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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희 Hong Jaehee Nov 13. 2024

여행을 떠나는 이유

여행자의 기록 3



"오늘을 위해서 살아라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영영 오지 않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You must live for today cause yesterday is gone and tomorrow may never come)





1.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떠나는 것이다. 다리가 떨릴 때가 아니라.  


어느 책에서 읽었다.


"중국에서는 노안을 화안이라도 한다. 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꽃 하나 하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것은 나이가 듦으로서 변하고 시드는  사라지는 것 즉 우리네 인생의 참다운 가치를 깨닫게 되는 소중한 나이란 뜻이다."


돈 좀 벌어놓고, 자식 다 키워 놓고 여유(?)있을 때, 자식들 노심초사 걱정하고 난 후에 그 때 편히 쉬고 놀고 여행도 가야지 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 평균 수명이 80살이라면 돈벌이에 자식에게 올인하는 삶 30년을 보내도 남은 인생이 길다. 남은 여생을 뭐할 지 몰라 헤매거나 무기력한 일상에 외로움에 시달리거나 병마에 고생하다 마감할지도 모른다. 결국 가족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삶은 부질없다. 뒤늦게 이 나이에 라며 후회한들 때는 지났다. 어느샌가 훌쩍 지나가버린 아름다운 시절을 운운한들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결국 노는 것도 여행도 배움이고 연습이다. 놀아본 적도 없는 사람이 나이들어 돈 좀 많다고 이제부터 놀겠다고 한들 제대로 놀겠는가.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 여행을 떠난들 그 깊이를 알겠는가. 놀 줄 모르는 사람은 노는 것도 애써서 일부러 열심히 목숨 걸고 하려든다. 같이 놀아달라고 보채든 놀 줄 몰라서 남을 괴롭히든 잘 못 놀아서 주위에 온갖 민폐를 저지르면서도 정작 본인만 모른다. 이들은 당연히 여행도 혼자 가지 못한다. '혼자'가 된다는 것, 홀로 낯선 땅을 배회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지극히 불편한 고생이며 가장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관광이 곧 여행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본다. 이들은 벌은 돈을 팡팡 쓰러 가는 게, 소비가 곧 여행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소비하려고 여행길에 오르면 참을성 없고 게으른 '관광객'(!)이 된다. 이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탐닉과 사치를 여행으로 착각하고 낯선 타지 외국에서 아무 것도 의식하지 않는 버릇 없는 어린애가 된다. 그 무엇도 배우고 관찰하지 않으면서 세계에 대한 일천한 지식으로 분별없이 행동한다.


여행지에서 이런 한국인들을 볼 때마다 적이 우울했다. 여행자는 다음 어디로 갈 지 모르지만 관광객들은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모른다. 오늘은 이 도시 내일은 저 호텔 모레는 저 식당을 전전할 것이다. 그에게는 그 나라 그 도시에 거기에 그 관광지에 그 식당에 나도 가봤다 내가 거기 있었다라는 사실이, 셀카 인증이 중요하지 그 도시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어떤 냄새였는지는 어떤 이들이 살고 있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돈돈 하며 사는 사람들, 뼈빠지게 일하면서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 생각할 여유도 없이 무작정 바쁘기만 사람들, 여행길에 나서도 스맛폰에 코박고 있는 사람들, 여행지에서 올린 SNS 인스타 사진에 좋아요가 몇 개 달렸는지에 울고 웃는 사람들, 지름신이 내려 쇼핑에 열일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치닫는 삶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사는 삶이다.



2.


사람들은 내가 돈에 여유가 철철 넘쳐서 여행을 다니는 줄 안다. 내가? 가난뱅이인데 무슨. 난 주머니에 돈이 넘쳐서 길을 떠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언제나 돈은 부족하고 여윳돈은 없었다. 달랑 배낭하나 메고 길 떠날 노잣돈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돈 대신 내게 넘치도록 많은 것은 단 하나 시간이었다. 길 위에서는 기본적으로 먹고 자는 곳만 해결할 수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시간이라는 마음의 여유가 이끌어준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내게 유일하게 넘치는 시간을 남김없이 쓰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주 아주 많다. 나를 두 팔 벌려  환대해준 친구들  벗들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준다. 인간은 타인의 선의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나는 길 위에서 배웠다.


여행은 돈에 여유가 있어서 떠나는 게 아니다. 그 여유가 마음이 아니라 풍족한 돈주머니를 의미하는 한 당신은 결코 떠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여행이 아니라 돈을 쓰러가는 쇼핑, 관광일 뿐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 떠날 수 있을까. 돈이 기준이 되면 따지고 우기고 눈치보고 뭐든지 남과 비교하게 된다. 돈을 펑펑 썼는데도 쓴 돈에 비해 만족스럽지 않다면 짜증과 실망은 배가 된다. 언제 어디서나 나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 내가 선택한 숙소보다 더 좋은 호텔, 리조트, 내가 간 레스토랑보다 더 맛있고 유명하고 비싼 식당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 복병은 내가 돈이 휠씬 더 많아야 누릴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돈으로 여행을 환산하면 갈 곳이 묵을 데가 볼 것 할 것 모두 돈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시간이 돈'이라는 말을 시간을 바쳐 돈을 벌어야한다로 이해한다. 시간 자체가 돈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실상 돈이 아니라 시간 부자가 부자다. 시간 부자는  마음이라는 여유가 충만하다. 돈부자가 아니라 사람부자 친구부자가 되라는  말이 있다. 운은 돈이 가져다 주는 게 아니다. 사람이 가져다 주는 것이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그 만큼 행운의 확률도 커진다는 말이다.


한 푼이라도 악착같이 벌어서 남 부럽지 않게 사는 게 목표가 아니라 한 시라도 기회가 있을 때 시간을 벌어 여행을 떠나는 삶을 살아야한다. 쓸 돈을 얼마나 더 소유했느냐로 남을 부러워하는 삶이라면 마음이 참으로 빈곤하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정작 돈을 쓸모있게 쓸 줄도 모른다. 그 돈 버느라 바친 시간과 세월이 아까워 쓰지도 못하거나 어떻게 쓸 줄 몰라  마구 낭비한다.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다. 기억만이 추억만이 경험만이 꿈꾸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순간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자신의 삶 속에 추억이 경험이 없다면 스스로 자존하는 동력이  없다면 돈이 직장이 자식이 곧 자신이 되어버린 삶만큼 종내 허무한 삶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런 당신이 나는 하나도 부럽지 않다.



3.


단 한 번뿐인 인생이다. 두 번도 없다. 우리는 모두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다. 누구나 한 번은 젊고 한 번은 늙는다. 소박한 마음으로 세상 사는 것이 갈수록 녹록치 않다.인생은 힘이 들지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인생인지  힘들수록 우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인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잘 살려면 잘 늙으려면 여유(!)있게 살려면 여행을 떠나야한다. '관광'이 아니라 길을 떠나봐야 한다.


아아, 일을  끝내고 나면 쌈짓돈 노잣돈 들고 어디로든 떠나야겠다. 머리도  비우고 마음도 내려놓고 케케묵은 감정의 때를  씻어내고 새해에는 홀가분하게 리뷰트. 리셋.  몰아치는 한파를 추위를 피해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곳 어느 곳이든 익숙한 이 곳을 떠나 낯선 그 곳으로.



"여행은 편견, 완고함, 편협함에 치명타를 날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단지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여행이 몹시 필요하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광범위하고 건전하며 너그러운 견해는 일생 동안 지구의 구석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

-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 여행기(1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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