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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Apr 05. 2024

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50 아빠는 연명치료 중.

이틀뿐인 소중한 여름휴가 날 오후를 아빠의 주치의 면담에 쓰기로 했다.

면담 예약을 잡으면서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다.

휴가 날 굳이 유쾌하지 않을 면담을 하고 내내 마음이 무거울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연차 하루 쓰기에도 쉽지 않은 근로자 형편에 병원이 정해놓은 주치의 면담시간을 맞추느라 발을 동동 거리느니 나 편하려고 잡은 예약이다.

나는 심적으로 아주 많이 지쳐있었다.

아빠는 끊임없이 전화를 해서 담배를 요구했고, 퇴원을 요구했다.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루 12번씩 전화하는 집념을 보이기도 했다. 일을 하고 있으니 늦은 오후 전화를 해달라고 정중히 부탁도 해보고 힘들다고 표현도 했지만 아빠는 그런 나는 안 중에도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는 괴로운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입원만 하면 찾아오는 퇴원 앵무새. 아니 퇴원 딱따구리.

머리와 가슴을 끊임없이 딱딱 쪼는 것도 모자라 뇌를 파먹고 심장을 후빈다.

나와 휴가를 보내려고 찾아온 엄마에게는 잠깐 볼일이 있으니 다녀오겠다고만 말해두었다. 아빠가 벌써 세 번째 입원을 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혼한 지 20년도 훌쩍 넘은 아빠의 이야기를 해서 뭘 하겠어?

후....

심호흡을 길게 하고 병원으로 성큼 발을 디딘다.

ㅡ 아버지는 술도 문제지만 뇌에 변형이 생겨 인지력과 사고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며 무척 충동적입니다. 고집스럽게 자기 요구, 욕구만 반복하고 가끔은 거친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ㅡ 요양원을 고려 중이신 걸로 알고 있지만 요양원은 거의 거동을 못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곳이고요. 입소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공격적이면 있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ㅡ 정신병원은 그나마 약으로 조절해 가며 케어가 가능한 곳입니다. 저희 병원은 9개월까지는 입원이 연장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 후에는 다른 병원을 이용해 보는 것도 고려해 보십시오.

ㅡ 평생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신 것 같은데 병원에 지내면서 본인이 포기할 건 포기하고 기력이 쇠하길 기다리는 것도 어찌 보면 방법입니다.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사정은 딱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애쓰지 말라는 말로 들렸다.

나 또한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마주하고 남은 휴가를 즐겼다.

아무렇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퇴원을 염두에 두고 갔지만 일상생활이 어려운 아빠의 상황을 한 번 더 확인했을 뿐.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며 여러 병원을 전전할 수 있을지? 정말 최후의 선택지가 그것뿐인지? 암담하기만 했다.

나는 두렵다.

아빠를 계속 정신병원에 두는 것이.

아빠에게 그곳은 연명치료의 장소나 다름이 없을 것.

삶에 대한 의지도 희망도 없이 술로부터 격리할 뿐, 무의미하게 생을 연장하고 있는 건 아닐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집으로 퇴원해 오는 것 또한 두렵다.

퇴원과 동시에 다시 쓰디쓴 술에 절여질 아빠가.

폭음에 빠지는 건 순간이고 그 술을 해독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입퇴원을 반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뿐더러 그와 함께 상태는 갈수록 나빠질 것.

아빠가 놓아버린 아빠의 인생.

아빠의 시들어 가는 생명이 내 손바닥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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