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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따 Dec 01. 2024

김치 2

본의 아니게 요일은 김장을 했다.

고향집에 안부전화를 했다가 김장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실수다. 괜히 전화를 해가지고. 가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번엔 시가에서도 시어머니가 김장을 왔으면 하는 뜻을 비추었다. 매년 시고모가 묻지도 않았는데 김장날짜를 가르쳐주어서 그때마다 일이 있다고 하니 이번엔 저녁에라도 오라는 걸 무슨 개소린가 싶어 귀담아듣지도 않았는데 시어머니까지 또 가세하니 짜증이 솟구쳐 남편에게 당신네 어른들은 솔직히 노양심 아니냐고 했다. 요즘 세상에 시할머니를 위시하여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고모에 시고모부 시삼촌 시숙모들이 득시글대며 몇백 포기인지 셀 수도 없는 김치를 만드는 소굴에다 INFP 머리채까지 자꾸 끌어오려고 하는 건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닌가 말이다. 토번족 같이 생긴 며느리 얼굴이 예뻐서 오라고 할 리는 없고 너무 의도가 있지 않은가. 이렇게 보리 까끄래기처럼 까칠해진 이유는 작금의 김장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한 백 포기쯤 하는데 김치는 제일 잘 먹으면서 있으나마나한 느려터진 아버지 대신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내가 절인 배추를 건지고 씻고 이때까지는 거기서 빤스런했지만 양념 처바르는 것까지는 사십 평생 처음 했다. 한 세 컨테이너 하고 나니 아 더 이상 삶의 의욕이 없어져서 엄마한테 내일 다시 하자고 했다. 물론 엄마는 새벽에 남은 분량을 혼자 다 처치해 놓았다. 가야산을 운동화 한 켤레로 올라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노동은 다르다. 오금쟁이가 땡기고 성치가 않았다. 일흔이 넘은 노친네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 힘든걸 빤히 알면서 시어머니는 나를 그 소굴로 끌어들이고 싶은 건가 싶어서 신경질이 뽝 났다. 시어머니랑만 하는 거면 귀찮긴 해도 엄마 생각 나서 걍 갔을 텐데 득시글대는 시가족들과 몇십 콘테나씩 절인 배추를 내놓고 뭐가 즐겁다고 날 부르려는가 싶어서 말이다. 만날 안 오고 빠지는 년으로 그냥 남고 난 이만 드러눕는다. 난 이미 김치가 너무 많. 한국사람 12월 인생 김치가 왜 이리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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