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입원시킨 안도감도 잠시 보통 2주가 지나면 어눌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해댈 텐데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웬일인지 전화가 없었다. 이번에는 정말 마음을 잡고 버틸 작정인가? 어디가 아픈가? 궁금하고 걱정되던 차에 병동 간호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버님이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셨어요. 금단 증상, 섬망에 자주 빠지면서 자꾸 정신을 놓으세요.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몇 년도고. 00동이라고 하고. 딸이 왔다고 하고. 증상이 가늠이 안 돼서 최소한의 약물로 안정을 취하고 있지만 약 조절을 해보면서 지켜보는 중이라 전화 사용이 불가한 상태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 질병과 노화로 몸이 약해지는데 운동은커녕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않고 그 독한 술과 담배만 몸에 넣어주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내가 충격을 받은 건 아빠가 음주를 지속할수록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금단현상조차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버텨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현실이었다.
의사가 술이 깨는 과정에서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죽는다고 우려했던 바와 같이 아빠는 해독하며 신체 리듬을 되돌려 놓는데 점차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그와 더불어 몸은 점차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
아빠의 몸이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까?
알코올 중독자의 입원이 보통의 환자들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아빠는 이미 수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기저귀를 하고 침대에 손보호장갑을 하고 묶여있었다. 알코올 전문병원에서도 소변으로 얼룩진 누런 바지를 입고 오로지 담배를 피우기 위해 경직된 팔, 다리를 이끌고 절뚝이며 흡연구역으로 행했었다. 몽롱하고 어눌한 말투, 매캐한 담배 냄새, 초점을 잃은 눈동자를 나는 면회를 가서 직접 마주하기도 했었으니까. 수액을 꽂고 담배나 술 생각이 덜 나게 하는 항갈망제 등을 투약받고도 금단 증상이 심하면 결박을 당한 채 식사도 제대로 못했던 아빠의 시간들이 수화기 너머에서 가슴 떨리게 전해져 왔다.
영양식을 제공하기도 하고 못 드실 때는 떠먹여 드리기도 했고 몸무게는 다행히 변화가 없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워댔던 아빠가 하루 제공되는 담배 5개비로 하루를 버티 낼 리 없으니 담배 문제로 집착이나 공격적인 모습이 심해질 때면 조금 더 과한 대응을 했을 거라 짐작도 해본다.
이곳이 정신병원이라 아빠에게 더 가혹한 건 아닐 테지.
아빠가 1년을 지냈던 곳이고 아빠가 다시 입원하겠다고 제 발로 찾아가셨으니까.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싫었다면 몸서리를 치며 병원 쪽으로는 고개도 안 돌리셨을 거야.
추후 상태가 괜찮아지면 전화연결을 해준다고 했으니 기다려보자.
" 작년에 입원하셨을 때와는 분명 달라요.
이번에 퇴원하시면 절대 술 드시면 안 되세요.
이렇게 상태가 안 좋으시면 저희도 다음에는 입원을 못 받아줄 것 같아요.
다음에는 요양원 가셔야 해요."
그러면서도 속상하고 아픈 마음은 달랠 길이 없어서 시도 때도 없이 플랜 B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아빠를 다시 집에 모신다면? 알코올 전문병원이라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아빠는 어디에 계시고 싶어 할까? 전원은 가능할까? 어떤 방법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받아주는 요양원이 있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