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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lon easy Jul 14. 2021

아프리카의 속살, 케리오 밸리

Chesongoch_Kenya_Africa_2005

진자 수녀원에 계신 수녀님들과 작별을 하고 케냐에서 오신 수녀님 세 분과 우간다를 떠난다.

장군 같던 이소피아 수녀님이 헤어질 때 흘리신 눈물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저미게 한 기억이 선명하다.

2013년 서울 수녀원에서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고 그때 좀 더 마음을 표현할 걸 하는 후회를 했다.

평생 여성 노동운동에 투신하시고 말년에 아프리카 선교를 하시다가 지병인 심장병으로 투병 중 선종하셨다.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신 수녀님, 감사합니다.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합니다."

故 이영숙 소피아 수녀님


우간다 진자에서 국경을 넘어 케냐의 도시 엘도렛까지 5시간 동안 버스로 이동했다.

다시 그곳에서 렌트한 지프를 타고 체송고치라는 오지로 가는 일정이다.

(이건 얼마나 걸릴지 일단 가봐야 안단다.)

우간다 진자 - 케냐 엘도렛 시외(국제) 버스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으나 파이고 손상된 곳이 많아서 버스는 똑바로 달리지 못한다.

중간에 파인 홀들을 피하는 곡예 운전과 울퉁불퉁한 도로 사정 때문에 손잡이를 힘껏 잡고 앞쪽 창 밖에 부릅뜬 시선을 고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들은 이 와중에도 잘 잔다...

무척 피곤했지만 어차피 잠 못 들 거, 창 밖으로 스쳐지나는 풍경에 집중하기로 했다.

엘도렛에 도착해서 싸간 도시락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지프를 기다렸다.

촬영감독님과 한 컷. 아프리카에 도착한 지 4일째... 긴 이동에 지치고 잘 못 씻어서... 이렇다.
엘도렛에서 현지인 수녀님 한 분이 합류해서 기사까지 총 7명이 이 작은 차에 타고 이동했다.

지프를 타고 6시간을 달려 체송고치로 향했다.

이 여정에 비하면 진자에서 탄 버스는 리무진 수준.

작은 지프에 7명이 끼어 탄 데다가 도로에 자갈이 박힌 비포장 도로여서 허리, 팔, 몸통이 따로 분리된 채 흔들리는 데, 젊은 편인 난 신음소리를 입 안에 물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수녀님들은 이 와중에 묵주기도까지...

기사 말에 의하면 이 길 이름이 'electronic road'란다.

전기 감전된 듯 몸을 떨게 만드는 길이어서 그렇다고... 하하...하


그렇게 한동안을 달려 광활하게 펼쳐진 분지인 케리오밸리(Kerio Valley) 안 마라켓(Marakwet) 부족이 사는 체송고치(Chesongoch)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으로 향하며 중간중간에 본 풍경은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태초의 자연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었고 우리가 탄 지프가 유일한 문명의 이기로 느껴질 정도였다.

밤늦게 도착해서 올려본 하늘도 별 반, 검은색  반...

그 신비함에 좀 더 머물고 싶었으나 모두 너무 지쳐서 바로 숙소로 향했다.

이때는 왜 이리 프레임 안에 들어갔는지... (세상에! 이제 보니 이들 조상들을 팔아먹은 양키 옷을 입고 ㅠ) 체송고치 마을 전경이다. 중간의 원형 돔은 성당 건물
이곳 사람들의 집(Hut)들이 언덕 위에 버섯처럼 지어져 있다. 눈이 워낙 좋아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저 집에서 다 보고 있다고 한다. ㅎㅎㅎ

이곳 마라켓 부족은 계곡 반대 편에 사는 보콧족과 반목하는 사이다.

끊임없는 전쟁에 많은 사람이 죽었고 복수에 복수가 악순환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집을 산 비탈에 지은 이유도 다른 부족의 공격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분지 중간의 성당은 현지인 신부님이 상주하며 두 부족의 싸움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로 총칼을 겨누지 않으면 순박하고 따듯한 이들... 언제나 평화가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아침마다 반겨주던 녀석

시체처럼 자고 난 후 맞이한 이곳에서의 첫날 아침, 환영 미사와 환영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를 환영하는 환한 웃음에 감동받으며 시작된... 정성스러운 환영식이 장장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동네마다 장기자랑을 하고 우리를 불러내어 이것저것 시키고, 부족장으로 보이는 분들과 원로들이 한 말씀씩 돌아가며 하시고...

모두 쳐다보고 있어서 미소를 거둘 수도 없었고 계속된 행사에 자리를 벗어날 수도 없었다.

긴 시간의 환영식이 끝나고...

마비된 얼굴 근육과 뭉친 어깨, 입혀주었던 가죽 옷 때문에 몸에 밴 염소 냄새에 실신할 지경이었다.

아직 오전인데...ㅎㅎ

성당 제의방으로 끌고 가서 날 이렇게 예쁘게(ㅋ) 만들어 주고...

환영식 후 점심식사 초대를 받아 수녀원으로 갔다.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음식이라며 염소 머리 수프를 내어 주었다.

(페루의 꾸이, 잠비아의 구더기 등... 접대지만 자신들과 함께 하고 싶은 건지를 테스트하는 것 같은 자리가 항상 있었던 것 같다.)

커다란 들통 안 기름기 있는 맑은 국물에 떠 있는 온전한 염소 머리를 보는 순간, 촬영감독은 촬영할 게 남았다며 후다닥 도망가 버리고...

나는 다시 예의 미소를 고정시킨 채 노린내 가득한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염소 머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예전 전남 화순에서 접대받은 흑염소 수육과 탕을 먹고 일주일 동안 껌을 씹었던 생각도 나고...

여하튼 어찌어찌 실례 안될 정도만 먹고 일어났다.

몸속까지 깊게 배인 염소 향의 강렬함 덕분에 더 이상 몸에서 나는 가죽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ㅠㅠ

어딜 가나 솟아 있는 개미집. 보통 힘으론 부서지지도 않고, 차가 와서 박으면 차가 뒤집힐 정도로 단단하다.

이분들의 집과 터전이 계곡 양편의 산 비탈에 있어서 삶을 담기 위해선 산행을 엄청 해야 했다.

헥헥 거리는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킥킥거리는 이들...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저질 체력 덕에 이들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짐을 느꼈고, 앞뒤에서 산행을 도우며 이들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주었다.

성당 부속 유치원
성당에서 운영 중인 클리닉

제도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오지에서 신앙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에 헌신하고 있는 방인 사제와 수도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삶을 품위 있게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도움을 이끌어내고 지역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목숨을 걸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우리의 작은 작업이 이들에게는 큰 희망과 빛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며칠간 쌓인 피로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도 멈춰 있을 수가 없었다.

맨 왼쪽의 막내 수녀님은 보콧족 출신이다. 두 부족 사람이 이곳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평화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체송고치 본당 주임 Patrick Masika 신부님

체송고치에서의 마지막 밤.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환송연을 준비해주셨다.

역시 길다... ㅎㅎ

준비해 간 선물을 나눠드리고 예쁜 가방 선물도 받았다.

겨우 이틀이었는데, 왜 시큰거리는지...

도움이 될까 싶어 출장비에서 숙박비 외에 좀 더 얹어서 기부를 하고(남미 일정이 남아 있어 과감히는 못하고) 감사를 표했다.

외부 손님의 방문이 거의 없는 오지의 삶.

이틀 동안 이들에게 기쁜 손님으로 머물다가 떠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잠을 청했다.

캐리오 밸리에서 본 일출

새벽 5시경에 체송고치를 떠났다.

이동 중에 계곡의 정상에서 본 일출 장면이 장관이었다.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아프리카의 일출이라니...ㅎㅎ

가다가 또 멈춰 선 곳. 적도!

체송고치를 향할 때도 적도를 넘었고 다시 나이로비로 가는 중에 적도을 밟는다.

적도는... 당연히 뜨거운, 열사의, 습하고 힘든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반팔티 차림이 너무 추워서 사진만 후다닥 찍고 차에 올랐다.

해발 1,742m에 위치한 '쾌적한' 적도였다.

적도에서
바오밥 나무

다시 6시간을 달려 수녀님들이 살고 있는 나이로비 인근 카렌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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