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자에 대한 명상 3

by 홍재희 Hong Jaehee



남자들은 언제나 제 아버지에게 붙잡혀 산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하고 산다. 아비 없이 살기로 결심하며 제 아비를 부정하고, 처절하게 투쟁하면서 자기를 세우려 하지만 아비 없이 단 한순간도 자기를 규정하지 못한다. 매 순간 아비를 버리면서도 제 아비를 취하는 남자. 매 순간 아비를 죽이면서 수시로 복원하는 남자. 남자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는 실존의 구멍을 채우는 존재이다. 남자에게 아버지는 마약이자 구원이며 하나님이자 악마, 현실이자 망상, 중독이자 갈망의 대상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남자는 아버지에게로 집중했던 에너지를 공부로, 여자로, 일로, 사업으로, 성공으로, 명예로 환치할 뿐이다.




그러나 이 그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남자는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온다. 아버지로 돌아온 남자는 누구와도 무엇과도 화해하지 못하고 마지막 분노와 자기 연민에 옴짝달싹할 수 없게 붙잡혀 알코올로 도망간다. 즐기기 위해 즐거워서 재미있어서 술을 마시지 않고 취하기 위해 마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랬다. 내 아비가 그러했다.


술집에 가면 이런 한국 남자들이 수도 없이 넘쳐난다. 바에서 노래방에서 룸살롱에서 온갖 종류의 술집에서 또는 집에서 취하려고 술을 들이부으며 제 삶에 토악질을 해대고 있는 남자들이. 수 없는 불면의 밤과 불안한 실존을 잊고자, 알코올과 분탕질에 제가 살아있음을, 남자임을 증명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과 명예, 술과 도박, 마약과 섹스, 종교와 쾌락, 쇼핑과 게임, 희망과 절망이라는 중독에 빠져 살고 있는가. 알코올과 도박과 주식과 성공과 신경안정제가 사이좋게 어깨 동무하는 사회. 쇼가 끝나고 나서야 그 모든 게 가망 없는 한바탕 꿈이었다는 것을. 죽음이 조용히 방문을 두드릴 그때가 되어야 깨달 수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을.



결국 남자는 제 아비가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 하나 제 아비가 죽은 다음에도 아비와 화해하지 못하는 자는, 아비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자는, 제 아비의 송장을 등짝에 지고 살게 된다. 이승에서 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