷에 툭하면 사고 치고 우리 집으로 밀고 들어오는 서방님이 둘이었는 것.

 

세세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도 엄마가 얼마나 막막하고 억울한 일이 많았을지 어린 마음에도 알 것 같았다. 외할머니도 지금의 우리 엄마와 비슷했으니 혹시라도 속상해하는 엄마말을 들어주었을 것 같지 않다. 우리 엄마처럼 참으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작은 아빠가 사촌동생들을 맡겨놓고 사라졌었고 중학교 때는 학교에 다녀오니 엄마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로 뺨이 부풀어있었다. 그날도 엄마는 한밤중 혼자 거실에 나와 울었을 것이다. 왜들 그랬을까. 엄마는 또 왜 그리 참고만 있었을까. 하지만 저러다가 엄마가 사라지지는 않을까란 걱정은 든 적이 없다. 엄마는 우리를 두고 사라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었겠다. 숨어 들 곳이 엄마에겐 없었다. 엄마는 눈물 많은 친정엄마에게 갈 수도 없고 언니도 친구도 또 혼자 먹고 살 용기도 없었다.


눈물에 육체가 있다면 나를 올려보지도 못하고 흘리던 엄마의 눈물은 어땠을까. 살갗이 쓰라릴 만큼 뾰족한 슬픔을 똘똘 뭉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엄마는 고개조차 들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지하철에서 숨을 참아가며 흐느끼던 아주머니의 눈물도 그랬을 것 같다. 눈물은 호소할 그 누구도 없는 처절한 외로움의 무게였을 것이다.


아주머니를 뒤에 두고 먼저 전동차에서 내렸다. 전동차가 역을 다 빠져나가도록 서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을 나는 다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외로운 눈물의 몸을 덮어 주어야지, 편이 되어 주어야지, 눈물을 맞들어 주어야지.


그러고 보니 곧 4월이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416

작가의 이전글 다음에, 다음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