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저서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를 읽었을 때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2020년 초, 나는 힙합 칼럼니스트 김봉현 작가가 진행하는 합평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때 추천서로 소개받았다. 87년생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 관심을 갖고 읽어보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관심은 존경으로, 존경은 다시 부러움으로 이어진 기억이 있다. 담담하게 뱉어낸 문장 하나하나에 시대 흐름을 읽는 안목이 묻어났고, 완급 조절이 가능한 필체는 챕터 여기저기서 작가의 트리비아와 버무려져 글의 풍성함을 더했다. 청춘에 대해 말하는 그의 내공은 동년배라고는 쉽사리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또 한 번 느낄 수 있던 공통분모가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육아대디'라는 사실이다.
실은 요즘 연년생 터울 두 아이의 육아 일기를 집필 중이다. 출판사 에디터와 약속한 시일 내에 주어진 미션을 해결해야 했고 따라서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읽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누가 시간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내려준 선물이라 했는가. 나에게 있어 최근 몇 주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활자를 주섬주섬 챙겨 예쁘게 포장하는 데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들, 딸 아침 밥상을 차리기도 하고, 하원 후 2시간이 넘도록 밖에서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비염이 도진 아들,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43번째 대기표를 받기도 하고, 회식이 있는 와이프를 대신해 아이들의 밤잠을 책임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그것은 정지우 작가가 말한 비가역적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포기는 반드시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어야 하고, 하늘이 두쪽 나도 거스를 수 없는 '너희'가 있기에.
작가 역시도 아들이 영아인 시절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들의 눈망울에 집중하는 이유는 영아일 때부터 눈 맞춤으로 니즈를 충족시켜야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일 테다. 수면 부족과 체력 저하는 숙명 같은 일이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한껏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철 모르는 소리라 여겨질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육아를 하면서 그 간의 삶에서 배울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여러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엮어 한 편의 책으로 만들었다. 오직 '나'에게만 집중해도 모자랄 시기에 '너'를 한번 더 읊어보는 것. 그에 덧붙여 나를 희석시키고 뒤로 물리면서까지 '너'의 행복을 담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책이 특별히 더 애착이 가는 이유는 '아빠'로서 자식과 함께 한 에피소드에서 드러난 작가의 가치관이 내가 추구하는 그것과 많이 닮아서라고 생각한다. 너로 인해 내가 호강하겠다는 둥, 한 번 태어난 인생 기왕이면 잘 살아야지라는 생각과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갈수록 삶은 결국 '나와 사랑을 나눈 사람들의 총합'이라는 말을 믿게 된다. 요즘 나는 삶이라는 이야기 공간에 여러 주인공들과 함께 이야기를 써나간다고 느낀다
나도 아들, 딸이 세상에 태어나서 반드시 걸어야 할 정도(正道)가 있다고 절대 생각하지도 않고, 가르칠 생각도 없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번 더 귀담아들을 줄 알고, 주어진 오늘에 행복해하고 감사할 줄 아는 어린이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아 떼를 쓰고 다투기도 할 것임을 분명하게 안다. 그러나 그러한 통과의례들이 아이들이 앞으로의 세상을 좀 더 의미 있게 바라보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내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삶을 더 정성스럽게 만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라는 작가의 소견처럼 공감할 줄 아는 인격체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삶은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
작가의 아들은 참으로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물이 그리울 것 같다고 말하며, 아빠를 꼴등으로 사랑한다고 장난 섞인 멘트를 하기도 한다. 악마로부터 바퀴벌레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할 땐 세상 누구보다 논리적이지만, 혼자 충분히 신을 수 있는 양말을 아빠에게 신겨달라고 하는 철부지가 되기도 한다. 나의 하루도 별반 다르지 않다. 카봇 시리즈 중 하나인 '로드세이버'를 먼저 가지고 놀겠다고 싸우는 남매의 모습을 중재하고, 씻기 싫어서 패악질을 하는 딸내미를 어떻게든 욕조로 데리고 가 씻기곤 한다. 그럼에도 육아를 포기할 수 없는 건 그 과정 속에서 쌓이는 경험들은 '아빠'라는 타이틀을 좀 더 공고히 해준다는 생각에서다. '아이들과 푸닥거리를 경험함으로써 나는 좀 더 근사한 어른이 된다.'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이 나를 그만큼 단단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육아 이야기를 이처럼 자연스럽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같은 것을 척척 내어놓을 처지가 못된다. 그저 틈이 나면 여행을 가서 와이프와 바다를 보는 것을 즐기고, 육퇴를 하고 나서 풀어내는 이야기보따리들이 그저 오늘을 잘 보냈음에 하사 받는 전리품이라 여긴다.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한 노력, 사랑의 분배에 대한 관점 등을 살펴보면서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좀 더 많아지게 되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진행되는 북토크도 가보고 싶어 졌고, '블루 밸런타인', '해피 이벤트' 등의 영화도 궁금해졌다. 돌봄에서 교육으로의 길을 가고 있는 작가의 교육 철학도 듣고 싶고 말이다.
그럼에도 당신을 너무 사랑하니까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좋으니까 그 시절의 이야기가 결국 평생을 지탱하는 작은 버팀목이 되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최근 집필 중인 육아 에세이의 슬로건으로 '육아는 reverse 된 삶으로의 rebirth(재탄생)'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렇다. 육아 전후로 내 인생은 근 5년 만에 정말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이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작가는 '내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삶을 더 정성스럽게 만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나 또한 나의 생각, 행동 하나하나가 오직 나만의 것일 수 없다. 또한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만을 바라보는 우리 아이들이 있다. 자상하고 부지런한 남편, 친절하고 늘 함께하고 싶은 아빠가 되기 위해 오늘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볼 생각이다. 이 모든 것이 연습이라 믿고 감사하게도 주어진 하루에 대한 예의라고 믿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