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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May 27. 2023

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46 세 번째 입원을 하다

차를 돌려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 입원 받아주려는 거 아닐까? 하늘도 이렇게 아빠를 돕는데 계속 이렇게 사실래요?"라고 했더니 아빠는 슬쩍 미소 지으며 궁금한 표정을 지었었지.

병원에 다시 돌아가 분위기를 보니 아빠의 입원을 정말 받아주려나 보다

구면인 원무과장이 아빠에게 묻는다

"○○○님 입원하고 싶으세요?"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고 싶다고 말했다

아까 원내 약을 건네주던 흰 가운을 입은 중년의 여자가 조제실 직원인 줄 알았는데 새로 온 알코올 중독 전문 의사라고 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약을 하루치만 가져가시기에 이상해서 직원한테 물어보니 입원하러 왔다가 병실이 없어서 그냥 돌아간다는 거예요. 입원하려고 마음먹고 왔다가 그냥 돌아가려면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아서 내가 없는 병실을 만들어보라고 했어"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분주한 직원들의 움직임에 맞춰 입원서류에 사인을 하고 상담을 진행했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도 알아야 환자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니 그들의 물음에 또 한 번 아빠의 인생이, 나의 일생이 옷을 벗는다.

언제 결혼을 했고 중매인지 연애인지? 형제는 몇이고? 무슨 직업을 가졌고?

무슨 일을 얼마나 했으며? 관계는 어떠한지....

타인 앞에 벗어놓은 나의 일생이 초라하다

아까 진료를 기다릴 때 젊은 여자 환자가 후드티와 캡 모자를 눌러쓴 남자 셋에 둘러싸여 포박당한 듯 끌려왔다. 엄마인 듯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표정 없이 짐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병원 의료진과의 대화를 들어보니 엄마와 젊은 여자의 남편, 그리고 여자의 형제들 같았다.

이곳은 정신병원. 여자는 초췌해 보였고 심하게 말라있었다. 혹시 거식증은 아닐까? 우리 아빠처럼 알코올중독? 아니야 마약중독일지도 몰라. 아이는 있을까? 호기심이 밀려왔다. 여자는 입원하기가 무섭다며 한참을 울부짖었고 깡마른 몸은 반항할 기운조차도 없어 보였다. 남편과 여자의 형제들은 치료받으러 온 거니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며 번갈아 여자를 꼭 안고 한참을 위로하다 사라졌다.

아빠가 입원할 지경으로 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마다 강제 이송을 해주는 사설 응급차에 전화 문의를 했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이송 조건이나 이송 비용보다 걱정됐던 것은 아빠를 어떻게 이고지고 결박해서 갈수 있을까였다

젊은 여자에게 남편과 형제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를 입원시킬 때에도 저런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면 좋을 텐데.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는 결국 회사에 지각을 했다

그래도 좋다. 아빠가 입원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퇴원시켜달라고 전화를 해댈지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도 이번에는 수신거부하지 않고 전화를 받아주리라 마음도 먹었다.

하지만 아빠가 입원한지 한 달쯤 됐을 무렵 뭔가 잘못돼가고 있음을 직감하게 되었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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