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머엉
사계절이 뚜렷한 이 나라에 살면서 계절에 영향받지 않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얼음이 어는 추운 겨울을 지내며 봄과 함께 다가올 새해를 계획해야 한다.
봄이 오면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숲을 여행해야지. 베란다에 허브를 키워 볼까,
다시 요가를 시작해 봐야겠다며 봄과 함께 의무감과 기대감을 맞이 한다.
여름은 어떤가. 괜스레 서핑하러 바다에 가야 할 것 같은 생명의 계절이니 찜통더위에도 자연스레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 진다. '쓸데없이, 머엉' p149
외계인의 활동주기는 계절을 거스르면서부터 시작한다.
여름에는 차가운 얼음과 에어컨이 아닌 겨울의 눈 결정체를 떠올려 보고, 7월엔 성탄절 트리를 꺼내본다. 계절이 요구하는대로 나의 세포와 감각을 그냥 놓아두지 말 것.
당연한 것들을 수긍하며 평온하게 지내다가 외계인의 활동주기가 불쑥 튀어나오게 할 것. '쓸데없이, 머엉' p150
어릴 때부터 멍 때리기를 자주 했던 나는 수시로 공상을 하느라 엉뚱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차라리 겉모습도 엉뚱하면 옆 사람들은 그러려니 할 텐데, 나는 지극히 평범한 행색으로 (아니 범생이 차림으로) 나만의 공상에 빠지곤 했으니 가족과 친구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잘 있다가 "응?" 이런 리액션이랄까? 나의 공상에는 어떤 성향이란 게 분명히 있었다. 굳이 분석하자면, 청개구리 기질이라 하겠다.
조금 나쁘게 말하면 '소심한 반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청개구리도, 반항도 영 맘에 안 들었기에 나는 그걸 '외계인'이라 칭하기로 했다. (맞다. 그냥 나 스스로 정한 거다. ) SF 스릴러 덕후인 내가 외계인이란 단어를 싫어할 리 없다. 일단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청개구리, 공손한 반항을 일삼는 일종의 다른 행성에 사는 '나'를 외계인이라 생각하기로 한 거다. 그게 내 마음이 편하다. (나를 사랑해보자는 눈물겨운 노오력)
그렇게 나를 외계인으로 인정하니, 여러 가지가 편해졌다. 모두가 걸어가는 그 길을 일탈해도 상관없었고, 남들이 당연히 해야 한다고 하는 것에 무관심해도 상관없었다. 아, 그거 왕따가 자기 위로하는 거 아니냐고? (아..... 뭔가 갑자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식스센스급 반전이. 아니 아니, 그렇다 해도 내가 충만하다면 된 거 아닌가. 나를 사랑해보자는 눈물겨운 노오력.)
여하튼, 자칭 외계인으로 살면서 좋은 건, 일상이 공상과 사색, 멍 때리기라서 정신적 물리적 흐름에도 휩쓸리지 않는 나름의 단련도 된 것 같다는 거다. 그중에서 하나를 소개하자면 계절을 거스르는 방법이다. 어쩌면 이걸 누군가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계절이 주는 온도와 감각을 만끽하는 건 기본일 테지만, 어떨 땐 계절이 주는 혹독한 감각은 소심한 반항으로 극복해 볼 수 있다. 바로 '외계인의 활동주기'로 말이다.
계절마다 촬영해 둔 사진이나 영상, 혹은 드로잉들을 다른 계절에 꺼내 보는 것.
이거 꽤 효과가 좋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갈 수도 있듯이 한 여름에 눈 내리는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더위로 지친 몸이 한결 시원해진다. 공상도 상상도 연습이 가능할까? 혹은 사람마다 공상력, 상상력의 재능이 다른 걸까? 의심스러울 땐 해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공상은 막연한 상상과 좀 다른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상상하거나 기나긴 가상의 스토리를 이어간다거나 그러한 상상을 통해 즐겁고 신나기까지 하는 것. 그게 진정한 공상이라 말할 수 있다. 이미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현실적이고 또 현실적인데 굳이 머릿속마저 현실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야 하나? 우리 몸이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도 잠시나마 공상을 하며 배시시 웃어보는 건 어떨까? " -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p240
(5)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 쓸데없이 머엉 #힐링 브이로그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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