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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서커스

홀리 모터스

by 홍재희 Hong Jaehee




레오 카락스의 '홀리 모터스'를 보았다. 부글부글 들끓어 오르는 피, 질주하는 젊음, 폭발하던 청춘의 대명사, 레오 카락스가 어느덧 세월에 수그러져 삶과 죽음을 사유하고 있더라니 아..... '홀리 모터스'가 이런 내용인 줄 꿈에도 몰랐다. 왜 난 멋대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혼자 상상했던 걸까. '모터스' 라길래 뭔가 차가 등장하고 자동차 경주 따위가 펼쳐지는 이야기 아니면 태양의 서커스 같은 번쩍번쩍한 쇼를 떠올렸던 걸까. 개봉할 때 이 영화를 봤다면 꾸벅꾸벅 졸거나 끔찍이 싫어했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내 처지 탓인지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인지 장면 장면 내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방점을, 마치 스키드 마크처럼 꾹 찍고 가는 느낌이. 영화란 인생이란 연기란 배우란... 그리고 레오 카락스 그리고 드니 라방 그리고 나 역시. 우리는 모두 삶이란 영화를 찍고 있는, 저마다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아니던가. 역시 영화 감상은 어떤 나이, 때, 시기, 감, 상태에 따라 정말 달라지는 듯.


두고두고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면이 하나 있다. 이런 걸 일컬어 '사로잡혔다'라고 한다. 나만 반했을 수도 있지만 뭐...... 홀딱 반했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이 장면에서 울컥했다. 이런 장면을 보면 울고 싶어진다. 전율한다. 미치도록 샘이 나고 하늘처럼 존경스럽다. 인생이라는 영화의, 또는 영화라는 인생의 '막간'(entracte)에 시작된 행진이라. 이리 신나고 열렬한 행진이 어디 있담! 아코디언과 기타 드럼이 선사하는 록음악에 심쿵! 미치겠네. 이런 게 난 정말 좋더라. 가슴 속에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고 결국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 주르르.


https://www.youtube.com/watch?v=B7icMfsMjAk&t=81s



역시 레오 카락스 감독. 당신은 후세대인 미셀 공드리 자비에 돌란의 스승이요. 오늘 하루 종일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본다. 홀리 모터스 O.S.T. 그리고 쇼스타코비치 그리고 R.L.Burnside와 함께 하루를.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제15 내림마 단조 (Srting Quartet #15 in Eb Mino, Op. 144)


https://youtu.be/TLb5NPaPj-A?si=BEZ10D5_Lmnox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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