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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Mar 20. 2023

왜 오마카세에 갈까?

우리가 목메는 오마카세에 관하여

  오감이 부리는 사치


  일본에서 출발한 오마카세는 주방장의 재량에 따라 메뉴가 달라지는 것이며, 대게 스시집에서 행해진다. 애초에 오마카세는 일식, 그것도 스시에 제격이다. 그러나 오마카세는 이제 만능 단어가 되어버린 듯싶다. 오만 곳에 오마카세가 붙는다. 소고기는 물론, 튀김, 순대, 커피 등등 원조를 비웃기라도 하듯 기상천외한 오마카세들이 등장했다.


  앞서 말한 돌연변이 같은 오마카세들은 어떻게 시장에 나왔을까. 그야 오마카세가 먹히니까. 인기가 많으니까. 스시를 따라 하기는 힘들어도 서비스 방식의 모방은 그것보다 쉬웠다. 시장에 만연한 오마카세들이 설령 오마카세의 사전적 정의와 사뭇 다르더라도 얼핏 메뉴가 요리사의 재량껏 코스로 나오면 오마카세처럼 보인다. 사전적 정의보단 얼마나 럭셔리하냐, 고급스러운 음식을 제공하냐가 중요했다.


  개인 요리사를 고용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몇이나 있을까. 물론 오마카세라고 해도 오롯이 나만을 위한 요리는 아니지만 그것에 준하는 경험을 가능케 해 준다. 이 사치는 혀만 즐기는 것이 아니다. 요리사는 나와 눈을 맞추고, 내 식성을 따지며 고급스러운 음식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게 해 준다. 음식 맛과 제공하는 서비스, 장소가 주는 황홀함. 우리의 오감이 전부 사치를 부린다.   

   


  휴가를 못 가서 그만


  최근 외식 트렌드 중에 코로나와 관련 없는 것을 찾기가 힘들다. 오마카세도 그렇다. 우리가 사는 곳 이외에서 소비되어야 했을 휴가비와, 여행비는 애석하게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호캉스가 그랬듯이 오마카세의 대중화도 코로나의 영향을 받았다.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환전을 못하자 그 돈으로 짧고 굵게 입을 호강시켜 줄 생각이었던 것 같다.


  여행이 자유로웠을 때는 보통 오마카세보다 여행을 선택했다. 애초에 오마카세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나, 불가항력적으로 여행이 제한되자 오마카세는 강력한 대체재로 떠올랐다. 여행과 오마카세 모두 이벤트적인 소비고, 일 년에 보통 한 두 번 정도, 경험을 하면 물질이 아닌 대게 강렬한 기억과 사진이 남는다. 어찌 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게다가 이게 웬걸. 꿩 대신 먹은 닭이 생각보다 맛있었다. 오마카세를 접한 이들은 의외로 만족했다. 아마 단순한 음식이라기 보단 여행의 대체, 무료한 일상의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결국 인스타에 열심히 사진이 올라갔고, 주변에 오마카세를 먹은 이들이 자꾸 늘었다. 유행에 가속도가 붙어 들불처럼 번졌다. 이제 대체재라기엔 휴가와 오마카세는 딱히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 둘은 별개의 소비가 된 것 같다.            



  달라진 씀씀이, 초조한 지갑 


  우리의 씀씀이는 달라졌다. 사치는 곧 낭비이며 척결해야 할 소비습관이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허리띠를 졸라매고, 막연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그렇게 행복을 위해 현재의 소비도 중요해졌다. 우리는 적당히 사치를 부릴 줄 아는 세대로 변모한 것이다.  


  물가는 갈수록 치솟고, 해를 거듭할수록 부정적인 기사가 쏟아졌다. 당장에 거대한 사치는 무리였다. 소소한 사치가 필요했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우린 작은 것에서 사치를 부린다. 작은 소품에서부터 식료품을 비롯한 음식이 대상이었다. 오마카세는 어려워진 주머니 사정에 부릴만한 적당한 사치다. 


  오마카세는 사치를 과시할 만한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오마카세라는 문화 자체를 소비한다기 보다는 적당한 사치를 보여줄만한 도구처럼 쓰인다. 사치품이라면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이미 일개 음식이 가질 수 있는 가치는 이미 아득히 뛰어넘었다. 음식 이상의 것의 의미가 담겨 있고 우리는 그 의미를 소비하는 것이다.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 작은 사치는 정말 과분 한 것은 아닐까.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각종 부정적 지표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정말로 사치는 죄악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린 그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하는 것 같다. 과시해야지 편안해지는 마음들을 위해서. 어리석고 우매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고 있으니.         



  럭셔리 브랜드 그 자체


  이제 오마카세는 일종의 럭셔리 브랜드다. 장인 정신이 깃든 일식의 이미지 때문인지 어디에 붙이든지 세련되어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오마카세가 하나 붙었다고 해서 다소 비싼 가격도 처음엔 용납이 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가격에 걸맞은 수준의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다면 그 실망감은 더더욱 커진다. 


  비판의 목소리가 더러 있지만 '스강신청'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오마카세는 여전히 많은 소비자가 선망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좋은 맛, 서비스와 더불어 우리의 사치욕을 해소해 준다. 속물적인 이유지만 타인이 쉽게 소비하지 못한 것을 소비했다는 우월감을 들게 해 준다. 그것이 럭셔리 제품의 숙명이다. 


   오마카세처럼 강력한 마케팅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외식 용어가 얼마나 될까. 일단 오마카세는 이슈가 된다. 하지만 기성품 찍어내듯 조리하고, 단순히 코스요리처럼 음식만 나온다면 허울뿐인 오마카세다. 세상에 오마카세보다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은 얼마든지 있다. 오마카세는 진정 오마카세 다워야한다.


  럭셔리 브랜드의 지위에 올랐다는 것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단어 하나 만으로 소비자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지켜야 할 것도 많다는 말이 된다. 그 지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뒷받침되었던 이미지들을 지켜야 한다. 이미지가 하나하나 벗겨지면 순식간에 도태된다. 오마카세는 한결같이 고고하고 새침한 브랜드로 남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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