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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Nov 30. 2022

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38 요양원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지난가을 장기 요양인정자로 결정되어 입소할 요양원을 찾아볼 때까지만 해도 작은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지금 아빠가 계신 정신병원보다는 조금 더 좋은 환경으로 모실 수 있지 않을까?

건강보험공단에서 주신 장기요양기관 현황을 보며 평가 시기가 2018년? 너무 오래전 평가인 건 아닌지? 최우수, 우수, 양호, 보통, 미흡의 평가등급은 과연 적정한지 5페이지를 꽉 채운 요양 시설 중에 그나마 좋은 시설을 찾아내야 했기에 비장한 마음마저 들었다.

내게 주어진 건 이 리스트뿐이니 나는 인터넷 검색 통해 홈페이지, 맘 카페 댓글 등을 참고하며 그나마 관리가 잘 되어 보이는 시설 몇 군데를 뽑아 입소문의 전화를 해보고 직접 방문해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세 군데 상담 전화를 해보고는 마음을 접게 되었다


제일 처음 전화한 곳은 불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시설이었는데 대기자가 많아 최소 한 달부터 6개월을 기다려야 입소가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우습게도 시설 내에서 흡연이 가능한지 물었다. 잠시 의아한 반응을 보인 직원은 요양원은 흡연 불가라 했다. 어느 정도 예측했던 일이었다. 물론 흡연이 몸에 얼마나 나쁜지 알지만 알코올 전문병원과 정신병원 모두 그나마 흡연은 가능했기에 아빠에게 흡연까지도 못하게 한다면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아 고민 끝에 드린 질문이었다. 직원은 가장 먼저 환자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 입소 가능하니 환자와 이야기를 먼저 해보는 게 우선이라 했다. 퇴원요구를 하다 과격한 행동으로 하루를 다 채우지 못하고 퇴소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했다. 지금 병원에서의 이송도, 지병으로 인한 3차 병원 진료도 모두 보호자의 몫이라 했다.

병원과 건강보험공단을 오가며 장기 요양 등급을 받아내려 애쓴 시간들이 허무해지는 순간이었다

알코올 의존증과 치매 진단, 장기 요양 등급도 모두 소용이 없었다

지금도 하루에 대여섯 번씩 퇴원시켜 달라고 전화하는 아빠를 어떻게 설득해서 요양원까지 이송시킬 수 있을지 산 넘어 산이었다.


두 번째 시설에 전화를 했을 때에는 아빠의 나이가 걸림돌이 됐다. 물론 처음 전화한 시설에서도 환갑도 지나지 않은 알코올 중독자가 반갑지 않은 환자인 것은 눈치챘지만 요양보호사들이 대부분 여자들인 것을 감안해 케어가 힘들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 물론 단박에 그쪽에서 거절하지는 않았다. 본인들의 상황 설명과 함께 대기를 하셔야 한다고 했을 뿐...


세 번째 시설에 전화를 하려 하니 이제는 겁이 났다

아무도 받아주려 하지 않을 것만 같다

케어가 힘든 젊은 알코올 중독 치매 환자는 거동도 못하고 의사 표현도 못 하는 고령의 중증 환자만도 못 한 게 현실이었다

그래도 우리 아빠와 같은 분들이 입원해계신 요양원이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사랑이 충만한 천주교 재단의 요양 시설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낭창한 목소리를 가진 수녀님인 듯했다

이제는 아빠의 흡연 가능 여부가 문제가 아니었다. 과연 받아주는 곳이 있을지가 더 관건이었다

성별과 나이를 말하자 이곳 역시 요양보호사가 부족하여 힘들다고 했다. 남녀를 분리해서 케어해야 하는데 요양보호사도, 분리 공간도 부족하여 남자는 받지 않는다는 것...

늙고 병들면 여러모로 남자보다는 여자가 요양원에 입소하기 더 편한 모양이다


나는 솔직하게 우리 아빠 같은 경우가 시설 쪽에서도 받아주기 힘든 환자인 것을 안다고 고백했다. 허심탄회하게 이런 경우 입소 가능한 곳이 있기나 한 건지 여쭤봤는데 큰 시설만 찾지 말고 작은 곳을 알아보라 하셨다. 그런 경우 받아주는 곳이 있을 거라고.


그 전화를 끝으로 나는 요양 시설을 알아보는 것을 멈추었다.

작은 시설... 아파트나 상가, 주택가에 장기 요양, 00 요양원 같은 허름한 간판을 달고 있는 건물들을 본 적이 있다. 과연 그런 작은 곳에서는 환자를 어떻게 관리할까?


어제도 이런 뉴스를 보았다

요양보호사의 폭언과 학대로 곳곳에 멍이 들고 욕창이 생긴 할아버지...

본인들이 케어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침대 난간에 결박해 놓은 환자는 몸부림을 치다가 팔 한쪽이 겨우 빠져나오자 기운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이렇게 하니 이렇게 편한데... 이렇게 편한데...."

어느 요양원에서는 밥과 반찬을 모두 넣고 믹서기로 갈아서 제공하다가 참다못한 내부 직원이 고발을 했다고 했다. 원장 집에서 먹다 남은 잔반까지 넣어 갈게 했다고.

그 슬픈 뉴스에 사람들은 댓글로 "개도 이렇게 주면 안 먹어요"라며 분노를 토해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늙고 병들어 죽게 된다

한평생 열심히 살았으나 자식 뒷바라지하다 노후를 준비해 놓지 못한 우리들이 늙고 병들었을 때 마음 편히 쉴 곳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슬프고 두렵다

누군가는 실버타운이라면 모를까 절대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모실 곳이 없는 이 잔인한 현실이란...


아빠는 본인의 마지막 여정에 대해서 생각하고 계신 걸까?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두렵고 무서운지 이해하실까?


아빠의 마지막이... 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다 내려놓고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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