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엄마는 연락도 없이 딸네집에 불쑥 온다.
물론 사위가 없는 빈 시간에 말이다. 시간이 났다거나 가져다줄 게 있거나 아님 뭔가 기분이 상했다거나 혹은 근처에서 모임이 있다거나 하면 가끔 그렇게 온다. 와서 길게 있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한두 시간. 전화 와서 받으면 거의 우리 집 코앞인 것이다. 고향집에서 우리 집까지 나오는 게 수월한 걸음이 아니기에 언제든 엄마가 반갑지만, 연락이 엇갈리거나 내가 일이 있을 때는 짜증스럽기도 했다.
어느 해 겨울에는 아이 하원시키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동안 전화를 못 받았더니 엄마가 우리 집 계단에서 한 시간 동안이나 떨면서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화도 나고 노친네가 안쓰럽기도 해서 씨부렁댔더니 엄마 본인도 춥고 빡쳤던지 얼마간은 연락 없이 불심검문으로 나오는 일이 없었다. 요새 들어 또 한 번씩 그렇게 방문하기 시작한다. 지금 살짝 농사일이 루즈하기 때문일 게다.
어제는 아버지랑 함께 노부부가 나란히 불심검문을 왔다. 내가 좋아하는 거봉 끝물을 싹 걷어서 한 상자 거하게 싣고 왔다. 오후 5시에 전화를 받으니 집 앞이란다. 뭐라고요. 부랴부랴 집구석을 정리하고 애 매무새를 만져주고 노인네들을 맞이했다. 초밥을 배달시켜 맛나게 잡숫고 가셨는데 가면서 엄마가 이렇게 엄마아버지 오면 좋지 않으냐고 한다. 맞다 좋다. 진짜 몇 년 내로 조금만 더 늙으면 못 올 테니까. 5시에 왔는데 초밥 다 먹고도 7시도 안 되어 휑 떠났다. 불심검문 어쩌겠는가.
옛날에 외할아버지 할머니는 딸네집에 오지 않았다. 사돈인 고향할머니가 있기도 했고 출가외인집에 발걸음 잦은 건 옳지 않다고 옛날 사람다운 생각에서였다. 엄마는 그게 늘 섭섭하고 서글펐던 모양이었다. 대신 외할머니는 용건 있으면 기습적으로 엄마에게 불쑥 전화해서 벙개접선을 요청하곤 했다. 우리 엄마도 비슷하다. 자주 오는 일은 없지만 오면 무조건 기습이다. 전생에 엄마는 삼별초였나 보다. 다만 우리 엄마는 아들 눈치는 지대하게 보기에 아들네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엄마가 이러저러하게 기습방문한다고 오빠와 통화하며 이야기하니 야 우리 엄마 진짜 딸한텐 대박 마음대로 하는구나 내 눈치는 엄청 보면서ㅋㅋㅋ하고 오빠는 깔깔댔다. 엉 레알. 엄마 마음대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