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경규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 단순하지만 단단한 지론

by 홍윤표

어렸을 때부터 오락부장을 도맡아 했다. 놀다가 TV에서 만화 보는 시간은 놓치더라도 '유머 1번지' , '한바탕 웃음으로' 등 개그 프로의 본방은 놓칠 수 없었다. 옴부즈만도 아닌데 꼼꼼히 콩트별로 웃음 포인트를 캐치해서 정리해 두었고 다음날 학교에서 어김없이 친구들 앞에서 유머를 뽐냈다. 1주일에 한 번씩 개인기를 발표하는 시간을 담임선생님이 주셨는데, 그때마다 늘 전날 외웠던 덩달이시리즈, 최불암시리즈를 발표했다. 친구들이 박장대소하는 모습에 이름 모를 자신감과 카타르시스가 샘솟았다. 반면 친구들이 잘 안 웃어주는 날은 하루종일 우울했으며 오히려 내 개그를 친구들이 무식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매도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개그에 관심이 많던 꼬마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개그맨은 바로 '이경규'이다. 그를 처음 매스컴에서 마주한 것은 놀랍게도 '일요일일요일밤에'가 아니었다. 90년 초 당시 외국의 홈비디오를 리뷰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 반짝 유행한 적이 있다. 그때 당시 비디오 대여점에서 '박세민, 이경규의 미국시청자비디오'라는 비디오를 아버지가 빌려오셨고, 난 그 비디오의 코멘트를 다 외울 정도로 봤다. '나 홀로 집에'의 폭발적인 인기로 서양 문화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동경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경규의 해설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부리부리한 눈에 강단 있어 보이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는데 얼마 안 되어 이 아저씨가 MBC주말을 책임지는 대스타가 될 줄은 몰랐다.


90년대 초 3대 방송사는 나름의 간판 개그맨과 코너가 존재했다. SBS는 틴틴파이브라는 춤, 개그, 노래가 모두 가능한 젊은 엔터테이너들이 인기를 끌었고, KBS는 맹구와 오서방, 영구 등의 독보적인 캐릭터들의 예측 가능하지만 보는 이를 유쾌하게 만드는 재치가 인상적이었다. MBC는 김국진이라는 레전드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가히 이경규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별들에게 물어봐'와 같은 콩트에서부터 '이경규가 간다', '몰래카메라' 은 코너까지 그야말로 전 국민에게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독보적인 캐릭터는 그만이 유일했다.

세월이 흘러 학창 시절을 보내고 직장생활을 하며 나름 이 시대의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어릴 때는 미처 몰랐던 대단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존경하고 싶은 부분은 '성실성'과 '창의성'이다. 그와 비견될 만한 유명한 사람들은 연예계 여러 분야에서 많이 존재하지만 4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사람은 희소하다. 그만큼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의 특징을 주도면밀하게 파악한 뒤 그 원리, 원칙들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슈퍼스타로서 주변으로부터 달콤한 제의가 얼마나 많이 있었을지 상상이 안 가지만 한순간의 욕심에 사라져 간 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꾸준함'에 대한 그의 태도를 높이 사고 본받고 싶다.


또 다른 존경할 부분은 앞서 말한 '창의성'이다. 개그맨으로서 개그 무대와 방송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라면을 좋아하기 때문에 라면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라면을 창조해 내는가 하면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진행한다. 전문가들도 평생을 바쳐서 해내기 어려운 것들을 꾸준한 관찰과 남다른 추진력을 바탕으로 실천하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실은 교사로서 내가 평생 이 일을 해내기까지 어떤 강점을 갖고 살아야 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교사를 꿈꾸었으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직을 관두고 다른 일을 찾아 떠나는 2,30대 젊은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면 충분히 그들의 선택에 공감이 간다. 그만큼 요즘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학생들을 지도하기에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다. 그런 상황에서 좀 더 나 스스로 교직 생활에 대한 만족도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에는 부지런함과 창의성이 해답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맡은 분야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더 나은 방법은 어떤 것이 없는지 찾는 연습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닥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번뿐인 인생, 슈퍼스타가 될 생각은 없지만 나 스스로에게 좀 더 솔직하기 위해 오늘 하루도 글을 쓰기로 했다. 꾸준함 속에 창의적인 생각을 얹어 나와 가족,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쓸모 있는 것을 제공할 수 있도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