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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n Jun 26. 2022

이렇게 연극하며 살아간다: 연극 <콜타임> 리뷰

극단 호랑이기운 연극 <콜타임>

  2월 18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콜타임>은 ‘페미니즘’에 대한 세대간의 주장과 충돌을 두 여성 인물을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중견 여배우 범순과 막 20대에 들어선 은호의 만남은 ‘여성으로서 사회를 살아가는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우리는 달라질 수 있을까’와 같은 가볍지만은 않은, 현실적인 논의들을 제시한다. 하지만 동시대의 이슈를 건드리는 다소 직설적인 대사에도, 극 곳곳에 스며든 유머와 유쾌한 접근 방식은 관객들이 논의의 무게에 억눌리지 않고 보다 친근하게 인물들의 주장을 마주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작품은 극중 장소와 시간을 실제 장소, 시간과 일치시킨다. 콜타임 한 시간 전부터 콜타임까지의 사건들을 그린 작품 속 시간은, 실제로 60분이 조금 넘는 작품의 러닝타임과 맞물리고, 극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실제 극장 안에서 펼쳐진다. 이는 관객에게 눈앞의 이야기가 단순한 허구가 아니며, 우리 곁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임을 와 닿도록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은 누군가의 편을 들고 있지 않다. 한 입장을 옹호하며 깔끔한 마무리를 짓지 않은 글의 구성은, 어쩌면 너무 ‘안전한’ 시도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각 입장의 감정적 편 가르기에 논점이 파묻히는 것을 방지하고, 넓은 관객들을 포용하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열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연극 <콜타임> 포스터.


서로를 필요로 하는, 완벽하지 않은 인물들

 배우 생활 12년차인 40대 여배우 범순과 이제 막 조연출 생활을 시작한 스물한 살 은호. 두 인물의 나잇대 설정은 두 세대의 만남을 상징한다. 기성세대를 보여주는 범순은 힘겹게 일구어낸 사회적, 직업적 성취가 있고, 그를 통해 가정과 뱃속의 아이라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극장을 매진시키는) 그런 배우 아니에요’라고 범순 자신이 말하듯, 그녀가 작은 극단에서 쌓아온 권위와 직업적인 입지는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자신의 자리를 쉽게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변화, 입지에 균열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것이 두렵다. 반면에 새로운 세대를 보여주는 은호는 시작점에 서 있기에 의욕이 넘치고, 과거의 무언가를 지키기보다는 미래에 무언가를 바꾸고자 한다. 스스로를 동성애자이자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럼없이 밝히는 데서 범순과의 차이가 도드라진다. 범순이 지금까지 극단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체득’하고 있다면, 은호는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새로이 파악한 세상의 불합리한 원리를 잘 ‘인지하고’ 있다. 범순이 모르는, 어쩌면 관객들도 다 알지 못할 온갖 성 다양성에 대한 용어들을 은호가 언급하는 데에서 그것이 드러난다.

 서로 딛고 서 있는 논점이 다른 두 사람은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치고, 서로를 변화시킬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게 있다. 은호는 범순의 일인극을 알아봐 준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알지 못했던, 아내나 엄마가 아니었던 범순 그 자체의 다채로운 모습을 알아보고 찬사를 보낸 것이다. 범순은 은호를 통해 가려져왔던 자기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다. 그리고서는 자신이 여성으로서 역할의 제한에 불만이 있었음을 확실히 알아본다. 또한, 은호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알아볼 기회조차 없었던 성 지향성에 대해 되돌아보기도 한다.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범순 때문에 조연출 일을 시작했다는 은호가 필요로 했던 것은 범순의 ‘인정과 애정’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상장히 상징적이다. 기성세대는 당연한 것을 다른 시선으로 돌아보도록 하는 새로운 주장 또는 사상에 불합리와 자기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통해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 기성 세대의 인원은, 새로운 세대의 주장이 그저 관념으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착되고 인정받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두 사람은 각자의 결점을 갖는다. 범순은 자신이 가져왔던 생각이 어쩌면 잘못됐을 수 있다고 절실히 깨닫지만, 현실적인 요인들로 인해 이를 인정하지 못한다. 은호 역시, 아직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딪혀보지 않은 생각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만, ‘모두가 은호 같은 것은 아니고,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범순의 지적이 어쩐지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은호는 범순이 대사를 일부로 틀렸다고 자의적으로 확정짓는 면모를 보이고, 연출에게 범순의 비밀스런 생각을 감정적으로 쏟아내 버릴 만큼 충동적이다. 범순이 대특정 대사를 틀린 것에는 여러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세상의 억압에 대한 저항 욕구일 수도, 단순한 실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은호는 전자의 경우를 눈치챈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회의 문제의식을 발견하는 예리함과 연대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를 아예 제외한다는 점에서 막무가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말을 놓아도 되냐는 범순의 제안에 자신 역시 당연하다는 듯 말을 놓아버리는 은호의 모습 등에서 관객의 웃음이 터져나온다는 점에서 은호의 태도가 현실과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반증된다. 또한, 은호는 대학에 가지 못해 삼수를 하는, 사회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성공하지 못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를 지키기 위해 변화를 거부하는 범순의 실상도 현재 그렇게 ‘성공한’ 인물은 아니라는 점이 씁쓸함을 남긴다.

 어쩌면 두 사람의 대립 중에 가장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서로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고 싶냐고’ 묻는 은호이지만 감정이 격해지고 범순이 배를 만지는 자세를 취하자 금세 범순을 걱정한다. 범순은 자신을 실패자 취급하는 은호에게 언젠가 그 뜻을 펼치고 잘 될 수 있을 거라 격려한다. 작품은 각 인물이 서로를 완전히 수용하면서 끝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갈등의 파국으로 내달리지 않고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것, 또, 사회에서 새로운 사고방식이 출현하고 기성세대와 갈등하면서도 계속해서 세대 간의 대화가 활발하게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갈등의 본질이 ‘서로가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극이 시작되는 과정

 극장은 암묵적인 약속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표를 사고, 시간을 지켜 한 곳에 모이고, 조용히 앉아 떠들지 않는다. 무대 위에 보이거나,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연극을 보면서는 이 괴리를 관습적으로 잊어버리고 공간 속에 존재하는 환상을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우리의 일상은 자주 이러한 연극에 비유되곤 한다. 사람들 각각은 성별 또는 지위에 사회적 역할이 주어지고, 각자는 그것을 수행하도록 암묵적으로 요구받는다. 작품은 극장에서 연극을 만드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일상 속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를 꼬집는다. 연극의 총책임자인 연출은 극 중 많이 나오지도, 갈등에 영향력이 있지도 않다. 범순과 은호의 싸움을 발견하고 무언가 조치를 취할 것 같은 긴장감을 주지만, 결국  ‘싸우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다이다. 단순히 화장실에 가기 위해 극장에 들어서는 장면 역시도 웃음을 유발하며 그가 실질적인 능력이 없음을 알린다. 하지만 그의 ‘권위’는 남아있기에, 연극 프로덕션에서 버려지지 않으려면 그를 따라야만 한다. 어쩌면 그의 권위와, 더 나아가 그가 공연하고자 하는 희곡의 배역들은 은호가 지적한 대로 낡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대에는 그것을 답습하여 재생산할 수밖에 없는 배우와,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언젠가 배우가 될, 직접적인 영향력이 없어 보이지만 무대를 만들어나가는 데 꼭 필요한 조연출이 있다. 현 상황을 유지할 수 밖에 없는 답답함과 언젠가는 변화될 거라는 가능성을 함께 제시하는 인물 구성이다.

 작품이 콜타임 전, 공연을 만들어가기 전을 다루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여성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의 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은호가 무대를 넘어 콘솔까지 극장 곳곳을 누비는 이유도 관객의 시선을 무대 위 환상에만 고정시키지 않고 공연장이라는 인공적인 구조물을 살펴보게 하려는 이유일 것이다. 공연 속의 역할, 사회적인 역할의 환상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이다. 두 사람은 공연하게 될 희곡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 희곡에는 ‘역할’이 있다. 그들이 공연하게 될 작품은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를 오마주한 것 같은, ‘단이는 왜 20세기에 몸을 던졌는가’이다.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전형적인 효녀 캐릭터인 심청은 ‘20세기’라는 과거의 사람으로 재정의되고 만다. 하지만 두 사람은 희곡과 인물이 '과거의 것'임을 알고도 그대로 연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역할에 대한 두 인물의 태도는 다르다. 범순은 자신이 특정 대사를 틀린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콜타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와서 대본을 틀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은호는 범순이 대본을 틀리는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던 두 사람의 논쟁은 결국 범순이 '나는 저항하지 않고 기성세대의 관습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고 길게 밝히면서 마무리된다. 주목할만한 점은, 범순이 그렇게 순응과 답습의 입장을 밝히는 장면이 작품 속 거의 유일하게 '연극적'으로 연출된 장면이라는 것이다. 여지껏 '무대'의 용도가 아닌, 몸푸는 장소 정도로 보이던 무대는, 이 때에 비로소 음악과 조명이 갖춰져 '무대'처럼 보인다. 은호와 주고받는 대화의 형태였던 범순의 말도, 이 장면에서는 혼자 객석을 바라보고 하는 긴 독백의 형식을 보이며, '연극 속 대사'임을 강조한다. 또한 무대 전체를 밝히던 조명은 처음으로 범순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이는 범순이 관습에 저항할 경우, 넓은 세상에서 '혼자'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는 느낌과 함께, 이제 기성 세대의 사람들 중 범순의 진정한 내면을 들여다보며 공감해주는 이는 없을 거라는 느낌을 주며 범순의 내면의 고통을 효과적으로 느끼게 한다. 동시에 범순의 이야기가 인위적인 연극과 연관됨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사회가 부여한 옳고 그른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연극에서의 인위적인 '연기'를 연결지어 보여주는 것이다.

  

연극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작품은 낡고 낡은 가치를 이미지로 형상화한 ‘초가집’ 무대세트에서 형형색색의 작은 공들이 쏟아져나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누군가는 엔딩이 너무 동화적이고 무책임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콜타임'이라는 것은 연극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이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는 연극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들어가기 위해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누군가가 지정해주는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지 않고, 역할 수행으로 들어가기 까지 추가적인 고민과 갈등의 시간을 가지는 것. 그 자체가 무언가 의미있는 움직임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논쟁이 아무리 길어진대도 지정된 대본에 따라 연극은 시작되어야 한다.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초가지붕 위에 비눗방울을 날리던 두 사람만의 연극과는 다른, 낡은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은 무너진 아궁이를 고쳐야 하고, 쏟아져나온 공들을 쓸어담아야 한다. 아궁이는 의미보다는 강제성만 남은 낡은 관습처럼, 능력보다는 권위만 남은 연출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고 자주 무너지지만 결국 끝없이 '있어보이게' 고쳐야만 하는 것이다. 거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대 위로 쏟아져나온 공들은, 앞서 은호와 범순이 잠깐의 놀이처럼 날리던 비눗방울과는 다르다. 쉽게 터지지 않고, 하나하나 정성껏 힘을 들여 치워야 할 것이다.

 범순은 '당시의 시대상 때문에, 오래 전 여성인물은 모두 수동적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은호는 모두 그랬던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여성상에 반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지워지고, 순종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만이 ‘남은’ 것이라 말한다. 연극 <콜타임>은, 비록 무대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사람들만 '남아' 있을지라도,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절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언젠가는 무대 위 저 낡은 아궁이가 무너져버릴 순간을, 은호와 같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며 무대에 오를 순간을 관객으로 하여금 기대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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